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치유의숲. 엄마와 아이의 산중 대화가 정겹다.
서귀포 치유의숲 ‘숲멍’ 쉼팡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산악정글 만경창파 제주에 인파 구경하자고 가는 게 아니다. 우리가 제주도에 가는 이유는 ‘제주 다움’을 만나기 위함이다.
제주 다움은 이국적 풍경, 속세와 타협하지 않은 호젓한 생태와 건강한 자연식, 세계지질공원·세계자연유산·인류무형유산·세계농업유산 등 글로벌 7관왕이 갖는 신비롭고 억척스런 자취와 이야기 등이다.
“제주, 당신은 누구시길래..”라는 질문으로부터 제주스러움의 탐색이 시작된다. ‘제주도의 할머니’는 남쪽 바닷속 수생화산 연쇄 분출로 모래톱에 퇴적물이 쌓여 대지를 이룬 서귀포층이다. 이 일대 해발 500m 안팎인 중산간은 150만~170만년 뒤, ‘제주도의 종손’이라 할 수 있는 한라산 폭발의 여파가 더해지면서, 제주도 180만년 지질의 원형와 변형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토털힐링 취다선의 명상과 힐링테라피
병원이 개설한 WE호텔의 워터테라피
▶중산간에서 병마 이긴 숲동지 오종석-양은영= 남태평양에서만 잘 보인다는 장수의 상징 ‘카노푸스’ 별이 관측되는 국내 유일의 지점, 중산간 숲의 건강성은 심신 치유에 직접적인 효과가 있다는 간증까지 잇따른다. 자연을 과학으로 승화시킨 WE테라피, 취다선 명상 등 제주의 공인 웰니스 여행지는 싱싱한 날것과 첨단 문명을 겸비한다.
서귀포시청 산림휴양관리소 양은영 주무관과 오종석(67) 산림휴양해설사, 두 숲 전문가 모두, 치료가 쉽지 않다는 병 때문에 고생하다 운명의 장난처럼 서귀포 치유의 숲을 가꾸고 다듬는 일에 함께 몰두하던 중 병마를 내쫓았다.
산림치유지도사를 겸하고 있는 양 주무관은 “동지 같고 삼촌 같은 오종석 해설사가 마을 이장 시절, 이 숲을 함께 가꾸던 중 뒤늦게 병세를 확인했다는 소식에, 그리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숲을 살피다가 기적 처럼 치유했다는 소식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마을 이장 시절 이 숲을 가꾸고, 이 숲 때문에 난치병을 고친 오종석(67) 산림휴양해설사
한라산 정상 백록담과 서귀포 해안가 패류화석 딱 중간 지점 해발 400~760m 기슭에 착상한 서귀포치유의숲은 대나무공예 차롱, 특산 발효차인 한라암차, 옛 마장터 이야기, 고령층도 취직하는 주민행복 일자리 등 이 마을 사람들의 생활문화 소개부터 시작한다.
▶정겨운 제주 방언, 건강의 길이 되다= 이어 ▷가멍오멍 노고록(여유롭게 쉬는) ▷가베또롱(가뿐한) ▷벤조롱(산뜻하고 멋진) ▷숨비소리(수중물질 끝낸 해녀의 쇳소리나는 거친 호흡) ▷오고생이(있는 그대로의) ▷쉬멍(쉬면서) ▷엄부랑(엄청난) ▷산도록(시원한) ▷놀멍(놀며) ▷하늘바라기 등 치유숲길 ▷힐링센터(자율신경계, 혈암, 차건강, 편백테라피) ▷숲속의집(건강휴게실) 등 자연건강숲& 테라피 체험이 자연속에서 생태과학적 순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곳이다. 숲을 가꾼 사람과 그 사람을 고친 자연이 이상적으로 공존하는 곳이다.
초입부터 휠체어가 갈 수 있게 경사가 완만한 꼬불꼬불 나무 데크길을 만들어 장애인도 등산의 기쁨을 얻도록 배려했다.
산지의 무장애여행시설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나무데크길를 지나다 보면 의자 없는 족욕시설을 만난다. 장애인 전용으로 휠체어에 탄채, 양말을 벗은 다음, 참 힘들었을 발을 힐링시키는 곳이다. 유니버설 로드, 맨발 톱밥길은 걸으면서 발마사지를 하도록 부드러운 요철도 간간이 놓았다.
서귀포 치유의숲에는 휠체어 탄 국민도 등산한다
▶의도된 멈춤, 숲멍 쉼팡= 듬성듬성 나무 사이로 데크 휴식시설이 있는 숲속 광장에선 콘서트도 열린다. ‘의도된 멈춤’이라고 한다. ‘숲멍(숲속 멍때리기)’을 권하는 쉼팡(쉼터)인데, 6개가 조성돼 있다. 상체를 낮게 하고 다리를 올릴 수 있는 특수 평상도 있다. 불규칙하게 놓여 있는 그루터기들은 관객석이다. 콜롯세움 원형경기장 처럼 객석이 무대 보다 높다. 어느 연주회가 있던 날, 외국인 VIP들이 와서 그루터기-나무토막 관객석을 보고 “원더풀”을 연발했다고 한다.
