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나가면 결혼·승진 다 놓쳐” 직장인 ‘꿈의 보직’ 어쩌다 찬밥됐나 [난 누구, 여긴 어디]
2024-09-17 13:25


한때 지원자가 몰렸던 기업체 해외 주재원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면서 기업들도 주재원 선발에 애를 먹고 있다. [헤럴드DB]

〈난 누구, 여긴 어디〉

일하는 곳은 달라도 누구나 겪어봤고 들어봤던 당신과 동료들의 이야기. 현재를 살아가는 기업인, 직장인들의 희로애락을 다룹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김현일 기자] 한때 기업체 해외 주재원은 직장인과 그 가족 모두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 보직이었다. 승진에 유리하면서 자녀 교육 면에서도 흔치 않은 기회인 만큼 지원자가 몰렸다.

그러나 요즘 해외 주재원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해외 파견을 대다수가 기피하면서 기업들은 주재원 선발에 애를 먹고 있다. 결혼 연령이 전반적으로 늦어진 데다 저출산 등의 영향으로 자녀 교육이라는 주재원 파견의 메리트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승진을 위해서라면 국내에 남아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낫다는 분위기다.

올해 기준 삼성전자의 해외 법인은 ▷지역 총괄 15곳 ▷판매거점 109곳 ▷생산거점 32곳 ▷구매센터 6곳 ▷R&D센터 40곳 ▷디자인센터 7곳 등 총 232곳으로 집계된다. 파견 나가있는 주재원 수는 약 1800여명으로 추정된다.

LG전자도 올해 3월 기준 해외에 ▷제조판매 17곳 ▷생산 28곳 ▷판매 46곳 ▷기타 48곳 등 총 139곳의 사업장을 두고 있다. 유럽이 32곳으로 가장 많다. 아시아(29곳·중국 제외), 북미(22곳), 중동·아프리카(20곳)가 뒤를 잇고 있다.

해외 주재원 파견 대상은 통상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30대 직원들이다. 하지만 최근 평균 결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싱글 직원들에겐 주재원 파견이 더 이상 매력적인 제안이 아니다. 결혼을 아직 하지 못했거나 결혼을 앞둔 경우 상당히 주저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는 김 모(32세) 씨는 “결혼하고 싶지만 아직 짝을 찾지 못했는데, 이런 시기에 해외 파견을 가면 미래의 배우자를 만나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다”며 “솔직히 싱글 남성에겐 결혼과 더 멀어질까봐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난 점도 영향을 끼쳤다. 해외 주재원 파견을 나가면 온 가족이 전부 거주지를 옮겨야 한다. 외벌이인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상대 배우자의 직장이나 커리어를 생각하면 쉽지 않다. 초등학생 이상의 자녀의 조기 영어교육이라는 메리트가 있음에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때 지원자가 몰렸던 기업체 해외 주재원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면서 기업들도 주재원 선발에 애를 먹고 있다. [123RF]

한국의 경제적 수준과 삶의 질이 과거보다 상당히 높아진 점도 해외 파견의 매력도를 떨어트렸다. 아이를 두 명 둔 가장인 최 모(37) 씨는 “예전에야 해외 파견 경험이 독특하고 커리어에도 도움이 됐지만, 요새는 여행이나 단기 연수도 많이 가서 특별한 경험이 아니게 됐다”며 “한국도 해외와 비교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살기 좋은 곳이 됐다는 점에서 해외 파견 경험을 크게 선호하지 않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 파견이 더 이상 승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인식 때문에 시니어 직원들도 해외 주재원 근무를 기피하는 분위기다. 자칫 해외 근무 때문에 국내에서 자리를 오래 비웠다가는 오히려 승진에 불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 1980~90년대처럼 회사가 고속 성장하는 시대가 아닌 만큼 기업들도 리더급 자리를 더 이상 늘리지 않고 줄이는 추세다. 이 때문에 해외에 나갔다가 국내에 복귀했을 때 승진은커녕 주재원 커리어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좋은 자리를 보장받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4대 그룹 중 아시아권 법인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한 신흥 국가에서 주재원 수요가 높지만 직원들은 북미·유럽 아니면 어떻게든 가지 않으려고 한다”며 “결국 현지에 체류하는 한국인을 채용하는 것으로 메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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