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장사 비판하며 금리 내리랬다가, 다시 총량규제” 오락가락 대출정책에 실수요자 피해만 확대
2024-08-29 10:51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의 대출 안내문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헤럴드경제=김광우·강승연·홍승희 기자] 이달 주요 은행 가계대출이 약 3년 4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을 보인 가운데, 수개월 단위로 ‘오락가락’하는 금융당국의 대출 관리 정책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일관성 없는 정책에 따라 인위적인 대출금리 조정이 이루어지며, 실수요자 등 애꿎은 소비자들의 피해만 지속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수요와 공급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부동산 시장에 금융당국의 입김이 거세진 결과, 부채 경감 효과도 내지 못한 채 시장왜곡만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자 부담도 늘어나는데” 대출 증가세 3년 만에 ‘최대폭’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7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723조8547억원으로 지난달 말(715조7383억원)과 비교해 8조1164억원 가량 늘었다. 이 같은 증가폭은 2021년 4월(9조2266억원) 이후 약 3년 4개월 만에 최대치다. 올 최대 증가폭을 보인 7월(7조1660억원)보다도 1조원 가량 더 불어난 셈이다.

최근 주요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이 거세지자,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최저 4%대로 상향 조정하는 등 주담대 취급 문턱을 높였다. 그런데도 가계대출 증가세는 잡히지 않고, 되레 이자 부담이 늘어난 소비자들의 비판이 가중됐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금리 인하가 정부 방침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은행권에서는 최근의 금리 조정은 금융당국의 압박 영향이 컸다고 보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5일 지상파 방송에 출연해 “은행이 미시 관리를 하는 대신, 금액(금리)를 올리는 건 잘못된 것”이라며 은행권의 금리 인상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 원장은 7월 2일 임원회의에서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와 국지적 주택가격 반등에 편승한 무리한 대출 확대는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발언으로 은행권에 대출관리 강화 메시지를 줬고, 이후 주요 은행들은 약 두 달간 금리를 20차례 이상 올렸다. 금리 인상에 불을 지핀 게 당국의 입김 때문이라는 시각이 우세한 이유다.

대출금리 내리랬다가, 다시 총량 규제


최근 몇 년간 이 같은 당국의 ‘오락가락’ 행보가 이어졌다. 2022년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지자 당국은 그해 8월 50년 만기 정책모기지 도입 등을 통해 시장 활성화 방안을 추진했다. 2023년 들어서는 시중금리를 하회하는 정책대출 특례보금자리론을 출시했다. 아울러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돈 잔치’ 비판(2023년 2월)에 따라 직접적으로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당시 이 원장은 “은행권 대출금리 인하가 전반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모두 대출을 확대하는 요소다.

은행들의 50년 만기 주담대 출시도 이어졌다. 만기를 늘려 상환 부담을 낮추는 게 금융당국의 방침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3년 7월 은행권 주담대 증가폭이 3년 만에 최대폭으로 늘어나는 등 과열 조짐이 보이자, 당국의 태도는 돌변했다. 당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대출한도를 늘리기 위해 50년 만기 대출을 사용하거나, 소득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며 은행권의 판매 행태를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출시 몇 달도 채 되지 않아 만기 기한을 50년에서 40년으로 단축하거나, 50년 만기 대출의 가입연령을 제한했다. 당시에도 당국의 행보가 ‘엇박자’라는 지적이 나오자 김 전 위원장은 “50년 주담대 출시, 당국과 협의한 사항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화두로 떠오르자, 일부 은행들에서는 가산금리 조정을 통해 대출 문턱을 높였다.


서울 한 부동산중개사무소 모습.[연합]

이후 2023년 11월 4조원 가량 불어났던 주요 은행 가계대출 잔액 증가액은 점차 안정세를 찾았다. 그러자 정부는 다시금 대출 완화 정책을 펼쳤다. 올해 초 최저 1%대의 신생아특례대출을 출시하며, 부동산 수요를 자극했다. 주담대 대환대출 인프라도 시작되며, 은행권에 대한 적극적인 동참을 요구했다. 4월에는 은행 고정금리 주담대 목표비율을 내놓으며 고정금리를 중심으로 한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이에 따라 지난 6월에는 시중은행에서 2%대 주담대가 등장하며 대출 수요를 부추겼다. 여기에 금융당국은 돌연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도입을 7월에서 9월로 연기했다. 이에 ‘막차’ 수요에 편승하려는 주담대 수요가 폭발했다.

현재 가계대출 최대폭 증가에 금융당국의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당국 방침에 따라 시장금리가 왜곡되는 현상이 몇 년째 이어지는데, 지금 와서 관련 없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대출 증가세 막지 못할 것” 자가당착 빠진 금융당국


서울 한 거리에 주요 시중은행의 ATM기기가 설치돼 있다.[연합]

특히 올해 부동산 경기 흐름의 경우,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고조되는 등 펀더멘털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이전과 같이 저금리 정책대출 등에 따른 일시적인 수요 확장이 아니라, 주택시장 추세 자체가 상승 곡선을 탔다는 얘기다. 금리 인하, 일부 대출 제한 등을 통해 전반적인 주담대 수요를 억제하는 것 자체가 ‘땜질식’ 처방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금융기관의 자율 경영 측면을 강조해야 되는데, 자꾸 정책적인 결정을 하게 되면 금융기관의 재정건전성 낭비 등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은행권에서도 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지만 대출 오름세를 막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어차피 대출받을 사람들에겐 한도가 조금 준다고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한 아파트 단지 모습.[연합]

늘어나는 가계부채의 질적 측면을 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김효선 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현재 주담대 잔액이 높아진 건 고가주택들이 많이 거래됐기 때문에 더 빠르게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면서 “신생아특례의 경우도 신규주택구입목적은 별로 없는 데다, (부동산 시장 과열도) 강남 등 일부 지역에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계부채는 문제지만, 건전성이 떨어지는 대출인지를 잘 구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증가세가 이어질 시, 향후 대출 한도 축소를 위한 추가 조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고DSR 차주를 중심으로 ‘대출절벽’에 가까운 한도제한 정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갭투자에 활용될 수 있는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이 중단된 것처럼 투기성 수요가 타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투기수요와 관련된 대출을 제한하고 상환능력 중심의 심사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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