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월’ 앞에 흔들리는 EU...돌파구는 어디에
2022-07-12 11:29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2월 원전 6기를 새로 짓겠다며 원전으로의 회귀를 선언했다. 지난 5월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운영하는 원전이 담피에흐엉부를리에서 가동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6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유럽 의회 의원들이 원전과 천연가스를 친환경 사업에 포함할지에 대한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투표 참여 의원 639명 중 과반이 찬성해 원전과 천연가스는 친환경 투자 기준인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됐다. [AFP]

역사적으로 갈등은 에너지 전환의 속도를 높였다. 19세기 해전으로 배들은 풍력이 아닌 석탄으로 가동되기 시작했고, 제1차 세계대전은 석탄에서 석유로의 전환을 가속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원자력도 주요 에너지원으로 부상했다.

지난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도 세계 에너지 흐름과 시장에 큰 변화와 타격을 줬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에서 손을 떼기 위해 여러 국가가 대체 에너지원을 모색하고 있지만, 에너지 공급과 가격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아 딜레마를 겪는 국가가 대부분이다.

특히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세계가 눈을 돌리기 시작한 시점에 전쟁이 시작돼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이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수입을 차단하면서 탄소를 배출하는 화석 연료로 다시 회귀하는 국가가 많아져서다.

이는 세계가 탄소배출량 ‘0’을 달성하자고 합의한 ‘넷 제로’ 목표와 모순된다. 그러나 치솟는 가스, 원유 가격을 견디지 못하고 선택권이 없는 국가들은 일시적으로 화석 연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실제로 데이터 분석기업 카이로스SAS에 따르면 올해 2월 이후 탄소 배출량은 2019년 수준에서 6%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지정학적 위기나 사건에 의해 에너지 전환에 장벽이 생기는 현상인 ‘그린월’을 어떻게 넘어서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화석 연료에 일시적으로 의존하더라도 동시에 에너지 전환을 위한 대체 방법을 세심하게 검토하고 관련 정책을 빠르게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지난 6일 유럽연합(EU) 의회 앞에서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친환경으로 분류하는 ‘그린 택소노미’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이 들고 있는 팻말에는 “가스도, 원전도 안 된다”, “우크라이나와 연대한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그린피스 제공]

▶에너지 전환 두고 ‘분열’한 EU...“기후 리더십 부재”=연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을 90% 감축하는 데 합의한 유럽연합(EU)은 대체 에너지를 찾는 과정에서 분열하고 있다.

앞서 넷 제로 목표 수립을 선도한 EU는 2020년 3월 기후 법안인 ‘그린딜’을 채택해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이후 2년간 그린딜 달성을 위한 회원국의 노력이 이어졌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노력이 뒤집어질 위험에 처한 것이다.

지난 6일 EU 의회는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를 친환경 투자 기준인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투표 참여 의원 639명 중 과반이 찬성해 기존 안이 가결됐다.

그러나 천연가스는 온실가스를, 원자력발전소는 원전 폐기물을 배출한다는 이유로 여러 회원국이 이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지난해 11월부터 원자력발전을 친환경 사업으로 인정할 경우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는데, 택소노미안이 가결되자 레오노어 게베슬러 오스트리아 에너지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룩셈부르크는 이에 지지를 표명했고, 스페인과 덴마크도 소송에 참여를 고려하겠다고 전했다.

특히 원전으로의 회귀를 두고 회원국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에서 ‘기후 리더십’을 이끈다고 알려진 프랑스와 독일이 이를 두고 방향을 못 잡고 있다. 유럽외교협회(ECFR)이 지난 2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EU 회원국 60%가 독일을, 50%가 프랑스를 기후 리더로 보고 있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로 두 국가에 대한 의존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랑스는 지난 2월 신규 원자로 6기를 새로 짓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17년만에 전력공사(EDF)의 완전국유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반대로 탄소 배출 우려에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연기를 감행한 독일은 원전 복귀에 반대 입장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양국의 불협화음이 EU 에너지 전환에 불확실성을 더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프랑스가 이번 택소노미 결정에서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집중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독일을 두고 전문가들은 청정에너지와 에너지 공급의 연속성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 구체적으로 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며 리더로서 신뢰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ECFR은 유럽 국가들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에너지 안보를 지키려면 자원을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 투자 속도 높여야...“원자재에 주목”=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탈탄소 움직임이 거꾸로 가면서 에너지 전환이 당분간 어려워질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오히려 지정학적 위기를 ‘기회’ 삼아 전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화석연료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가격이 오르게 되면 신재생에너지나 청정에너지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는 이점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비록 EU가 화석연료와 석탄을 일시적으로 가동하고 있지만, 동시에 풍력과 태양열, 그리고 탄소 포집 및 저장 시설에 대한 투자도 급증했기 때문에 에너지 전환의 전망이 나쁘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 EU는 2025년까지 태양열 용량을 320GW 늘리고, 10년 뒤에는 600GW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위스 안보연구센터(CSS)는 유럽의 에너지 전환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며, 에너지의 지속적인 공급과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모두 균형 있게 가져가려면 원자재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자재가 곧 신재생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슈로더는 EU의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따라 코발트 수입이 350% 증가할 것이고, 리튬 수요가 35배 높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코발트, 리튬, 티타늄 등은 전기 배터리와 태양열 발전에 필수적이다. EU는 코발트의 68%를 콩고에서, 리튬 78%를 칠레에서, 티타늄의 45%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CSS는 원자재를 독점하고 있는 국가들이 많기 때문이 이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해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속도를 붙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찰스 무어 국제 에너지 연구기관 엠버의 유럽 책임자는 “탄소 배출량이 많아지는 것은 위험하지만, 풍력과 태양열 발전이 결합한다면 아마도 더 빠른 에너지 전환을 의미할 것”이라고 말해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유혜정 기자



yooh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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