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아하! 우리말] 이 자리를 빌어 사과한다니요?
라이프| 2023-08-05 09:47

지난 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과 연결된 백화점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묻지 마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해 시민 14명이 다친 가운데 4일 오전 서현역 주변에 경찰이 배치돼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조현아 기자] 철수 : 또 ‘묻지 마 범죄’가 발생했다며?

영희 : 신림동에 이어 분당 백화점에서도 ‘묻지마 흉기 난동’이 벌어졌대.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자주 일어나 요즘은 사람들 모이는 곳에 가는 것조차 두려워.

철수와 영희는 최근 자주 발생하고 있는 ‘묻지 마 범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파문이 큰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경찰 취재선에서 주로 하는 말이 “이 자리를 빌어 피해를 본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다.

그런데 이는 틀린 표현이다. ‘빌어’ 대신 ‘빌려’라고 고쳐 말해야 옳다.

‘빌어’의 기본형은 ‘빌다’로, ‘간절히 바라다’ ‘용서를 구하다’ ‘공짜로 얻다’처럼 기도나 호소, 간청을 하거나 간절히 바랄 때만 쓰인다.

“소원을 빌었다” “비는 데는 무쇠도 녹는다” “빌어먹다”처럼 활용된다. 그러므로 '빌다’를 ‘빌리다’의 뜻으로 쓰는 것은 잘못 쓰는 예다.

물론 예전에는 빌리는 것은 ‘빌다’로, 빌려주는 것은 ‘빌리다’로 구별해 썼지만 ‘빌리는 것, 빌려주는 것’ 모두 '빌리다'로 표준어를 통일했다.

그러므로 남의 것을 가져와 쓴다는 뜻일 때는 ‘빌다’가 아닌 ‘빌리다’를 써야 맞는 표현이다.

‘빌리다’는 ‘남의 물건을 나중에 돌려주기로 하고 얼마간 쓰다’ ‘남의 도움을 받거나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믿고 기대다’ ‘일정한 형식이나 이론, 또는 남의 말이나 글 따위를 취하여 따르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기회를 이용하다’ 등의 뜻이다.

“일손을 빌려서야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리자면” “이 자리를 빌려 한 말씀 드린다” “술의 힘을 빌려 고백한다” 등과 같이 쓰인다.

‘아하! 우리말’의 한 가지 바람은 더는 이 같은 ‘묻지 마 범죄’로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이 자리를 ‘빌려’ ‘빌어’본다.

▶우리말 지킴이 당신을 위한 한 끗=자리나 양해를 구하고 남의 것을 가져와 쓸 때는 ‘빌리다’, 희망이나 소원 등은 ‘빌다’다.

jo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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