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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미국 경제…긴축 끝 금융위기의 역사 반복되나 [홍길용의 화식열전]
뉴스종합| 2023-05-08 16:46

모든 방패를 뚫는 창과 어떤 창도 막아내는 방패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내 방패는 모든 창을 막아내고 내 창은 모든 방패를 뚫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게 인간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에도 부작용은 있으며 어떤 대책도 완벽할 수 없다. 모든 행위에는 결과가 따른다.

2011년 이후 12년만에 다시 미국 연방정부의 채무불이행(default) 위험이 글로벌 경제의 복병이 됐다. 미국 연방정부의 급증한 부채는 12년 동안 시행된 정책과 대책의 결과물이다. 디폴트는 경제적으로 생각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위험이지만 정치적으로 접근하면 어이없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미국 연방정부 디폴트가 일단 발생하면 치명적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근 누적된 모순적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만에 하나 있을 재앙적 결과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2011년에도 디폴트 위기가 있었다. 지금의 가장 다른 점은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이다. 당시 연준은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제로 금리정책을 한창 펼칠 때였다. 연준은 채권을 사들이고 정부는 달러를 찍어내면서 시장에 돈을 풀었다. 지금의 연준은 그 반대다. 기준금리 인상이 5월이 끝인가 싶었지만 예상 보다 강한 고용지표에 또다시 애매해졌다. 연준의 긴축 이후 경제 성장률 전망은 계속 떨어지는데 물가 상승세 둔화는 제한되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연준이 현재의 긴축기조를 상당기간 유지한다면 새로운 기록도 가능해 보인다.

지금까지 연준의 긴축 기록은 두 가지다. 최장(最長)은 2004년 6월부터 2006년 6월까지 2년간이다. 1%에서 5.25%로 올랐다. 최대(最大)은 1980년 7월부터 12월까지 9.93%에서 22%로 올린 때다. 과거 연준의 기록적 긴축에는 ‘치명적 결과’(consequence)가 따랐다. 1986년대 저축대부조합(savings and loan association) 위기와 2008년 터진 비우량주택저당채권(subprime mortgage) 사태다. 물가를 잡으려 약(藥)이라고 쓴 고금리가 경제에 치명상을 입히는 독(毒)이 된 결과다. 약이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은행을 통해 실물 경제에 전달된다. 이론적으로 금리를 높이면 대출 보다 예금이 더 늘어 시중에 유통되는 돈의 양이 줄어든다. 이어 투자가 위축되고 소득이 감소하며 자산가격이 하락한다. 이자 부담이 커져 대출 연체와 금융부실이 증가한다. S&L 사태와 금융위기의 공통된 출발점은 금리상승에 따른 자산가격 하락이다. 연준은 통화정책 뿐 아니라 은행 감독도 책임진다. 지난 3월 발생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도 금리상승에 대한 지방은행의 대응 소홀을 연준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이 상당하다.

실물경제와 금융시스템의 펀더멘털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은 과도한 긴축은 금융위기 확률을 높인다. 폴 볼커(Paul Volcker)의 1981년 ‘초긴축’으로 S&L 부실 씨앗이 잉태된다.

볼커는 1981년부터 1986년까지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내리지만 이후 다시 금리를 높인다. 1987년 볼커의 뒤를 이은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도 긴축을 지속해 기준금리는 1989년까지 높아진다. 결국 S&L 사태가 터졌고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1992년 3%까지 기준금리를 내린 후에야 사태 수습이 마무리된다.

그린스펀은 3%대인 물가상승율을 꺾겠다며 2004년~2006년 기준금리를 1%에서 5.25%까지 올린다. 기준금리를 올려도 물가상승세는 꺾이지 않고 지표물인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4.6%에서 5.1%로 고작 0.5%포인트 오른다.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뒤늦게 밝혀졌지만 무역흑자로 엄청난 달러를 벌어들이던 중국이 외환보유고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미국 채권을 대규모로 사들이면서 국채가격 하락(금리상승) 제한됐다. 연준이 5%대로 기준금리를 올린 이후 물가상승세는 꺾였지만 자산 가격도 급락한다.

