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에 가을 오니 ‘숨은 보석’ 속살 드러냈네
2024-09-03 11:24


무등산 입석대의 가을

남도에 가을이 찾아들었다.

고흥 용바위 절벽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긴 황금 용(龍)을 만난 뒤, 인근 고흥우주발사전망대에 옆에 서니 시원한 바람이 7~8월 폭염에 찌들었던 여행자의 피로를 날려준다. 그 아래 남열해돋이해변은 새로운 서핑의 성지가 됐다.

광주광역시 인근 무등산에 있는 증심사 등산로에 접어드니 습한 기운은 물러가고, 초가을 공기가 목구멍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계곡물은 청아한 소리로 재잘거리며 등산객을 맞는다. 숲속에 숨은 듯, 착상한 의재미술관이 ‘예술 힐링’이라는 선물을 덤으로 안긴다.


한국관광공사 선정 ‘강소형 잠재관광지’인 무등산 기슭의 광주 의재미술관

무등산 속 숨어있는 명소, 의재미술관

화순·담양과 무등산을 공유하고 있는 광주의 가을은 그 어느 곳보다 청명하다. 1200년 고찰 증심사 등산로는 봉황대·천제단·중머리재·중봉을 거쳐 정상인 서석대·입석대 절경 지대에 이른다.

등산로 입구에서 출발해 20여 분 지나 무등산 3부 능선쯤, 잠시 쉬어가기 딱 좋은 곳에 산속 미술관이 있다. 숲에 가려져 하마터면 지나칠 뻔 했던 이곳은 의재미술관이다.

한국관광공사 광주전남지사로부터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된 이곳은 자연 앞에서 겸손하게 웅크린 모양으로, 미술과 자연을 교감하도록 설계됐다. 이 건축물은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1등상(대통령상)을 받았다. 그해 2등상은 인천국제공항이었다.

지하 1층·지상 2층에 총 규모 약 6000㎡ 규모의 미술관은 한국전통미술 남종화(문인화)의 거두, 의재 허백련(1891~1976) 화백과 후진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문인화는 그림에 정신·철학·시문을 담는 ‘인문학 미술’로 한 차원 높은, 격조 있는 한국화로 평가받는다.

이곳에서는 ▷의재의 대표작 ‘산수팔곡병풍’▷의재가 그린 ‘모란’에 의재의 어린 손자 직헌 허달재가 붓칠한 것을 다시 의재가 완성한 뒤 낙관을 찍지 않은 작품 ▷서양화 느낌이 섞인 동양화 ‘섬’▷추상화 기법이 가미된 ‘돌’등 직헌의 작품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허백련 삶과 예술 자료전(10월 27일까지)’, 시가 적힌 춘설차 찻잔, 무등산 단군신전 상상도 등도 볼 수 있다.

나치를 고발한 소설 ‘25시’를 쓴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 육당 최남선 등도 이곳을 방문했다. 다만 전통 한국화에 관심이 많은 일부 애호가와 노약자는 등산로 입구에서 미술관까지 미니 셔틀버스를 두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고 한다.


광주 남구 양림동 양림거점예술여행센터에서 여행자들이 대여받은 의상으로 ‘신여성’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쓰레기가 예술로...펭귄마을의 ‘변신’

무등산에서 내려와 남광주역쪽으로 약 4㎞만 가면 펭귄마을과 호랑가시나무언덕이 있는 양림역사문화마을을 만난다. 광주 남구 양림동에 쌓인 쓰레기와 폐품을 다리에 힘없는 어르신들이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치우고 나니 뜻 있는 청년들이 예술 마을로 바꿨다고 해서 ‘펭귄마을’이 됐다고 한다.

옛 세간살이는 설치미술의 소품이 됐고, 곳곳에서 발견되는 벽화는 이채롭다. 어느 좁은 골목 영국식 공중전화 박스 앞에선 반가운 얼굴도 만날 수 있다. 오는 17일 전역하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광주 출신 멤버 제이홉의 벽화다. 부산 감천마을의 지민·정국 벽화와 조응한다. 양림동 버들숲청년창작소내에 있는 미광의상실에서는 ‘신여성’, ‘개화신사’, 풍각쟁이 ‘모던보이’의 복색 등 다양한 코스프레 의상을 빌려준다.

양림동의 호랑가시나무언덕은 선교사들이 고국에서 가져온 알래스카의 호두나무·단풍나무 아래, 그들이 세운 학교·병원, 사택을 품고 있어 ‘광주의 예루살렘’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게스트하우스(뉴스마 사택)에서 시작해 호랑가시나무창작소(언더우드 사택),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400년 된 호랑가시나무, 수피아여고의 탄생지인 윌슨 사택, 선교사 묘역, 사직공원 전망타워, 이이남스튜디오로 이어진다. 양림산 하산길에는 시인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시비를 만날 수 있다.

