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나라 남편은 왜 맨날 불륜?…시대의 변화가 드라마 플롯 진화로
2024-07-29 15:38


드라마 굿파트너 속 차은경 변호사로 분한 장나라 배우 [방송 캡쳐]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남편 역할 배우만 바뀌고 장나라는 계속해서 배우자의 외도를 마주한다.

2019년 SBS 드라마 ‘VIP’에서 백화점 VIP 전담팀 차장 나정선(장나라 분)은 남편인 같은 팀 팀장 박성준(이상윤 분)의 사내 뷸륜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진다. 2023년 TV조선 드라마 ‘나의 해피엔드’에서 수천 억원 매출 규모의 가구회사 대표인 서재원(장나라 분)은 남편인 프리랜서 디자이너 허순영(손준호 분)과 오래된 친구의 불륜 사실을 알고 좌절한다.

현재 방영중인 SBS 드라마 ‘굿파트너’에서는 ‘불륜에 질리다 못해’ 베테랑 이혼 전문변호사 차은경이 된 장나라는 역시나 외도를 저지른 의사 남편 김지상(지승현 분)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는다.

차도녀 주인공 · 결핍된 남성성 · 최측근의 배신

연이은 세 드라마의 배경은 묘하게 겹친다. 우선 주인공으로 분한 장나라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다. 43세로 설정된 나이에 언제나 정돈된 헤어스타일에 칼정장을 갖춰 입고,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걷는다. 나정선은 탁월한 업무능력과 팀원들을 이끄는 리더십을 인정받는 차장이다. 여기에 더해 영어와 프랑스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하며 집안도 유복한 ‘완전체’로 그려진다.

서재원 역시 자수성가 최고경영자(CEO)이자 백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로 숨 돌릴 틈 없는 하루 일과가 이어지는 성공한 도시 여자다. 사실상 집안의 가장인 그녀를 묵묵히 내조하는 자상한 남편까지 있어 모두의 부러움을 산다.


드라마 '나의 해피엔드' 캡처

차은경은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일 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가 곧 채널이고 매체”이며 “24시간을 72시간 마냥 사용해 각종 강연부터 방송 출연, 온갖 영업에 상담까지” 해내는 초인적인 인물이다.

그녀의 남편 캐릭터들도 결이 비슷하다. 부인의 유명세에 가려져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닮았다. 박성준은 훤칠하고 수려한 외모에 회사 내에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으며 이사 승진까지 하는 인물이지만, 혼외자식이라는 출생 배경 탓에 마음 한 켠엔 ‘자격지심’이라는 못난 감정이 자리잡고 있다.

허순영은 프리랜서 디자이너이자 산업디자인과 교수로 사회적 지위를 갖췄지만 부유하지 못한 집의 아들이며 회사 대표인 아내와 벌이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김지상 역시 요즘 누구나 하고 싶어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도 내과 병원에서 페이닥터로 일하는 그에 비해 ‘존재 자체가 매체’인 셀럽 아내는 너무나 빛나는 존재다.

남편의 불륜 상대 역시 장나라의 주변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VIP에서 박성준의 외도 상대는 나정선의 팀 직속 부하인 온유리(표예진 분)다. 한 사무실에서 일하는데다 나정선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업무를 배우는 인물이다.

나의 해피엔드에서는 대학 친구 권윤진(소이현 분)이 장나라를 배신한다. 회사 벽화 작업까지 맡겼건만 대낮에도 만남을 가지는 등 장나라를 철저히 기만한다.


드라마 나의 해피엔드에서 서재원 CEO로 분한 장나라 배우[방송 캡쳐]

굿파트너에서는 장나라와 10년간 호흡을 맞춘 비서인 최사라(한재이 분)가 남편의 내연녀다. 차은경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외도를 벌이며 ‘등잔 밑’을 주의해야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인물이다.

눈밝은 시청자들이 세 작품의 비슷한 점을 모를 리 없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장나라 남편이 더이상 바람을 안 폈으면 좋겠다”, “요즘 장나라 열일하는 건 좋은데 왜 항상 불륜 소재는 빠지지 않나”, “제발 차기작에서는 한 사람과 오래가는 역할이었으면 좋겠다”는 등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불륜 유니버스’는 장나라 주연작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방송가 전반에 흐르는 트렌드다.

디즈니플러스의 ‘화인가 스캔들’에서는 부부가 맞바람을 핀다. 각종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는 프로골퍼 오완수(김하늘 분)는 그녀의 재벌 남편이 결혼 생활 내내 외도를 하고 혼외자까지 두는 장면을 목도한다. 오완수 역시도 경호원 서도윤(정지훈 분)에 마음을 내주며 불륜을 저지른다.

불륜 유니버스, 시대상 반영이란 지적도

지난 6일 종영한 SBS ‘커넥션’에서도 주요 등장인물인 검사가 친구의 아내와 불륜관계로 나오며 화제가 됐고, 지난 1월 방영한 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 역시 불륜이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소재로 쓰였다. 2022년 JTBC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에서는 법대 여대생이 고위 검사를 아내로 둔 유부남 교수와 내연관계를 이어가면서 동시에 교수 아들과도 사귀는 사이로 설정해 막장의 끝판을 보여줬다.

불륜 자체가 주제가 되든, 장르물에서 하나의 주요 스토리라인으로 쓰이든, 혹은 지상파든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든 불륜 없는 드라마를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 됐다.

몇 주간 방영 시간을 이어가야 하는 드라마 특성상 시청자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려면 불륜과 같은 자극적인 소재가 있어야 갈등 유발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또 불륜 이야기에 반드시 등장하는 두 여성, 즉 법적 배우자와 내연녀 사이의 갈등은 과거 고부간 갈등을 현대로 옮겨온 서사라는 해석도 있다. 여성 대 여성의 구도는 가장 원초적이면서 생명력이 강한 갈등 구조라는 설명이다.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SBS 본사에서 열린 SBS 드라마 '굿파트너' 제작발표회에서 출연진 김준한(왼쪽부터), 장나라, 김가람 감독, 남지현, 표지훈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커리어우먼과 그보다 못한 남편의 설정 역시 불륜과 함께 나오는 단골 소재가 된 것도 요즘 일하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공감대가 더 크기 때문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요즘 드라마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공감대는 가정 주부보다는 커리어우먼으로 맹렬히 활동하는 여성에 대한 공감대가 훨씬 더 크다”면서 “불륜이 들통난 이후에는 여자 주인공의 복수극도 그려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려면 남편보다 영향력 있고,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필요해 (그런 모습이) 강조됐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여성이 마주한 위기가 바로 가정에서 비롯된다는 가정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장나라 배우 작품을 비롯해 K-드라마 내 불륜이 한 차례 진화가 있었다”며 “과거에는 능력있는 남편이 집에 있는 부인을 내치는 서사였다면, 지금은 남편이 성공한 아내에게 ‘그 자리에 서기까지 가정을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비난을 보내는 식으로 변모했다”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이어 “심지어 남편의 불륜 상대가 주인공의 직장 동료인 경우에는 ‘직장 생활도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느냐’고 심판대에 세우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이어 “부부 맞벌이가 절대적 대세가 된 한국 사회에서 아내와 남편이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해지고 이에 따라 인간관계에 불신이 커진 현실이 불륜이라는 소재로 증폭되고 있기도 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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