자산가격 급락으로 파생금융상품으로 인한 거품이 붕괴하며 2008년 3월 5대 투자은행(IB)였던 베어스턴스가 무너지고, JP모건이 이를 인수한다.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베어스턴스 붕괴 직후 “하반기 경제성장이 재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S&P500은 8월까지 15% 상승한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9월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며 ‘지옥’을 맛본다. 최근 JP모건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지난 3월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bank run) 끝에 좌초한 퍼스트리퍼블릭은행(FRC)을 인수를 발표하면서 "은행 위기는 거의 끝났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다. 연준은 최근 기준금리 상단을 5.25%까지 높였다. 그린스펀 이후 최고치다. 연준이 긴축을 멈추려면 물가가 잡혀야 한다. 물가를 잡기 위한 긴축은 결국 시중에 유통되는 돈을 줄이는 작업이다. 그런데 실물경제에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친환경 보조금만 3690억 달러다. 반도체법(The Chip Act)도 지원금 520억 달러, 세제혜택 240억 달러 등 지원규모가 760억 달러에 달한다. 최근 1년간 발표된 전기차와 반도체 관련 투자만 2000억 달러에 달한다.

금융부문에서는 이미 긴축 효과가 상당하다. 금리 상승으로 은행이 보유한 국채와 주택저당채권(MBS) 등에서 손실이 발생하면서 지난 3월 상당수 지방은행에서 뱅크 런이 발생했다. 은행은 구조적인 만기 불일치 구조다. 언제든 인출 가능한 예금으로 회수가 제한된 대출을 해야 한다. 예금주의 신뢰가 흔들리면 언제라도 유동성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불안해진 예금주가 초대형은행으로 쏠리면 중소형 은행은 고객을 지키기 위해 더 높은 예금이자를 제시할 수 밖에 없다. 동시에 위험관리를 위해 대출 태도는 더욱 엄격해져야 한다.

미국은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30%가 지방은행이다. 아직 미국의 주택가격은 안정적이지만,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지난해부터 가파른 하락세다. 지난해 15%가량 하락했고 올해에도 25%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모건스탠리는 2년간 만기 도래하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 부채를 1조5000억 달러로 추정했다. 시장에서 미국 지방은행의 위기가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물가가 안 잡힌다고 연준이 금리를 더 올리거나 현수준을 길게 유지하면 지방은행은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직면할 수도 있다.

연방정부가 디폴트에 빠진다면 물가불안과 은행 부실 위험이 직면한 미국 경제를 ‘지옥 문’으로 내몰 수 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는 최근 디폴트에 따른 일자리 감소폭, 실질경제성장률 하락폭, 실업률 증가폭 예상치를 공개했다. 짧게 끝나면 50만개, 0.6% , 0.3%포인트를 예상했다. 실제 디폴트는 피하더라도 여야가 계속 대치하면 20만개, 0.3%, 0.1%포인트의 피해는 감수해야 할 것으로 예측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연방정부 디폴트를 틈타 미국 경제와 금융시스템에 대한 보이지 않는 공격에 나설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중앙은행의 긴축 효과를 높이려면 정부의 재정지출이 잘 통제되어야 한다. 반면 실물경제에서는 재정지출이 긴축의 고통을 줄여준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연방정부 부채 한도를 높이는 대신 재정지출을 줄이라고 요구한다. 상원 과반인 민주당은 친환경 전환과 대중국 견제를 위한 지출이라 줄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화당이 주장하는 학자금 대출 탕감 중단도 최근 재선 도전을 선언한 바이든 대통령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공화당 일각에서는 정부가 디폴트 위험을 과장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극한대립이다.

미국의 디폴트 여부는 경제 논리와 정치적 이해의 영역에 걸쳐 있다. 치명적 결과에도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길이라면 선택할 수 있는 게 정치의 영역이다. 디폴트를 피할 지, 끝내 감수할 지 예측이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후 연준의 선택이다. 재정지출이 계속 늘어나는데 긴축을 지속한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붇기’다. 재정지출에 제동이 걸린다면 긴축 효과는 더 커지게 된다. 그 동안의 긴축 효과와 경제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실패하면 자산가격 붕괴로 또다른 금융위기가 올 수도 있다.

투자는 차선의 결과에 만족할 줄 알면서 최악의 상황에는 늘 대비해야 하는 활동이다. 금융상품이 다양화되면서 글로벌 자산간 동조현상이 강화됐다. 금융시장의 출렁임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자산을 찾기 어렵다. 위기의 창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지만 포트폴리오의 방패는 점점 더 엷어지고 있다. 워렌 버핏은 최근 현금보유액을 연준의 긴축 직전인 2021년말 이후 최대 수준까지 높였다고 한다. 무방비로 전장에 나갈 수는 없다. 설령 강한 창에 뚫리더라도 피해를 줄일 정도의 방패는 준비해 둘 때다. 현금은 꽤 괜찮은 방패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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