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 축소에 부품 부족 겹쳐
1등급 서비스 제공 평판 옛말
‘소련 같은 미래 직면’ 평가도
러시아 최대 국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가 급전직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서방이 잇따라 제재를 가하면서 운항 노선이 축소되고 승객은 급감하면서다. 항공기 부품 부족으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처지가 임박했다는 관측도 있다. 1등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항공사라는 평판을 들었는데, 이젠 고립의 상징이 됐고 붕괴한 소련과 같은 미래에 직면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아에로플로트가 지난 3월 실어나른 국제선 승객수는 18만9000명으로 1년 전과 견줘 절반이 감소했다. 전쟁 전엔 56개 노선을 운영했는데 현재는 13개국만 오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연합(EU)은 아에로플로트에 임대한 항공기 회수를 결정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에 대응해 항공기 압류 조처를 내렸다. 아에로플로트는 벨라루스를 제외한 모든 국제선 항공편을 중단했고, 이후 조심스럽게 운항을 재개해 현재에 이르렀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컨설팅사 TS 롬바르드의 크리스토퍼 그랜빌은 “아에로플로트는 글로벌 표준에 맞게 구축됐는데, 러시아와 사업을 하고자 하는 지역으로만 갈 수 있게 됐다”면서 “서방 주도 경제 체제에서 차단된 러시아 경제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말했다.
아에로플로트의 상황은 더 악화할 거라는 전망이다. 350여대의 항공기의 대다수는 에어버스 혹은 보잉이 제작한 것인데, 부품 부족에 직면하고 있어서다. 항공데이터 전문사 IBA는 아에로플로트가 석달치 부품 공급량을 갖고 있고, 이후엔 기존 항공기의 부품을 떼어 재사용하기 시작할 것으로 추산했다.
러시아 경제매체 코메르산트는 예비 부품을 위해 항공기의 절반이 필요할 거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자국 생산 여객기로 수입 항공기를 대체하려고 했지만, 지난 10년간 치명적인 사고가 있었던 데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항공기를 내놓아 부품 부족을 메울 수 없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블룸버그는 아에로플로트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손실에도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허브로서의 위치를 활용해 2028년까지 승객수를 1억3000만명으로 늘리는 걸 목표로 삼았지만, 그 목표는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에로플로트가 1분기 실적 발표를 거부했다면서다.
블룸버그는 아에로플로트 이사회가 재정 안정화를 위해 이달 최대 1860억루블의 주식 발행을 승인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매체 인테르팍스는 러시아 정부가 국부펀드를 활용해 아에로플로트 자본을 재조정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지난달 보도하기도 했다.
MIT경영대의 항공 안전 전문가 아놀드 바넷은 “아에로플로트는 가까운 장래에 국내 항공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블룸버그는 아에로플로트가 수십년간 미국의 제재를 받아 황폐화한 이란의 항공 산업처럼 될 수 있다고 했다. 홍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