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AP]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식 지지한 이후 그가 소유한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의 정치적 편향성이 짙어지고 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까지 3개월여 남은 시점에서 머스크가 엑스를 이용해 유권자들의 표심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들은 전날 오후 엑스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는 계정인 ‘해리스를 위한 남자들(@dudes4harris)’을 정지시켰다고 보도했다. 이 계정은 같은 날 해리스 부통령을 위한 선거 자금 모금을 목적으로 수십만 명의 백인 지지자들을 모아 온라인 화상 미팅인 줌콜을 열었다.
‘규칙 위반’이라는 사유로 정지됐던 해당 계정은 몇 시간 뒤 복구됐다. 해당 모임의 주최자이자 민주당 인사인 로스 모랄레스 로켓토는 엑스에 항의서를 제출했지만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WP에 전했다.
지난 29일(현지시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는 백인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열린 화상미팅에서 할리우드 배우 제프 브리지스가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 발언을 하고 있다. [인터넷 캡처]
앞서 29일 백인 남성 유권자들은 줌콜을 통해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거액의 선거자금을 모금하면서 지원에 나섰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주도한 이 모임의 취지는 ‘백인 남성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 혹은 ‘트럼프는 백인 남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통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자는 것이다.
해당 모임에는 마크 해밀과 조셉 고든 레빗, 제프 브리지스 등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도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줌콜을 연 시간 동안 400만달러(약 55억960만원)의 기부금이 모였다.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는 엑스(X, 옛 트위터) 계정인 ‘해리스를 위한 남자들(@dudes4harris)’. [엑스 캡처]
엑스에서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를 둘러싼 잡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를 포기한다고 발표한 지난 21일에도 해리스 부통령의 공식 계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해리스 부통령을 공식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수천 명의 지지자들이 해당 계정으로 몰렸지만 팔로우가 일부 차단됐다. 이에 법사위원회 소속 제럴드 내들러 민주당 의원은 “엑스가 의도적으로 해리스 부통령이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것을 방해 또는 차단하고 있는 듯하다”며 “사실이라면 이는 정치적이고 관점적인 차별에 근거한 지독한 검열에 해당한다”고 짐 조던 법사위원장(공화당)에게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미 대선을 앞두고 머스크가 엑스를 이용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022년 당시 트위터(현재 X)를 인수한 머스크는 이미 엑스를 이용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유권자들의 표심을 흔들고 있다. 현재 엑스에서 그의 팔로워는 1억8470만명에 달한다.
WP는 “엑스가 해리스 지지자의 계정을 정지시킨 것은 대선이 몇 달 뒤 앞둔 시점에서 머스크가 온라인 담론에 영향을 미치는 데 해당 플랫폼을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실제로 머스크는 엑스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글을 올리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선 비판적인 언사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 4월 머스크는 자신의 엑스 계정에서 “바이든은 확실히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그는 그저 ‘극좌 정치 기계’를 위한 비극적인 간판일 뿐”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해리스 부통령의 목소리를 딥페이크(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가짜 편집물)로 조작해 하지 않은 발언을 실제로 한 것처럼 꾸민 영상을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 계정에 공유한 모습. [인터넷 캡처]
최근에는 해리스 부통령의 음성을 조작한 영상을 공유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머스크는 지난 26일 조작된 해리스 부통령의 목소리를 이용한 1분 52초짜리 영상을 “놀랍다”는 글과 함께 자신의 엑스 계정에 올렸다. 그러나 해당 영상을 퍼 나르면서 가짜라는 표시를 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머스크와 달리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CEO는 정치 관련 콘텐츠를 일절 올리지 않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CEO나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CEO도 자회사의 각 플랫폼인 링크트인과 유튜브에 정치적인 게시물을 올린 적이 없다.
바스카 차크라보티 터프츠대 플레처 스쿨 글로벌 비즈니스 학장은 “머스크는 엑스를 소유하고 가장 큰 팔로워 기반을 지니고 있으며 (엑스에서) 거의 신과 같은 지위를 가진 인물”이라며 “그가 정말로 나서서 한 후보를 지지하고 힘을 실어준다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행정부에서 일해 온 기술 정책 전문가 진 키멜먼은 “엑스는 대중의 사고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만약 플랫폼을 이용한 권력이 특정 정치인에게 이익을 주는 목적으로 남용된다면 이는 우려되는 일이며 민주주의 시스템에 엄청난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yckim6452@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