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남화영의 골프장 인문학 45] 디오픈 개최지 카누스티
뉴스| 2022-07-09 15:18
이미지중앙

밤 9시반의 카누스티 18번 홀 페어웨이.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마무리 홀을 가졌다는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 앵거스의 카누스티(Carnoustie)를 찾았다. 지난 2018년에 메이저인 디오픈을 8번째 열었고 지난해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 AIG여자오픈을 두 번째 개최했던 토너먼트 전당이다.

카누스티는 디오픈의 순회 코스다. 1931년을 시작으로 1937, 1953, 1968, 1975, 1999, 2007, 2018년 개최하면서 숱한 레전드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가장 유명한 건 1999년 3타 차 선두로 마지막날 마지막 홀에 섰으나 무너진 프랑스의 쟝 방 드 벨드의 비극이다. 더블 보기만 해도 프랑스인으로는 디오픈 사상 첫 우승자가 되는 상황에서 트리플 보기를 했고, 스코틀랜드의 폴 로리와 연장전에 들어가 패했다.

카누스티는 마지막 세 홀이 무지무지하게 어렵다. 16번 홀은 파3지만 전장이 245야드다. 1975년 챔피언 톰 왓슨은 “골프에서 가장 어려운 파3 홀”이라고 평가했다. 17, 18번은 배리 번 개울이 태극 모양으로 홀을 휘감아 돌아간다. 그래서 티샷과 세컨드 샷 모두 폭 2미터 이상 되는 번을 피해야 한다.

마지막 홀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홀’로 불린다. 에스(S)자 모양의 개울인 번을 두 번 건너는 444야드 파4 홀이고, 프로 대회에서는 499야드로 늘어난다. 티샷이 조금이라도 페어웨이를 벗어나면 물로 들어간다. 세컨드 샷에서도 그린 앞 번을 피해야 한다.

이미지중앙

1999년 디오픈 18번 홀 배리번의 물에 들어간 공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 장 방 드 벨드.


1999년 상황으로 돌아가면, 앞바람이 부는 러프의 세컨드 샷 상황에서 벨드는 과감하게 2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직접 공략했다. 하지만 공은 18번 홀 그린의 갤러리 스탠드 상단을 치고 튕겨서 깊은 러프에 빠졌다. 거기서 친 서드 샷이 하필이면 배리번에 빠지고 말았다. 번에서 발목까지 차는 물에 잠긴 공을 보며 고민하던 벨드는 벌타를 받고 드롭했다.

벨드의 다섯 번째 샷도 그린 오른쪽 벙커에 빠졌다. 결국 이 홀에서만 3타를 잃은 벨드는 시드 없이 예선전을 치러 출전한 스코틀랜드 지역 출신 무명 골퍼 로리에게 지고 말았다. 벨드는 대회 뒤에 세컨드 샷을 안전하게 레이업하지 않고 무리하게 홀을 직접 공략하려 했다는 지적에 ‘우승을 앞두고 멋있게 마무리하고 싶었다’고 프랑스인답게 답했다. 고국에 돌아간 벨드는 지금은 레슨 프로로 살고 있다. 넷플릭스의 ‘위대한 패배자’ 다큐멘터리에 당시 이 홀의 상황과 그의 근황이 소개되고 있다.

580야드의 파5 6번 홀은 1953년 디오픈 우승자 벤 호건의 이름을 딴 ‘호건의 오솔길’이란 별칭이 붙어 있다. 호건은 당시 티에서 253야드 지점에 놓인 두 개 페어웨이 벙커와 왼쪽의 아웃오브바운즈(O.B.) 철책 선상의 좁은 공간으로만 4라운드 내내 티샷을 보내서 우승했다고 이름 붙여졌다. 용기와 뛰어난 샷 기량 없이는 O.B.라인과 벙커 사이를 겨냥하고 보내기는 무척 어렵다. 턱이 높은 벙커에 빠진다면 한두 타 잃는 건 십상이다.

이미지중앙

벤 호건의 오솔길이 소개된 6번 홀 티잉 구역. 왼쪽 목책과 벙커 사이로 티샷을 보내야 하는 홀이다.


최근 대회는 이탈리아의 프란치스코 몰리나리가 우승한 2018년이다. 그는 마지막 홀에서 두 번 만에 공을 그린에 잘 올린 뒤에 2미터 버디 퍼트를 넣고 이탈리아인으로는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다.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저스틴 로즈(잉글랜드)가 2위였고 타이거 우즈도 마지막날까지 우승 경쟁을 하다가 6위로 마쳤다.

