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낭독하고 있다. [KBS 영상 캡처]
[헤럴드경제=이승환·양근혁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를 겨냥해 “언제 그런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파탄 난 지금의 남북 관계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착잡하기 짝이 없다”며 19일 강하게 비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 인사말에서 “지금 남북관계가 매우 위태롭다. 북한의 계속된 도발에 더해 최근의 외교 행보까지 한반도의 위기를 키우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은 대화를 말할 분위기가 아닌 듯이 보인다”며 “그러나 되돌아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의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엄중했다”고 덧붙였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문재인 정부) 당시 미국이 군사적 옵션과 전쟁 시나리오를 검토한다는 정보들이 있었는데, 그 후 미측 관계자들의 증언에 의해 사실로 확인됐다”며 “당시 한반도의 전쟁위기가 실제상황이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위기의 끝에 반드시 대화의 기회가 올 것이고, 위기가 깊어질수록 대화의 기회가 다가온다고 믿으며 대화를 준비했다”며 “남북관계의 위기가 충돌로 치닫는 것을 막는 길은 대화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문 전 대통령은 “9·19 평양공동선언의 교훈을 말하면서 역대 정부의 안보와 경제도 살펴봤다”며 “한마디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진 진보정부에서 안보 성적도, 경제 성적도 월등히 좋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안보는 보수정부가 잘한다’, ‘경제는 보수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입원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만난 19일 오후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을 떠나고 있다. [연합]
문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성과를 언급하며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 ‘평화가 경제’라는 사실”이라며 “문민정부가 시작된 김영삼 정부부터 지금의 윤석열 정부까지 역대 정부를 거시적으로 비교해보면, 이어달리기로 남북관계가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시기의 경제성적이 그렇지 않았던 시기보다 항상 좋았다”고 했다.
이어 “지금 우리가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 경제의 규모, 즉 GDP가 세계 10위권 안으로 진입한 시기는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때 뿐”이라며 “지난해 우리 경제규모는 세계 13위를 기록해 10위권에서 밀려났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지나치게 진영외교에 치우쳐 외교의 균형을 잃게 되면, 안보와 경제에서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다”며 “동맹을 최대한 중시하면서도 균형 있는 외교를 펼쳐나가는 섬세한 외교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남북군사합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북한의 계속된 도발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9·19 평양공동선언이 흔들리면서 군사합의도 흔들리고 있다”며 “급기야는 정부‧여당에서 군사합의를 폐기해야 한다거나 폐기를 검토한다는 등의 말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어 “남북관계가 다시 파탄을 맞고 있는 지금도 남북군사합의는 남북 간의 군사충돌을 막는 최후의 안전핀 역할을 하고 있다”며 “남북군사합의를 폐기한다는 것은 최후의 안전핀을 제거하는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라 비판했다.
문 전 대통령은 “남북한 모두, 관계가 악화되고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수록 군사합의 만큼은 끝까지 지키고 준수해 최악의 상황을 막으면서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며 “그리하여 언젠가 비핵화 문제가 해결되면, 남북 간에도 군사합의를 더욱 발전시켜 재래식 군비까지 축소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문 전 대통령은 “(남북 관계가) 실천적인 성과로 불가역적인 단계까지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며 “2008년 10월에 열린 10·4 공동선언 1주년 기념행사 때 노무현 대통령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10·4 공동선언이라는 소중한 나무를 한 그루 심었는데, 사람들이 물을 주지 않아 나무가 시들고 있다’고 탄식하는 말씀이었다”고 했다.
이어 “되돌아보면 10·4 선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박정희 정부의 7·4 공동성명에서 시작해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 정부의 6·15 공동선언, 노무현 정부의 10·4 공동선언, 문재인 정부의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까지 역대 정부는 긴 공백기간을 뛰어넘으며 이어달리기를 해왔다”며 “이어달리기가 될 때마다 남북관계는 발전하고 평화가 진전됐다”고 주장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어달리기가 중단 없이 계속되었다면 남북관계는 지금과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며 “남북은 공존하며 평화를 키웠을 것이고, 언젠가 평화적인 통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평양공동선언 역시 훗날 냉전적 이념보다 평화를 중시하는 정부가 이어달리기를 할 때 더 진전된 남북합의로 꽃피우게 될 것”이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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