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부서져도 수리 안 해” 불안한 옥탑방 주민들 [힌남노 강타]
2022-09-06 09:42


서울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에 30년째 살고 있는 정모(64) 씨의 집 건너편. 1년 전인 2020년 태풍 ‘볼라벤’ 당시 강풍을 맞아 옥탑방이 부서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박혜원 기자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저게 ‘볼라벤’ 때 부서진 옥탑방이에요.” 제11호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전국에 비가 내린 지난 5일 오후, 옥탑방이 밀집한 고지대 동네인 서울 강북구 삼양동은 지난 태풍의 상흔도 채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30년째 살고 있는 정모(64) 씨의 집 건너편 옥상엔 지난 2020년 ‘볼라벤’ 당시 강풍에 파손된 옥탑방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무너진 화장실 외벽 안쪽에 변기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정씨는 “태풍이 크게 올 때마다 건물 외벽도 많이 무너지고 가로수도 쓰러지곤 한다”고 했다. 정씨 역시 힌남노에 대비해 옥상 자재들을 모두 치워놨다.

지난달 폭우에 이어 초대형 태풍 힌남노까지 잇따르며 자연재난에 직접적 타격을 받는 주거취약계층의 안전이 위협을 받고 있다. 강풍이 예고됐던 이번 태풍 때도 옥탑방 주민의 불안이 컸지만 지자체 차원의 대비는 미약한 실정이다.

삼양동 주민은 자연재난에 따른 피해는 반지하를 포함해 모든 주거취약계층의 문제라고 호소했다. 집주인 남재하(56·여) 씨는 “외벽이 무너져도 어차피 수리비가 더 드니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동네 전체가 노후화되고 있다”고 했다.

누전·누수 문제도 마찬가지다. 남씨는 “이 동네 1200세대가 사는데 안 젖은 집이 없다”고 했다. 남씨 세입자의 방도 일찍이 누전됐지만 장판까지 합해 1000만원에 달하는 보수 견적을 받고는 어쩔 수 없이 방치 상태로 두고 있다.


남재하(56)씨가 세를 놓고 있는 삼양동의 방. 연이은 폭우에 누수된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있다. 박혜원 기자

자치구별로 이뤄지고 있는 태풍·폭우 대응은 주민의 걱정을 달래기에 역부족이다. 강북구는 저지대 위주로 물막이판 등을 설치했지만 고지대지역은 별도의 조치가 없었다. 구로동 위주로 옥탑방이 많은 서울 구로구도 전날 도로과, 치수과 등에서 현장 점검에 나섰지만 옥탑방 등 개인주택에 대해선 별다른 점검을 하지 않았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정책위원장은 이에 대해 “광역 단위 대응 없이 제대로 대비가 가능하겠느냐”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자연재해 때마다 큰 피해를 보는 주거취약계층을 위해 보다 면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옥상 거주민에 대한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도시연구소에 따르면 전국 옥상 거주민은 2010년 4만8988곳에서 2020년 6만6503곳으로, 35%(1만7515곳) 늘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대부분이 불법 건축물인 옥탑방은 주거취약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며 “장기적으론 거주민 이주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단기적으론 물이 새거나 강풍에 부서지지 않도록 벽을 안전한 재질로 보수하는 지원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대형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이뤄지는 땜질식 처방은 그만해야 한다”며 “공공임대주택을 충분한 물량으로 확보해 모든 주거취약계층이 안전하게 이주할 수 있도록 폭넓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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