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혁의 현장에서] 과도한 규제 한국 신기술 무덤 만든다
2022-08-24 11:25


지난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국내에서는 마스크대란이 벌어졌었다. 같은해 3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소재공학과 김일두 교수 연구팀은 약 한 달간 재사용이 가능한 신개념 나노마스크를 개발해 크게 주목받았다. 당시 국무총리까지 나서 패스트트랙을 통해 신속한 처리를 주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2년5개월여가 지난 지금 나노마스크는 아직 상용화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내에서 의약외품에 사용되지 않은 물질이거나 새롭게 개발된 제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안전성, 유효성 심사를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 김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나노섬유 필터 마스크 역시 기존에 없던 신소재로 만든 제품이었던 만큼 안전성, 유효성 심사를 거쳐야만 했다.

신소재 관련 평가 항목은 한 번 떨어지면 보완에만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평가시험기관에서도 보수적인 검증을 진행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결국 김 교수 연구팀은 식약처 허가와 별도로 개발한 나노마스크를 수작업으로 제작, 방한용 마스크로 판매하고 있다. 숨 쉬기 편하고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지만 식약처 인증을 받지 못해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권요셉 박사 연구팀은 면봉으로 코를 깊숙이 찌르는 코로나19 검사 대신 입안을 가글로 헹구면 타액으로 신속하게 감염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타액진단키트’를 올해 초 개발했다. 고통을 줄이고 비용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빠른 도입의 관건은 의료기기 승인 여부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가글 용액은 의약외품으로 개발돼 상용화를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기기 승인을 받아야 한다. 연구팀은 가글 용액의 임상 실험을 상반기 내 마치고 의료기기 승인을 획득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계속 늦어지고 있는 상태다.

흰머리 때문에 염색을 자주해야만 했던 번거로움을 일거에 해소하는 신개념 염색샴푸를 개발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이해신 석좌교수도 규제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샴푸는 내수용이라는 기존 고정관념을 깨트리면서 미국, 일본 등 해외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특히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뷰티시상식에서 제품안전성을 인정받아 헤어 분야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식약처가 염색샴푸에 함유된 1, 2, 4 트리하이드록시벤젠(THB)를 화장품 원료 사용금지 목록에 추가하는 고시를 발효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다행히도 규제개혁위원회 본심사에서 식약처의 원안통과 대신 원안 재검토 결정을 받아 위기를 넘겼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는 상태다.

불필요하면서도 과도한 규제에 따른 피해는 결국 시장과 이를 소비하는 국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국내에서 개발한 신기술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규제 혁신이 동반돼야만 한다.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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