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리치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더 이루고 싶은 것들이 남았을까. 이들의 ‘생각’은 자서전에, 평전에 차곡히 담겨 있습니다. 의외로 많은 세계의 부호들이 책을 냅니다. 자서전을 쓰거나, 전문작가를 기용해 평전을 냅니다. 소설이나 시집을 발표하는 부호들도 있습니다. 그런 슈퍼리치를 대신 읽어 드립니다. ‘슈퍼리치 읽어주는 기자’ 연재를 시작합니다.

[SUPERICH=이세진 기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 그리고 ‘자수성가’ 억만장자. 언뜻 보기에 양립하기 어려울 것 같은 두 타이틀이 한 사람에게 붙어 있다. 알 왈리드 빈 탈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62).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의 아들 탈랄의 아들 알 왈리드’라는 뜻의 길고 긴 이름이다. 이름 꼭대기(?)에 있는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현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다. 즉 이 사람은 사우디아라비아 초대 왕의 손자이고, 이 왕국의 왕자이다.

[슈퍼리치 읽어주는 기자] <3> ‘비즈니스맨, 억만장자, 그 다음이 왕자’ 알 왈리드-copy(o)1-copy(o)1

구구절절한 이름을 제쳐놓고 ‘알 왈리드’라고만 부른다고 해도 가리키는 것은 이 한 사람이다. 알 왈리드는 서방 세계가 가장 친숙하게 느끼는 사우디 왕자이자, 고향 사람들의 시각으로는 서양식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별난 사업가다.

그는 왕족이라는 배경과 인맥에도 불구하고 자수성가한 사업가임을 몸소 증명해 왔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3만 달러(3500만원)로 1980년 시작한 작은 컨테이너 사무실 속 회사는 높이가 1km에 달하는 초고층 빌딩(2019년 완공예정) 건설까지 이어졌다. 블룸버그(Bloomberg)가 추정한 그의 자산은 194억달러(22조5000억원)이다. 그는 씨티그룹, 펩시콜라, 애플, 트위터, 포시즌호텔, 타임워너 등 사람들이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워렌 버핏과 종종 비교되며 ‘아라비아의 버핏’이나 ‘미국의 알 왈리드’로 불리는 것이 영광이라고 서로를 추켜세웠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분명 의심의 눈초리도 존재한다. 왕족은 비즈니스 관계에서도 엄청난 특권이고 그 또한 이 특권을 누리고 성장했으리란 것은 자연스러운 추측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2005년 발간된 평전 ‘알 왈리드, 물은 100도씨에서 끓는다(리즈 칸 지음)에서는 알 왈리드를 왕자라는 신분보다 비즈니스맨으로서의 모습을 먼저 강조한다. 책의 원제 ‘알왈리드:비즈니스맨, 억만장자, 왕자(Alwaleed: Businessman, Billionaire, Prince)’가 암시하는 부분이다. 국내에서 이 평전은 알 왈리드의 오랜 친구로 알려진 최규선 썬코어 회장의 번역으로 지난 2015년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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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왈리드는 왕자의 신분이지만 쉽지 않은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아버지 탈랄은 보수적인 사우디 왕가에서 거의 유일한 개혁세력이었다. 진보 조직을 만들어 국왕 권력을 약화시키자고 주장했다. 결국 당시 국왕과 갈등을 빚고 분열을 조장한다는 여론을 얻었다. 여권을 압수당하고 망명 생활을 했다.