‘(전략)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후략)’

인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 가면 국립현대미술관이 함께한 이건희컬렉션 ‘피카소 도예’가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고(故)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생전에 수집해 국민에게 기증한 107점이 전시된다. 올해 ‘ACC 미래상’수상자인 김아영 작가의 인공지능(AI) 아트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내년 2월 16일까지)’, ‘몬순으로 열린 세계: 동남아시아의 항구도시(29일까지)’, ‘아라비안 나이트 천일야화의 길(12월 31일까지)’등 특별전시도 이어진다.

요즘 ACC 핫플레이스는 피카소 전시, 영화 ‘파묘’촬영지, 옥상 정원 등이다. ‘파묘’촬영지는 내부의 문화창조원과 문화정보원을 잇는 복도로, 배우 김고은·이도현이 아기를 구하러 왔던 미국 병원 장면으로 나왔다. 하늘마당에서는 가족·연인과 친구들이 모여 저녁 소풍을 즐기고, ACC 빅도어콘서트장에선 K-팝, 한국음악, 클래식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한국관광공사 선정 ‘강소형 잠재관광지’인 고흥우주발사전망대

고흥에서 살펴보는 우주산업의 미래

또 하나의 광주·전남 강소형 잠재관광지는 우주발사전망대가 있는 고흥이다. 강소형 잠재관광지는 현재의 인지도는 다소 낮으나 앞으로의 성장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관광공사가 선정·인증·지원하는 곳이다.

김완수 관광공사 광주전남지사장은 “광주 의재미술관과 고흥우주발사전망대는 매력과 가치에 비해 아직 덜 알려진 곳으로, 가을에 방문하기에도 좋다”면서 “주변엔 각각 아시아문화전당이나 남열해수욕장 등 연계 관광지도 많고, 광주 아트패스 스탬프투어, 고흥 우주패키지 등 특별 프로그램도 풍성하다”고 말했다.

우주선 발사대처럼 생긴 고흥우주발사전망대는 나로우주센터 우주발사체 장면과 다도해의 아름다운 절경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지하 1층·지상 7층 규모로 지어졌다. 인근에 국립청소년우주센터도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동쪽으로 용바위·사자바위·백야도·상화도·낭도·개도가, 서쪽으로 요즘 ‘서핑 성지’가 된 남열해돋이해변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어린이에게 인기 만점인 우주도서관, VR(가상현실) 체험관 등도 있다.

용바위는 신년벽두 관광공사 ‘청룡의 해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된 곳이기도 하다. 용의 전설을 품은 해발 120m의 바위산으로 너른 반석과 해식애가 조화를 이룬다. 마치 제주 산방산을 닮았다.

남열해돋이해수욕장은 지난 8월 국내 최고 서핑대회인 코리안오픈이 열릴 정도로 서핑의 명소가 됐다. 고운 금가루를 흩뿌려 놓은 듯한 백사장과 해송 250여 그루를 배경으로, 매년 10월 중순까지 남해의 파도를 즐길 수 있다. 기후학적으로 겨울 서핑은 동해안이 좋고, 여름~가을 서핑은 남해안이 좋다고 한다.


새 ‘서핑 성지’로 자리매김한, 최근 코리아오픈 대회를 치른 남열해돋이해변에서 서핑을 즐기고 있는 한 서퍼

‘고흥 랜드마크’팔영산...‘녹동항 드론쇼’도

8개의 바위산 봉우리가 붙은 팔영산은 고흥의 랜드마크다. 그 아래에서는 가을 벼가 익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팔영산 편백 치유의숲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조성한 ‘건강 숲’이다. 488㏊(헥타르) 크기로, 국내 최대 규모이다. 피톤치드를 강하게 뿜어내는 아름드리 편백나무 숲을 따라 노르딕 산책로, 어싱 맨발산책로 등 숲길 10㎞가 조성됐다. 한 달 후쯤이면 황화 코스모스까지 만개할 것이다.

치유의숲 ‘테라피센터’는 산림치유지도사와 함께하는 숲치유프로그램과 테라피 센터를 운영한다. 고흥 특산물인 유자·석류, 편백나무에서 추출한 천연수 ‘수(水)치유’와 족욕·반신욕을 즐길 수 있다.

고흥 야간관광 콘텐츠인 녹동항 드론쇼는 신비로운 우주, 바다, 추억여행 등 주제의 퍼포먼스로, 매주 토요일 저녁 녹동항 하늘을 수놓는다. 9월까지는 오후 9시, 10~11월에는 오후8시부터 운영한다.

국내 최대 규모의 분청사기 가마터인 운대리 가마터(사적)에 자리잡은 고흥분청문화박물관에서는 분청사기뿐 아니라,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고흥의 역사문화자원을 관람·체험할 수 있다.


‘남도 건강미식’민어 등 모듬회

용의 해 가을과 겨울을 강건한 체력으로 매조지할 수 있도록 광주 대인·양동시장과 송정떡갈비거리에선 민어, 삼합, 떡갈비, 육전, 무화과 등을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고흥에도 삼치회, 장어탕, 전어구이, 서대회무침, 유자차 등의 향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미식이 함께하는 가을 남도여행은 몸과 마음의 면역력을 키워준다.

광주·고흥=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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