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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도 신용등급 반영하는데…한국 정부는 괜찮다(?) [홍길용의 화식열전]
뉴스종합| 2023-05-18 17:33

“고령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나라들은 신용등급을 강등시킬 수 있다”

(Rating agencies warn of downgrades if nations fail to tackle costs of ageing)

17일 한 해외유력지 머릿기사 제목이다. 무디스(Moody's),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피치(Fitch) 등 3대 신용평가사가 고령화 대응과 연금개혁 성과를 정부 신용등급 평가에 반영한다는 소식이다. 금리 상승으로 국채 이자비용이 커졌는데 고령화 부담까지 겹치면 재정이 더 어려워진다는 논리다.

국가 신용등급은 정부 재정에 대한 평가다. 이를 기준으로 금융회사 등 민간의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평가된다. 정부 신용등급 하락하면 국가 전반적인 외화조달 비용이 증가한다. 통화 가치가 떨어져 수입 물가가 높아진다. 이는 다시 국내 금리 상승을 자극 차입비용을 키우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금리 부담으로 경제활동이 둔화되면 생산과 소비가 위축되고 각종 사회비용 부담은 더욱 커진다. 세수가 줄면 국채를 발행하거나 화폐를 찍어 부족한 돈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다시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물가를 높인다. ‘노인플레이션’(老人+inflation), ‘에이진플레이션’(age+inflation)이라고나 할까.

저출산과 고령화는 비교적 잘 사는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경제 발전은 의료와 보건의 개선을 가져와 국민들의 평균수명을 늘린다. 자산이 축적되면서 자본소득이 근로소득을 앞지르게 되고 양극화가 심화된다. 계급이 고착화되면서 육아·교육 부담이 커지고 출산 유인이 약화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자료를 보면 일본, 미국, EU 모두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현재 20%에서 2050년 3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중국의 인구가 인도에 추월당한 것도 저출산의 결과다.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0% 이상이 저출산·고령화 고민에 빠져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가 가장 빠르고 심각한 나라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22년말 17.5%에서 2050년에는 40.1%가 될 것으로 추정됐다. 일본의 2050년 예상비율은 38.8%다. 그러면 13년째 AA+로 세계 10위권인 우리 정부의 신용등급이 가장 빨리 강등될까?

우리나라 정부의 국민연금법에 대한 법적 책무는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한다’이다. 정부가 예산으로라도 지급해야하는 공적연금에는 국민연금이 제외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국민이 의무가입하는 연금에 책임을 지지 않는 정부다.

선진국 대부분은 그 해에 걷은 보험료에 정부 보조금을 합해 연금급여 재원을 마련하는 ‘부과방식’을 택하고 있다. 독일은 보험료에 정부 보조금(약 24%)을 합해 그 해의 급여 재원을 마련한다. 국민연금의 모델인 일본 후생연금도 가입자 부담인 보험료는 상한을 정하고 부족한 재원은 정부가 낸다.

미국은 사회보장세를 걷어 사회보장보험을 운영한다. 법률에 의해 국가가 가입자에 혜택을 제공할 의무를 갖는다. 연금이 고갈되면 정부가 예산을 동원해서라도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우리나라를 빼면 모두 고령화에 따른 연금수요 급증으로 정부의 신용등급이 직접 영향받는 구조다.

대한민국 정부는 공무원·사학·군인연금 지급을 책임진다. 이들 3개 연금 적자는 2022년 5조원에서 2050년 25조원으로 5배 급증할 것으로 계산됐다. 국민연금과 비교하면 한참 적다. 국민연금의 예상 적자는 2050년 75조원 이상이지만 정부의 연금충당부채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복지 지출 규모는 평균 20.1%다. 우리나라는 12.3%로 꼴찌다. 정부가 국민연금 지급 의무를 끝까지 지지 않고 신용평가사들이 직접 적인 재정부담만 따진다면 등급 강등을 피할 지도 모른다. 이 경우 재정으로 지원받는 공무원·사학·군인연금이 가장 큰 수혜를 볼 듯하다.

정부는 부자인데, 국민만 가난한 나라의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2055년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이후에는 연금보험료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 가입자의 소득대비 보험료 비중은 2060년 29.8%, 2070년 33.4%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정상적인 소비가 불가능한 수준의 부담이다.

정부는 나라살림 걱정하지만 사실 더 심각한 것은 민간 살림이다. 2022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기업과 가계의 부채 비율은 각각 117.9% 105.8%로 OECD 국가 중 4번째로 높다. 반면 정부 부채비율은 48%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건전하다. 각종 사회보험료도 모두 가계와 기업이 나눠 낸다.

누가봐도 민간 보다는 정부 형편이 더 낫다. 철저한 재정관리는 건전할 때에도 철저해야 한다. 정치인들의 인기주의에 영합한 선심성 지출도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 그렇다고 국민들을 살기 좋게 만드는 데 필요한 선택까지 배제해서는 안된다. 부가가치를 만드는 지출에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려면 결국 현재 세대가 좀 더 부담을 하는 게 낫다.저출산에서 벗어나려면 육아와 교육비 부담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 노후에 대한 불안을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도 필요하지만, 정부의 재정지원까지 이뤄지면 기금의 고갈 시기를 꽤 늦출 수 있다.

국민연금 지급이 급증하는 2040년부터 기금운용 수익을 제외한 급여 재원의 30%만 정부가 지원해도 2060년대 이후 소득대비 보험료 부담은 18~22%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건강보험료 부담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국민연금 보험료 부담을 감당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하는 작업은 꼭 필요하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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