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저렴했던 ‘4번 달걀’이 사라진다...이젠 동물복지달걀로
뉴스종합| 2024-09-27 11:22
4번 달걀을 낳는 닭들의 사육 모습 [동물권행동 카라]

가장 저렴한 가격의 달걀, 바로 숫자 ‘4’의 달걀이 곧 사라진다. 난각번호 4번 달걀로, 이 달걀은 A4 용지 크기의 닭장에 갇힌 닭이 낳은 달걀이다.

닭장의 최소 면적을 넓히는 법이 내년 9월부터 시행된다. 그러면서 이처럼 비좁은 닭장에서 나오는 달걀은 사라질 수순이다.

달걀의 난각번호는 1번부터 4번까지 있다. 그 중 닭장에 갇히지 않고서 야외에서 치는 닭(방사)의 달걀은 1번, 실내에서 돌아다닐 수 있는 닭(평사)의 달걀은 2번이다. 그리고 1~2번 달걀은 ‘동물복지달걀’로 분류한다.

3번과 4번 달걀은 닭장에 갇힌 닭들이 낳은 달걀이다. 3번과 4번의 차이는 닭장의 면적. 최소 면적이 0.075㎡ 이상이면 3번, 0.05㎡ 이상이면 4번 달걀이 된다.

마트에서 판매되는 난각번호 4번 달걀

특히, 심각한 건 4번 달걀이다. 0.05㎡, 즉 A4 용지 크기의 닭장이다. 여기에 갇혀 평생 움직이지도 못하고 사는 게 4번 달걀의 닭이다.

비좁은 닭장에 갇힌 닭은 불행할 뿐 아니라 이들이 낳는 달걀이 밥상 안전을 위협한다. 지난 2017년 큰 소동이 일었던 ‘살충제 달걀’은 공장식 닭장에서 비롯됐다. 닭들은 흙 목욕을 하면서 몸에 붙은 진드기를 털어내는데, 닭장에 갇힌 닭들은 진드기를 제거할 수 없어 살충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당시 축산법 개정을 통해 최소 사육 면적이 마리 당 0.05㎡에서 0.075㎡로 늘어났다. 2018년 9월부터 신규 축사에 적용됐고, 약속했던 7년 간의 유예 기간이 내년 8월 31일이면 끝난다. 원래 대로라면 내년 9월 1일부터 4번 달걀은 아예 사라져야 한다.

문제는 여전히 0.05㎡ 이내 닭장에서 사육되는 닭이 절반 이상이라는 데에 있다. 달걀 수급 등을 고려해 정부는 내년 9월부터 새로 달걀을 낳는 닭부터 최소 사육 면적을 적용할 계획이다. 달걀을 낳는 닭들이 주로 1년 6개월~2년마다 교체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늦어도 2027년 9월께에는 4번 달걀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가격도 문제다. 동물복지달걀의 가격은 일반 달걀의 약 1.5배 수준이다. 같은 면적에서 키우는 닭 마릿수가 적다 보니 값이 더 나갈 수밖에 없는 탓이다. 이에 동물복지달걀 시장 점유율은 15.9%에 그치고 있다.

소비자들도 동물복지달걀을 구매하지 않는 이유로 가격을 지목했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가 시장조사기관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해 전국 성인 1055명을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 49.5%가 ‘일반 달걀보다 가격이 비싸서’ 동물복지달걀을 구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실제 가격 차도 컸다. 응답자들은 달걀 10구 가격이 2740원이라면 동물복지달걀은 4485원까지, 약 20%를 더 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동물복지달걀의 판매 가격은 일반 달걀보다 41.5% 더 비쌌다. 30구 기준 일반 달걀이 평균 6451원인데 비해 동물복지달걀은 9126원이었다.

이같은 가격 차에도 동물복지달걀을 찾는 소비자들은 빠르게 늘고 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동물복지달걀 재구매율은 2023년 1분기 13.2%에서 2024년 2분기 19.0%로 늘어났다. 구입 의사가 있다는 응답자가 57%, 실제 구매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63%로 나타났다.

이 기회에 닭을 풀어 키우겠다는 산란계 농가도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167개 농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16개 농가는 동물복지달걀로 전환을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최근 동물복지 인증을 받는 산란계 농가가 연평균 53~59%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정부도 산란계 농가에서 축사를 늘리는 데 재정을 늘리고 있다. 농가 당 지원 금액 한도를 최대 133억원으로 상향했다.

동물복지달걀이 시중에 많이 풀리려면 식품 및 유통업체의 몫도 크다. 소비자들이 동물복지달걀을 사지 않는 이유 중 두 번째로 많은 응답이 ‘판매처가 주위에 없어서’(24.7%)다. 산란계 농가 역시 값비싼 동물복지달걀로 전환하려면 달걀을 팔 곳이 있어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농가 입장에서는 달걀은 매일 나오는데 팔리지 않으면 난감하다”며 “확실한 수요처와 수량이 정해지면 농가들도 동물복지달걀로 바꾸기 위한 시설 투자에 굉장히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주소현 기자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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