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왼쪽)이 성 김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와 24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마친 후 도어스테핑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 미국이 한국 정부가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한 협의 의지를 계속해서 밝히고 있지만, 논의가 급진전하기는 아직 어려운 환경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은 조건 없는 대화를 강조하면서 북한에 계속 손을 내밀고 있으나, 대화 재개 여건에는 여전히 근본적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24일 서울에서 개최된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협의에서는 대북 관여 방안 가운데 특히 종전선언을 둘러싼 논의에 진전이 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김 대표가 지난 18일 워싱턴DC에서 노규덕 본부장과 협의한 뒤 기자들과 만나 종전선언 제안을 논의했다면서 “금주 후반 서울을 방문할 때 이 문제와 다른 상호 관심사에 관한 논의를 계속하길 고대한다”고 밝혀서다.
정부 안팎에서 김 대표가 미국 행정부 내부 검토를 토대로 이번 서울 협의에서 종전선언 문제에 더 진전된 입장을 밝힐지 주목해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이날 한미 협의 이후 "“노 본부장과 한국의 종전선언 제안을 포함해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니셔티브(different ideas and initiatives)를 모색하기 위해 계속해서 협력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협의 직후 발언과 비교하면 종전선언을 비롯한 대북 신뢰구축 조치를 모색하는 것에 좀 더 열린 태도가 감지된다.
김 대표는 이날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 외에도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이 자리에서도 종전선언 관련 입장을 밝힐지 주목된다.
그러나 김 대표가 종전선언 자체에 대한 미국의 스탠스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한미의 종전선언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이 대북 관여를 위한 ‘아이디어와 이니셔티브’를 종전선언에만 한정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도 읽힌다. 일단 종전선언으로 협의 의제를 좁혀 속도를 내겠다는 한국 입장과도 약간의 차이가 있어 보인다.
아울러 김 대표는 이날 북한의 최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둘러싼 우려를 표하는 데 발언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고, 잇단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규정했다. 그는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한반도 평화 조성에 역효과를 낸다며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고 인근 국가와 국제사회에 위협이 된다고 비판했다.
또 북한에 기타 불안정 조성 행위(other destabilizing activities)도 중단한 채 대화로 복귀할 것을 촉구했는데, 이는 최근 감지되는 북한의 핵 활동에 대한 간접적인 경고로도 해석될 소지가 있다.
결국 김 대표가 대북 신뢰 구축 방안 논의에는 어느 정도 유연함을 내비쳤지만, 자신들의 군비 증강을 용인하라는 북한의 이른바 ‘이중기준’ 요구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한편, 북핵 협상 담당자인 김 대표가 이번 협의 직후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언급한 배경도 관심을 모은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은 통상 미국이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와 함께 중국을 압박할 때 사용하는 수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미국은 동맹국들과 파트너로 협력할 때 가장 강력하며 한미동맹은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며 “양국이 함께 극복하기 어려운 도전은 없으며 개방되고 자유로우며 안전한 인도·태평양지역을 위해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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