‘위로 챌린지 포토존’에 걸린 소원글귀는 2019년까지만해도 돈과 부자 얘기가 많았지만, 지난해부터 요즘 까지 온통 친지의 건강과 안전이다.
군데군데 사람이 살던 터도 보이고, 돌담을 양쪽에 야트막하게 세운 옛 산중 도로도 만난다. 정글 같은 산을 다닐 때 길을 잃기 쉬우니 밭담의 1/3 높이로 도로경계를 해둔 것이다. 목재 선베드는 ‘숲멍’과 휘톤치트 흡입용이다. 세 번째 쉼팡에는 해먹도 있다.
조록나무, 서어나무, 자금운, 백양금 등이 서식하는 숲 사이로 새소리도 들린다. 팔색조, 뻐꾸기와 두견이, 박새, 직박구리 외에 제주 특유의 흰배 지빠귀, 제주큰오색딱다구리, 제주휘파람새, 동박새도 있고, 육지에선 백두산과 개마고원에만 있는 참새목의 곤줄박이도 산다.
‘위로 챌린지 포토존’에 걸린 소원글귀
비교적 높은 곳에 있는 엄부랑숲은 거대한 옛 집터이다. 규모로 보아 한양 양반가 규모는 되어보인다. 돼지우리 겸 화장실로 이용하던 ‘돗통시’ 흔적까지 있는데, 잔여물에 보리씨를 섞어 파종하면 척박한 땅에서도 건강한 보리가 자란다.
▶건강한 차롱치유 밥상 이어지는 상효원= 엄부랑숲은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로 치솟고 사이사이 곶자왈 정글 같은 풍경이 섞인 곳으로 인생샷 포인트이다. 숲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새소리 처럼 청량감을 준다. 힐링하우스 숲속의집에서 대나무 바구니 도슭 ‘차롱치유밥상’을 준다. 수유실도 있고 장애인도 어느 시설이든 편안히 이용할 수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최근 정밀조사를 통해, ‘제주도 서귀포 치유의 숲의 피톤치드는 비교적 높은 수준의 농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산림치유 효과를 제공할 것’이라는 내용을 보고서를 냈다. 오전9시, 오후5시가 최대값으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농도라고 한다.
이곳은 하루 600명(평일 300명) 한정, 서홍동 마을기업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거리두지 않기가 불가능한 이곳은 문체부-한국관광공사 열린관광지, 한국관광공사의 강소형 잠재관광지, 제주관광공사의 웰니스(웰빙+해피니스)관광지, 산림청 아름다운숲 등 6관왕에 올랐다.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시작해 머체왓 숲길까지 16㎞ 구간에는 건강숲이 촘촘히 도열해 있다. 머체왓숲에선 ‘오징어게임’ 이전, 넷플릭스 한국드라마 첫 글로벌 히트작인 ‘킹덤’을 촬영했다.
상효원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동쪽으로 6㎞ 떨어진 지점에 있는 상효원은 약 8만평 규모의 수목원이자 꽃밭이다. 꼬마기차가 용암계곡, 핑크뮬리꽃밭, 제주 토종의 한란과 새우란, 하트 꽃의 정원, 100년 이상의 노거수와 상록거목 숲, 곶자왈 정글 등을 다닌다. 멸종위기식물을 보존·전시하는 식물자원연구소도 있다. 청정 에듀테인먼트 공간이다.
상효원의 가성비 높은 음식은 제주식재료를 이용한 동서고금 퓨전 건강식인데, ‘맛 보다는 건강’이라는 건강음식의 특성과는 조금 다르게, 맛이 참 좋다.
▶고살리= 효돈천 상류지점에 있는 고살리숲길 입구는 2㎞만 더 가면 나온다. 대로변에서 한라산 쪽으로 가다가 한라산 남쪽 첫마을인 하례2리(고살리) 어귀까지 가는데, 숲길 초입을 찾기가 쉽지 않다. 비교적 넓은 개천변 임도를 찾아 들어가서 사람 허벅지 높이의 큰 바위 두 개가 바리케이트처럼 놓여 있다면 제대로 찾은 것이다.
숲이 워낙 호젓해, 시인 도종환(문체부 장관 출신 국회의원)이 칭송해마지 않던 사려니숲길 같은 고독감도 들지만, 효돈천 상류의 물빛이 언듯언듯 얼굴을 내밀며 동행해 준다.
고살리숲길과 개천 사이, 파란만장한 지질변화를 말해주든 뒷용암의 앞용암 추돌로 빚어진 밧줄구조, 까칠하지 않고 맨질맨질한 현무암 등을 볼수 있다.
