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급격하게 늘어난 국가채무가 고물가·고금리 시대를 맞아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는 공약 이행과 재정정상화라는 두 가지 상반된 과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셈이다. ‘레임덕(지도력 공백)’이 생길 수 있는 임기 말로 갈수록 대중적 지출 정책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임기 초 재정준칙 법제화 등 강제성 있는 관리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D1)는 47%까지 치솟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와 관련 앞으로 5~6년 내로 해당 비율이 60%에 육박할 수 있다는 우려를 공식적으로 내놨다. 이번 정부가 내놓은 재정준칙에서는 국가채무 비율 60%를 한계선으로 잡았다. 그 이상으로 채무비율이 올라가면 국가채무를 감당하기 어렵단 분석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지난 2020년 추 후보자는 국회의원 신분으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5% 이내로 유지해야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은 3%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재정준칙을 조속히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정부도 윤 정부도 재정준칙 도입을 외치는 셈이다. 그러나 내면을 살펴보면 여야 모두 재정준칙 통과와 상반된 움직임을 보였다. 문 정부가 제출한 재정준칙은 국회에서 사실상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없이 사장됐다. 코로나19 등을 겪으면서 여야 모두 확대재정 및 지원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는 총 209조원이 필요하다. 역대 최대 수준이다. 국정과제 필요재원은 문 정부도 178조원 수준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135조원에 불과했다. 윤 정부가 문 정부 출범 당시 17.4% 많은 공약재원을 필요로 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매년 40조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윤 정부는 20조원은 지출 구조조정으로 20조원은 세수증가분으로 감당하겠다고 주장했다. 세수증가분은 기본적으로 증세 혹은 경제성장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각종 국제기구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속속 낮추고 있다. 윤 정부 세제 기조도 큰 틀에서 감세다. 세수호조세가 5년 동안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지출 구조조정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윤 정부는 이번 추가경정예산(추경) 규모를 공약 상 50조원에서 30조원 중반대로 낮춰 잡았다. 그럼에도 국채 발행 없이 지출 삭감만으로 30조원 추경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정부 내에서도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매년 20조원씩 지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주장이 현실성 있다고 이해하기 어렵다.
재원조달에 실패하면 정권은 공약을 포기하거나 국가채무를 더 내야 한다. 공약을 포기한다는 이야기는 더이상 대중적인 지출 정책을 펼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정권이 택하기 어려운 선택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재정건전성에 대한 이야기는 홍 부총리를 필두로 계속 이어졌으나, 번번이 정치권 논의 앞에서 무너졌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가채무 증가세는 문 정부보다 윤 정부에서 비교적 더 심각한 위기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문 정부는 임기 대부분이 저물가·저금리 시대였다. 국가채무로 인한 이자부담이 크지 않았다. 윤 정부는 고물가·고금리 시대와 함께 출범한다. 같은 국가채무라도 이자부담이 다르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교수는 “재정준칙으로 재정건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재정위기가 도래할 수밖에 없다”며 “임기 초 빠르게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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