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자율주행으로 모하비 사막 240km 이동하기’라는 특이한 대회를 개최했다. 지금은 모두에게 익숙한 자율주행이지만,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시도였다. 첫해에는 완주한 차량이 하나도 없었지만, 바로 다음 해 다섯 대의 차량이 목표를 달성했다. 이러한 세상에 없는 도전적인 시도들이 거듭되면서 자율주행, 음성인식, 드론 등의 기술이 상용화되고 있다. 혁신적인 기술개발이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디지털이 주도하는 대전환 시대, 국민 행복과 국가 경쟁력의 원천은 이러한 과감한 도전과 기술혁신에 있다. 그간 우리나라는 빠른 추격으로 시장과 산업을 키우는 데 집중해 왔다. 하지만, 기술혁신을 통해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국가만이 모든 혜택을 누리는 승자독식 상황에서는 추격자의 이점을 기대하기 어렵다. 압도적인 기술우위로 경제·산업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존 디지털 연구개발 투자방식과 연구방식을 개선하고 연구성과가 실제 우리생활에 잘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
우선 디지털 기술에 대한 R&D 투자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2022년 정부 ICT R&D 기술개발 예산은 1조원을 넘겼지만, 인공지능에만 2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미국과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하다. 절대적인 투자의 확대를 통해 모든 디지털 분야의 골고른 기술개발이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개발을 위한 재원이 한정되었을 경우 상대적으로 경제?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투자가 시급한 분야에 재원을 집중하는 전략적 선택도 중요하다. 인공지능, 지능형 반도체, 5G?6G, 양자, 메타버스, 사이버보안 등이 이러한 핵심기술 영역에 들 수 있다.
연구방식도 임무지향적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기존처럼 달성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술이나 사회적 문제해결을 위해 어렵고 도전적이지만 반드시 달성해야만 하는 목표를 세우고 기획, 실행, 성과관리 등 전주기를 집중관리하는 것이 임무지향적 방식이다. 시장수요와 기술개발 시급성 등을 통해 필요한 목표를 설정한 후, 정부와 민간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확정한다. 확정된 목표달성을 위해 연구자가 자율적으로 연구방식을 선택하여 수행하게 된다.
그간에는 연구목표를 대부분 달성하고서도 성과가 낮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는 연구개발 성공률은 높은데 그 결과를 국민들이 경험하는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개발 결과가 우리 일상에 녹아들어 국민들이 다양한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야만 진정한 연구개발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정책적 수단을 통해 실증, 창업, 기술이전, 해외진출 등 최종단계까지 촘촘하게 지원하여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새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로 ‘디지털 경제 패권국가 실현’이 제시되었고, 국정과제 추진을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디지털 기술혁신 및 확산전략’을 지난 6월 발표한 바 있다. 이번 국정과제와 전략은 앞서 말한 디지털 연구개발 투자방식과 연구방식의 전환, 그리고 국민체감 성과 향상을 위한 내용들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이번 정책이 디지털 대전환이라는 기회를 잘 활용하고, 기술패권 경쟁이라는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전성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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