고독감 마저 느껴지는 고살리숲길을 가다 갑자기 마주하게 되는 속괴와 바위옆 적송
강으로 내려가면 중산간에서 변화무쌍한 용암의 운동을 보는 듯 쭈글쭈글 밧줄구조의 바위도 보이고 비가 오면 강물이 급경사를 미끌어져 간 듯 맨질맨질한 현무암도 있다.
고살리숲 개천변 나무는 비가오면 급경사를 따라 휘몰아지는 강물로 넘어질 듯 하다 ‘이 물 또한 지나가리라’ 믿고 버틴 끝에 물 빠진 맑은 날 몸을 지탱하며 몸의 균형을 더욱 탄탄하게 해줄 판근(육상 뿌리)를 문어발처럼 뻗는다. 심지어 지상에 판근으로 울타리까지 친다.
고살리 나무가 돌무지 위에서 자라면서 불안정하자 몸을 지탱하기 위해 지상으로 판근을 뻗어 심지어 울타리모양까지 만들었다.
한라산 남행 개천은 거의 다 건천인데, 효돈천 상류인 이곳엔 이례적으로 물이 간간이 보인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속괴’다. 해발 700m 지점에 있는 큰 늪(沼:소)이다. 맑은 물이 고여 있는데, 비오는 날엔 큰 폭포가 장관을 이루고 맑은 날에도 폭포자국을 따라 물줄기가 떨어진다. 네모난 바위 옆에는 적송이 온갖 비바람과 엄찬난 양과 속도의 물살에도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서 있다. 마치 바위 위에서도 의연하게 자라는 금강송 같은 모습이다.
▶이승이오름의 희망 무지개, 중산간선 흔한 일= 속괴 폭포 옆 햇빛에 비친 검은 현무암-초록 수변식물이 소(沼)에 반영된 모습이 환상적이다. 주민들 사이에 ‘영(靈)발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기도를 올린 흔적도 있다. 물 보다 돌이 많은 계곡 옆 숲을 걷다 이런 풍경을 만나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분위기를 느낀다. 환경부 지정 자연생태우수마을이고, 한국관광공사 비대면여행지, 제주관광공사 남부권 비대면안심관광지로 선정됐다.
이승이오름 가는 길 목장에 뜬 무지개. 흔한 일이다.
이승이오름 해그문이소
바로 옆 이승이오름을 가는 동안 목장 위로 무지개가 떴다. 무지개 아치 아래로 초원의 풀을 뜯는 소들의 평화로운 모습이 사람의 마음까지 달랜다.
이승이오름은 녹나무과 생달 나무, 털단풍나무, 곰솔, 삼나무 숲과 함께 신례천이 함께하는 숲-계곡-한라산둘레길의 매력을 모두 가진 곳이다. 남쪽 중산간 다운 강한 일조량과 계곡의 습도가 파란만장 교차하면서 단풍이 참 때깔나게 드는 곳이다. 겨울엔 눈과 붉은 동백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과거 사용하던 숯가마, 표고건조장도 자연과 잘 어울린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승이와 진수내= 물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 개천도 산책길 같았는데, 나무로 둘러친 터널에 좀더 다가가자 예상을 뒤엎고 연못이 나온다. ‘해가 가려진’ 이라는 뜻을 가진 ‘해그문이소’이다. 턱도 없는 비약적 연상 작용 ‘아낙수나문’이 떠오르지만 일행들 앞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한다. 신비한 느낌을 받은 건 사실이었다.
높은 절벽 위로 하늘 높이 뻗은 구실잣밤나무들이 숲터널처럼 하늘을 뒤덮고 있어 소(沼)에 들어서면 한낮에도 해를 볼 수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그문이소 근처에는 융단 같은 반석 사이로 하트모양, 삼각형 돌 웅덩이에 물이 고여 청년들이 반영사진을 찍는 포토존이 되고 있다. 제주관광공사의 비대면 안심관광지이다.
송당 진수내 청정옥수와 숨은 숲 여행지
믿고먹는 공공 로컬푸드, 성산포수협 활어위판센터의 활어회
성산 취다선 숙소로 가다 송당 어느 예술카페에 들른 뒤 주변을 산책하다 진수내(긴 개천)를 발견한다. 한라산 동쪽 경사의 수직, 즉 남북으로 흐르기에 물이 많은 천미천의 한 구간으로,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상’ 인생샷 숲도 있다. 늘 청정 옥수가 흐르는 긴(진) 개천(수내)이라는 뜻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제주 별장에 물을 대던 곳이라고 한다.
근처 예술카페엔 손님들이 꽤 있는데, 이 개천으로도 잘 오지 않거니와 그 뒷편에 숨겨진 숲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쩌다 만나는 주민들도 용케 찾아오는 호기심천국 탐방객에게 ‘이 숲 이름 좀 지어줘요’라고 청한다.
탐험가 처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처럼, 제주에서 나만의 수간모옥 같은 지점을 발견하면 보석을 발견한 희열, 건강해졌다는 개운함을 느낀다. 제주 숲 탐험은 가장 제주스러운 뉴노멀 웰니스의 가치를 얻으려는 여행자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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