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독범죄학회보, 주식중독자들 인터뷰 게재
“중독자들, 노동에 대한 왜곡된 시각 보여” 지적
“중독 증세 부정하는 모습도 나타나”
주식중독 상담자, 코로나 사태 이후 1년만에 2배
전문가들 “미디어·업계, 주식 위험성 적극 알려야”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초저금리 환경 등으로 주식 열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큰 돈을 잃고도 주식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2019년부터 주식 중독에 헤어 나오지 못해 상담센터를 찾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한국중독범죄학회 등에 따르면 안영규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중독범죄학회보에 발표한 논문 ‘주식중독의 원인 및 대응방안’을 통해 수억원을 잃고 수년간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있음에도 정상 생활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4명의 주식중독자를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발표했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주식투자로 단기간에 돈을 벌게 되면서 노동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보였다. 주식으로 1억원을 잃은 30대 남성 A씨의 경우 과거 떡볶이집, 휴대폰 대리점을 운영했을 정도로 노동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으나 주식을 시작한 뒤 일상이 달라졌다고 한다. A씨는 “과거 번 돈으로 주식을 좀 했는데 (이젠)다 날렸다”고 고백했다.
기업의 가치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단기 매매 위주의 주식투자를 하거나, 주식으로 인한 손실이 커지자 급기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이들도 있었다. 40대 여성 B씨는 “주식할 때 투자 마인드나 기업의 가치, 기업 구조 등은 모른다. 그냥 돈이 되는지만 보는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전부 투자했다가 1억(원)을 날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주식투자가 불법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주식 중독을 인지하는 데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울러 주식의 사행성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투자와 투기에 대한 구분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B씨는 “그래도 투자하다가 날린 것이지 (나는)중독자가 아니다. 알코올 중독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40대 남성 C씨 역시 “주식 그만하라고 상담 받을 때마다 (제가)단순히 종목을 잘못 고른 것이지 중독치료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대상자들은 미디어에서 주식 투자를 홍보하지만, 투기나 중독에 대한 경고는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A씨는 “텔레비전을 봐도, 라디오를 틀어도 ‘주식해라. 대박 난다. 투자해라’는 등의 말만 나오지, ‘주식하다 패가망신한다. 투기니까 하지 마라’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주식 중독자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코로나19로 인한 환경이 있었다. 사행산업통합관리감독위원회가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의뢰·제작, 지난해 10월 발간한 ‘2020년 사행산업 이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 경험이 있는 689명 중 시작 시기가 코로나19라고 대답한 이들은 297명으로 43.1% 비율을 기록했다.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반면, 주식으로 인한 중독 증세를 호소하는 이들이 일선 상담센터를 방문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주식 문제로 이 곳을 찾는 의뢰인은 매년 100명 정도였다가, 2019년 219명, 2020년 402명으로 늘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폭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정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주식을 시작할 때 중독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미디어나 주식을 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 등에서 주식 중독의 위험성을 알리는 메시지를 투자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초단기 주식 투자는 도박적 성격에 부합하지만, 도박과의 경계가 매우 희미해 더욱 위험하다”며 “그런 와중에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20~30대나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생각하는 사행문화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맹목적 투자 심리가 늘어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주식 성공담’과 같은 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흔하게 올라오는 문화도 바뀔 필요가 있다”며 “미디어나 주식을 투자하는 곳에서 주식이 얼마나 도박성이 있고,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특히 주의해야 하는지를 업계 차원에서 책임 있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