여자 대회는 2011년에 처음 브리티시여자오픈을 열었고 쩡야니(대만)가 우승했다. 지난해 AIG여자오픈 대회에서는 스웨덴의 안나 노르퀴스트가 우승했다. 디오픈의 우승 스코어는 대체로 6~9언더파였는데 쩡야니는 16언더, 노르퀴스트는 12언더파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렇다고 카누스티가 여성에게 특별히 쉬운 코스가 아니다. 블루티에 해당하는 화이트에서의 코스레이팅은 파72일 때 75.2, 파70의 옐로우티에서는 73.6이 나온다. 여성들은 그린티가 파74인데 코스레이팅이 77.3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다른 코스보다 서너 타 더 나온다는 얘기다.

카누스티는 16세기부터 골프를 즐겼다고 한다. ‘최초의 프로골퍼’로 불리는 앨런 로버트슨과 올드 톰 모리스가 10홀을 18홀 코스로 정비하고 1839년에 개장했다. 하지만 어려운 코스로 소문이 나면서 어려운 코스를 보는 두려움을 뜻하는 ‘카누스티 효과’라는 말까지 나왔다. 세인트 앤드루스처럼 형태는 퍼블릭 코스이고 주변에 골프 커뮤니티인 여러 클럽들이 모여서 이 골프장을 이용한다.

이미지중앙

카누스티 로고.


골프장을 찾으면 5층의 흰색 골프 호텔 건물이 눈에 확 들어온다. 여느 스코틀랜드 골프장의 소박한 클럽하우스와는 달리 전 세계 수많은 골퍼들이 찾는 명승지가 됐다. 디오픈을 개최하는 챔피언십 코스 옆으로 퍼블릭 번사이드(Burnside), 부돈링크스(Buddon Links), 무료 라운드가 가능한 5홀 코스 더 네스티(Nestie)까지 합쳐 59홀의 규모로 커졌다.

클럽 로고는 재미있다. 큰 참나무 위를 까마귀 세 마리가 맴도는 모습이다. 1천년 전인 1010년 바리전투에서 유래된 설이 전해진다. 스코틀랜드 왕 말콤 11세는 카무스 장군이 이끄는 스칸디나비아 침략군을 쫓아냈는데 이에 격분한 노르웨이의 신들이 저주를 걸어 수천 마리의 까마귀가 이 지역에 난입했다고 한다. 이후 이 지역이 크로우네스트(Crow’s Nest) 즉 ‘까마귀 둥지’로 알려졌고 그게 곧 카누스티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티오프 시간은 오후 4시46분이어서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바닷가 까마귀인 ‘루커리’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에서는 바삭바삭한 피시 앤 칩스, 구운 연어를 주문했다. 다녀본 골프장 클럽하우스 음식 중에 최상급의 맛이었다.

로고에서 본 참나무는 코스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다. 15번 홀 티 샷을 할 때 이 참나무를 겨냥하라고 가이드북에서는 안내한다. 여기서 아마도 1천 년 전의 신이 용기와 배짱을 가진 우승자를 점지하는 것일 수 있다. 그 다음 홀부터 최고로 어려운 테스트 3홀이 이어진다. 바닷가에 코스가 있어 까마귀와 갈매기는 자주 보였으나 코스 내에서는 바다는 볼 수 없었다.

이미지중앙

풀카트를 끌고 18번 홀로 들어섰다. 밤 9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지난해 <골프매거진>에서는 ‘세계 100대 코스 39위’에 올렸고 지난달 발표한 2022년 골프다이제스트에서는 ‘미국 제외 39위’로 선정됐다. 세계적인 명소여서 부킹이 어렵지만 세계 100대 코스 전문 여행사인 센텀골프를 통해 디오픈을 한 주 앞둔 주간에도 라운드할 수 있었다.

영국은 7월에는 해가 10시 넘어서까지 밝아 골프라운드가 가능하다. 9시 반 무렵 마지막 홀에 들어설 때 석양이 지려는 듯 서쪽으로 붉어지고 있었다. 내 뒤로도 라운드를 하는 골퍼들이 코스에 가득했다.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스코어들이 17번 홀까지 난무했으나 마지막 홀에서 다행히 세 번째 샷으로 공을 그린 주변에 보내고 나는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라운드 중간에 잃어버린 볼 들과 수많은 좌절은 다 잊은 듯 더블로 막았다. 마치 장 방드 밸드와 경쟁해서 이긴 듯한 희열이 가슴에 차올랐다.

sports@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