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분산식 고속열차 KTX-이음. [현대로템 제공]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 스페인 철도차량 업체가 국내 고속철도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철도산업이 외국기업에 안방을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1일 철도업계 등에 따르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이르면 다음달 오송선 고속차량 120량 등 총 136량의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입찰 공고를 할 예정이다. 스페인 철도차량 제작사인 ‘탈고’가 국내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번 코레일 입찰에 참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탈고가 입찰에 참여할 경우 2005년 이후 17년 만에 국내 고속철도 시장에서 국내 업체와 해외 업체가 경쟁하게 된다. 현대로템은 2005년 코레일이 발주한 고속차량 사업에서 프랑스 철도차량 제작사인 알스톰을 제치고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고속차량은 동력집중식과 동력분산식으로 나뉜다. 동력분산식은 동력 장치가 차량마다 아래쪽에 분산 배치돼 가·감속 성능이 뛰어나고 수송력과 유지보수 용이성 등에서 동력집중식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로템은 국가 정책지원을 바탕으로 동력분산식 KTX-이음을 제작·납품한 바 있지만 탈고는 동력집중식 고속열차 전문 업체로 고속동력분산식 고속차량을 제작·납품한 실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레일은 2020년까지 고속차량 발주 시 시속 250∼300㎞ 이상 최고 속력을 내는 고속차량 제작·납품 실적이 있는 업체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했지만, 지난해부터 해당 제한 규정을 삭제했다.
코레일은 기술 평가에서 합격 혹은 불합격을 심사한 뒤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최종 사업자로 선정할 계획이다. 납품 실적이 중요한 탈고가 이번 입찰에서 응찰가를 최대한 낮추는 방식으로 수주전을 벌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철도업계는 해외 기업의 국내 철도시장 진출이 이뤄지면 순수 국내 기술이 사장(死藏)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내 업체의 수주량이 감소하면 연구개발 투자도 줄어들어 결국 철도산업이 해외 기술에 종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1996년 국가 선도기술개발사업협의회에서 처음으로 고속차량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다. 현재 최고 시속 350㎞급 고속차량 동력 시스템 등 총 71개 고속철 관련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다. 이중 한국형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개발과 안정화 단계에 투입된 민관 투자액은 총 2조7000억원에 달한다.
국내 철도산업 생태계가 무너지면 그때까지 저가로 공급했던 해외 업체들이 다시 가격을 올릴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철도차량 부품사들은 이날 코레일에 철도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며 호소문을 보낼 예정이다.
부품사 한 관계자는 “해외 업체에 발주가 이뤄지면 국내 철도산업 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저가의 중국산 부품을 사용해 단가를 낮춰 입찰 경쟁에 나서는 업체들이 생기는 등의 최저가 낙찰제의 문제도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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