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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실종’…그 이면엔 ‘알고리즘’의 필터링 [북적book적]
라이프| 2024-07-18 15:31
[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유튜브에서 감성 브이로거들은 아침식사로 아보카도 토스트와 카푸치노를 약속이나 한 듯이 차려낸다. 또 서울·도쿄·방콕·브루클린 등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각기 다른 사장이 운영하는 카페라 하더라도 모두가 널찍한 테이블과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의 천장에 레일 조명을 설치한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공유한다.

미국 잡지 뉴요커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카일 차이카는 신간 ‘필터월드’에서 ‘인기있는 것이 어떻게 더 큰 인기를 얻고, 전 세계 사람들의 소비 습관이 왜 비슷해지는 지’에 대해 들여다본다.

저자는 현대인에게 취향의 위기를 유발한 원인은 소셜 미디어라고 답을 내린다.

인스타그램, 엑스(X·옛 트위터), 페이스북, 틱톡 등 소셜 미디어가 인간이 문화와 맺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버렸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아울러 소셜 미디어의 작동 원리인 ‘알고리즘에 기반한 피드’는 “인류의 집단적 소비 습관을 급격하게 동질적으로 바꾸어 놓는다”고 말한다.

알고리즘은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결국엔 인류가 역으로 지배당하고 지각과 관심을 조종당하게 됐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삶과 관련된 모든 소소한 결정을 한 번에 하나씩 따로따로’ 내리곤 했다. 예컨대 신문사는 어떤 기사를 1면에 실을 지 결정하고, 영화 기획자는 이 시기엔 어떤 영화를 상영할 지를 선정하는 등 각자 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제 독자들은 포털사이트에서 알고리즘이 자동적으로 선택해 올려준 뉴스 기사를 읽고,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서 시청 이력에 따라 자동 추천된 목록에서 골라 영화를 시청한다.

저자는 알고리즘 추천 때문에 인류의 문화가 더는 발전이 없이, 기존의 것을 반복하고 결국엔 퇴화할 것이란 우려를 제기한다.

책 표지 이미지

심지어 알고리즘에 의해 지각과 관심이 걸러진 현 시대를 ‘필터월드’라고 명명했다. 이어 저자는 필터월드의 기본 규칙으로 “알고리즘 기반 피드 아래서 유명한 것은 더 유명해지고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예 눈 밖으로 사라지게 된다”고 규정했다.

필터월드에서 창작자들은 자신의 창작물이 사장되지 않기 위해 안전한 선택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다. 예술가의 선택 권한은 이전보다 줄어들고, 심지어 자기 작품에 등장할 맥락에 대한 통제권도 잃게 된다.

결과적으로 알고리즘 문화에서 올바른 선택이란 늘 대다수가 이미 선택한 것이 되며, 그렇게 ‘취향(taste)’은 멸종 위기에 처해간다.

저자는 취향이 단지 어떤 재화를 다른 재화 가운데서 선택해 소비하는 것이 아닌, 훨씬 더 깊은 철학적 개념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취향은 선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나타내는 도덕성”이라며 “취향은 정말 깊이 느껴야 하고, 몰두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며,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놀라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것이 좋고 싫은지를 성급하게 판단하고, 취향은 그저 소비 활동을 포장하는 언어로 전락했다. 저자의 말대로 “개인을 더 나은 사회나 더 나은 문화로 이끄는 취향의 도덕적 능력”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필터월드 시대의 취향은 “속빈 강정”이 됐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누구나 온라인 서점과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무엇이든 읽고 들을 수 있지만, 이로 인해 어떤 것도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수집 목록에 추가하고 저장할 만큼 충분히 의미 있는 대상을 찾았을 때, 사람들은 대상물을 마음에 더 깊숙이 아로새기는 동시에 그 대상물들을 아우르는 맥락을 만들어낸다. 이런 맥락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며, 함께 만들어나가고 공유하는 문화 전반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필터월드/카일 차이카 지음·김익성 옮김/미래의창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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