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들의 떡메치기, 추석에야 “미안하다.사랑한다”
2022-09-11 15:06


중앙아시아 고려인 동포들의 명절 떡메치기


고려신문을 읽는 우리 동포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나라 잃었던 시절, 만주, 연해주 등 우리의 고토에 많은 국민이 이주했고, 그들 중 상당수는 그곳에 활발하게 벌어지던 독립운동을 도왔다. 조-청 간 불평등 조약에 의해 백두산 정계비(1712년)가 세워졌어도 연변을 포함한 동간도와 산동을 포함한 서간도는 우리 땅이었다.

해방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연해주에 남은 동포들은 동부러시아가 한민족의 주도권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강제조치로 중앙아시아에 이주해야만 했다. 만주와 산동에 있던 동포들은 중국 국적이 되고 말았다. 요동,길림,흑룡강 지역 주민과 한국과의 교류는 한중수교 이후 30년간 이어져왔지만, 중앙아시아에 강제 이주된 동포들, 즉 고려인들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여전히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 최근 20년동안 개별적으로 고국을 찾은 고려인 후손들이 우리나라 학교의 학생이 되고, 광주광역시 등에 거주지를 마련하면서 최근 들어서야 고려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얼씨구 좋다” 고려인들의 흔한 춤사위

▶한민족 디아스포라, 더 관심 기울일 때= 추석 명절을 전후해 고려인의 삶을 조명하는 특별전시회가 서울 삼청동 가는 길목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진행돼, 감회가 새롭다. 고려인들은 연중 특별한 날이 되면 홍범도 장군(의병 총사령관), 김병화 독립운동가의 영전에 헌화하고, 명절이 되면 떡메치기, 명절음식 나눠먹기 등을 한다.

덜 기억하고 덜 사랑했던 만큼, 이제는 우리 핏줄 고려인들을 더 기억하고 더 사랑해야 할 때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 및 카자흐스탄 간의 수교 30주년을 맞아, 사진작가 빅토르 안(Виктор Ан)이 기증한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일상 사진 352점을 바탕으로 특별전 ‘까레이치, 고려사람’을 열고 있다. 오는 11월7일까지 이 박물관 기획전시실2에서 이어진다.


홍범도 장군 동상에 헌화

전시는 지난 세기,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중앙아시아의 낯선 땅에 흩뿌려진 한민족 동포들이 정착과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해 온 일상의 흔적을 그린다. 전시된 60여 점의 사진에 표현된 고려인의 일상에서는 이국적인 현지의 주류 문화와 고려인 공동체가 유지해 온 오랜 전통, 그리고 멀리 떨어진 조국의 영향들 사이에서 중첩된 정체성을 형성해 온 고려인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

고려인의 삶을 포착한 사진작가, 빅토르 안은 뒤늦은 고백을 한다. “80년대 중반쯤, 고려인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 생각이 들었고, 그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중앙아시아에 자리잡은 고려인 동포들

그는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고려인 사진작가이다. 그는 소련 시절이던 1978년부터 고려인을 위한 민족어 신문 ‘레닌기치(Ленин киӌи)’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며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 마찬가지로 민족어 신문인 ‘고려일보(Корё ильбо)’를 거치며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지역 고려인의 역사와 생활상을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해 오고 있다.

고려인의 시점으로, 고려인의 삶과 역사를 포착한 그의 작품들은 한민족 디아스포라 연구에 유용한 자료라는 점은 물론, 지금껏 국내 어디에도 기증·소장된 바 없는 희소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이를 높이 평가하여 ‘재외한인동포 생활문화조사: 중앙아시아’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22년 5월 빅토르 안으로부터 352점의 사진을 기증받게 되었다.


고려인들의 음식 나누기

▶본국에서 사라진 우리 시골, 고려인의 삶= 전시는 ‘일생의례’, ‘세시’, ‘음식’, ‘주거’ 등 민속 분야에서 익숙하게 사용되어 온 키워드로, 9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고려인의 생활문화를 보여준다.

이 사진들이 전달하는 공통적인 인상은 익숙함과 낯섦이라는 모순적인 감상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이는 고려인의 생활상이 여러 문화에 기원을 둔 다양한 삶의 양식들을 자원으로, 상황과 환경에 맞춰 재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함경도를 비롯한 한반도 동북지역의 전통과, 소련 시절의 민족 정책으로 크게 영향을 받은 러시아 문화, 우즈베크 민족이나 카자흐 민족 등 주변문화들, 그리고 현지의 자연환경 등 다양한 문화적 자원과 요인들의 상호작용이 있었다. 우리가 고려인의 생활상에서 익숙한 듯 낯선 인상을 받는 것은 한국문화를 바탕으로 어떤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대단히 다른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김병화 독립운동가에 헌화

빅토르 안은 “옛날에 고려인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부끄러워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는 친구들과 하늘 아래 우리들의 자리와 권리를 주먹으로 쟁취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기였습니다”라고 회고한다.

소련 시절 이래로 중앙아시아에서 널리 통용되는 러시아어에서는 한국인도, 조선인도, 고려인도 모두 ‘까레이치’(Корейцы)이다. 영어의 ‘코리안’(Korean)처럼 러시아어에서 이들의 구분은 모호하다.

그에 반해 고려인들은 스스로를 ‘고려사람’(Корё сарам)이라고 말한다. ‘고려사람’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은 고려인들이 그들 조상들처럼 연해주의 조선인도 아니고, 멀리 떨어진 조국의 한국인과는 구별되는 어떤 다른 범주의 공동체라고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이 고려인 공동체를 떠받치는 것은 분명 이역만리 중앙아시아의 낯선 땅에 끌려와 생존과 정착을 위해 세대를 거듭하며 고군분투해 온 기억이다. 그것은 과거의 조선인도, 오늘날의 한국인도 갖지 않은 고려인만의 경험인 것이다. 전시에 공개된 사진에서 발견되는, 한민족의 전통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여러 민족의 문화가 융합된 생활상은 고단한 이주와 정착의 서사가 만들어 낸 다채로운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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