이같은 풍랑 속에서 어머니가 든든한 바람막이 역할을 해 줄 수는 없었다. 어머니 모나는 레바논 정치인의 딸이었다. 혈통을 중시하는 사우디 사회에서 알 왈리드가 ‘성골’은 아니었던 셈이다. 여기에 7세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한 후 유년 시절의 알 왈리드는 레바논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오가면서 지냈다. 그는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BBC와 CNN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력이 있는 저널리스트 저자는 주변인 인터뷰를 통해 “알 왈리드는 공부에 흥미가 없었으며, 가출을 일삼는 반항아였다”는 회상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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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먼로대학에 진학한 후 그는 경영학 공부에 매진한다. 1980년 졸업 후 아버지가 준 3만 달러로 부동산ㆍ건설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의 호황은 그가 빠르게 자산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순풍에 돛 단 듯 사업이 불어났다. 내친김에 그는 시라큐스대 사회과학 박사과정에 진학해 11개월 만에 학위를 땄다. 사우디에 돌아왔을 때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미국식 경영방식’이 키워드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생소했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단행하고, 과감한 구조조정과 유망 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방식 등을 택했다. 그는 시장을 형성하는 전문가로 도약하기를 꿈꾸며 은행 인수를 추진한다. ‘금융 정보력’이 그가 생각한 진짜 힘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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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망하기 일보 직전이던 사우디연합상업은행(USCB)를 인수했다. 7% 정도의 지분을 보유하고 주요 주주들의 위임으로 경영권을 확보했다는 발표는 사우디 재계를 놀라게 했다. 바로 수준 미달의 직원 600명을 과감하게 해고하고 체질 개선에 나섰다. 성과보상제도를 도입하면서 직원들의 의욕을 돋웠다. 그 자신도 하루 열 네 시간씩 일하면서 은행 임직원들의 신뢰를 얻기 시작했다. 인수 후 2년만에 USCB는 흑자로 돌아섰고, 곧 알 왈리드의 은행 지분은 30%를 넘어섰다.

지분투자, 인수, 합병은 계속됐다. 2017년 현재 그의 투자회사 킹덤홀딩컴퍼니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시티그룹, 포시즌스, 페어몬트래플스, 타임워너, 징둥닷컴, 이베이, 애플, 트위터, 모토로라 등 세계 최고ㆍ최대 기업으로 구성돼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경제의 전반적인 호황이 그의 자산 상승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자산에는 ‘오일 머니’를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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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억만장자로서 삶 말고도 그에게는 언제나 왕족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이 따라다닌다. 그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행동한다. ‘알 왈리드, 물은 100도씨에서 끓는다’의 첫 장은 2001년 9ㆍ11테러 당시 알 왈리드의 행동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그는 두 대의 비행기가 쌍둥이빌딩으로 돌진한 뉴스를 본 직후 “무언가 행동을 취해야 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모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서둘러 수행단을 소집한 알 왈리드는 뉴욕 그라운드 제로(월드트레이드센터가 무너진 자리)로 향했다. 당시 뉴욕 시장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를 만나 1000만달러(115억원)를 전달하고 애도와 연대를 표시하려던 계획이었다. 성명에서 그는 이 테러를 “천인공노할 범죄”라고 규정했지만, “미국 정부는 중동정책을 재검토하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좀 더 균형 있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인 말에 불이 붙었다. 뉴욕 시장은 곧바로 성금을 돌려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훗날 이 사건은 “해야 할 말을 한 것”이라는 옹호 의견과 “정치적으로 소비되어버린 선의”라는 의견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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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는 2015년 자신의 재산 320억달러를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혀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알 왈리드는 빌 게이츠와 멀린다 게이츠 부부가 1997년 세운 게이츠재단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알 왈리드 재단’을 세운 그는 이미 재단에 35억달러 이상을 출연했다. 사우디의 문화, 여성, 청년, 재난구조 문제 해결 등에 기부금이 쓰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최근까지도 그는 개혁적인 발언을 이어나가고 있다. 아랍 여성들에게도 운전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알 왈리드는 자신의 트위터에 “여성 운전 금지를 둘러싼 논쟁을 이젠 중단해야 한다”며 “여성이 운전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여성 운전 금지가 권리 침해이기도 하지만, 백만 명이 넘는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는 만큼 그들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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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의 회사 킹덤홀딩컴퍼니의 여성 직원들은 매우 진취적인 환경에서 근무한다. 히잡을 두르지 않고 세련된 의상과 헤어스타일로 맘껏 멋을 부린다. 그는 자신의 딸 림 공주가 킹덤홀딩컴퍼니에 직원으로 취직해 승진을 거쳐 회사 일부분이라도 경영하게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딸이 스스로 운전도 하지 못하게 하는 구식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에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보수적인 왕가의 욕심 많던 어린 왕자에서, 반항의 시기를 거쳐 서양 문화에 눈을 뜨고 투자의 귀재가 됐다. 비즈니스맨, 억만장자, 그리고 왕자. 그의 혼합된 정체성이 동서양을 오갈 중동의 ‘현대적 리더십’으로 강력히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