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리버풀 노동자들이 만든 EPL 정신, 서울 홈리스월드컵에 깃들다[함영훈의 멋·맛·쉼]
2024-09-18 10:02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공 같은 것을 발로 차 목표지점에 가도록 해서 승패를 가리는 게임의 역사는 누가 먼저인지 알 수가 없다. 직립보행인에겐 거의 본능적인 동작이기에, “내가 먼저”라는 모든 주장엔 근거가 없고 중국 등이 이런 주장을 할수록 바보 취급 당한다.

세련된 석기가 발굴돼 고고학적으로 조금 더 똑똑한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입증된 북아프리카나 한국의 연천-단양에서 “먼저 시작했다”고 주장한다면 손톱 만큼 더 설득력을 얻을 지도 몰라도 부질없다.


고단함 삶을 축구로 이겨온 한국 홈리스월드컵팀 출정식. 서울 홈리스월드컵은 오는 21일 한양대에서 열린다.

▶축구는 고단함을 극복하는 치료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축구의 발상지는 잉글랜드 북서부 지방임은 분명하다.

산업혁명 초기, 착취와 중노동으로 점철된 노동자의 삶을 달래준 것이 바로 공을 발로 차서 목표로 한 곳에 보내는 놀이, 축구였다.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을 활용해서 공장 한켠에서 우유팩을 차며 한바탕 웃던 노동자를 연상시키면 된다.

축구를 사랑하는 방직 노동자들이 가장 많았던 곳은 원료가 모이는 리버풀이고, 공장이 많았던 이웃 맨체스터였다.


맨체스터 옛 방직공장은 이제 산업혁명 뮤지엄이 되었다.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영위하던 노동자들이 고단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게해줬던 축구가 가장 활성화돼 있었고, 축구 인구가 가장 많았다.

몇몇이 동아리를 만들고, 동아리들 끼리 경기를 하는 것이 크게 붐업 되자, 1871년 FA컵이 만들어진다. 이어 1888년 세계 최초의 프로축구리그(The Football League, 프리미어리그의 전신)가 창설된다.

첫해 스코틀랜드,웨일즈,북아일랜드를 포함하는 영국 프로축구 리그는 12개 팀이었다. 지금은 6부리그까지 160개 팀이다.

당시 공장 노동자가 많았던 맨체스터가 강했기 때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신인 뉴턴 히스 LYR FC가 우승하지 않을까 했지만, 양대 거점인 맨-리 두 도시 변방으로, 랑카스터 면화의 생산지인 프레스턴이 권토중래하며 1,2회 연속 우승컵을 거머쥔다. 축구 변방의 설움을 날려버린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구장

▶노동자의 EPL, 인생 역전을 선물하다= 버밍험의 아스톤빌라·웨스트브로미치, 맨체스터 남부의 울버햄튼, 맨-리 두 도시 사이에 있는 스토크시티도 리그 출범 초기 주역으로 군림했다. 리버풀 연고 팀은 1901년, 맨체스터 시내 팀은 1908년에야 첫 우승을 맛본다.

그래서, 영국의 축구는 노동자의 것이고 역전과 반전의 상징이다.

당시 노동자 밀집 거주 도시, 지금도 현대화가 더딘 영국 북서부 지역의 축구열풍은 자본가들의 위기로 다가온다. 노동자들의 단결력이 커지는 촉매제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귀족들의 도시 런던도 부랴부랴 창단에 나선다.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도심에 가까운쪽에 포진한 첼시, 웨스트햄, 풀럼, 크리스탈팰리스, 퀸즈파크 등은 귀족 구단, 서울로 치면 노원구, 중랑구 쯤에 있는 아스널과 토트넘, 고양 쯤에 있는 왓포드는 런던 내 샐러리맨들이 사랑하는 구단이었다. 물론 구단주는 모두 자본가들이다.

맨체스터, 리버풀, 랑카스터, 버밍험 등 중북부 구단들이 남부 런던 및 수도권, 브리스톨 팀과 대결해 승리를 거두는 것은 하층민의 도시가 겪는 설움을 잊게 하는 축제였다.

라틴어 ‘만(맨)’은 가슴이고 ‘체스터’는 도시를 뜻한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도시이고 이 지역의 산업혁명과 노동자 축구 열풍은 뜨거운 가슴의 위력을 발휘해, 국부창출과 축구종주국이라는 소담스런 열매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FIFA와 홈리스월드컵 재단 간 협력 MOU

▶FIFA가 지원하는 서울 홈리스월드컵= 홈리스(Homelessness) 월드컵은 힘겨운 삶을 축구로 달래던 축구 본래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이 이벤트는 각 국의 주거 빈곤 상태에서 소외되고 고립을 겪는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를 목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왔으며, 주거 불안정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태도를 변화시켜왔다. 홈리스월드컵은 74개국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적인 지역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오는 9월21일 서울 한양대 운동장에서 열리는 서울 홈리스 월드컵 축구대회를 공식 지원한다. 국내 최고의 팬덤을 가진 가수 임영웅 팬들도 홈리스월드컵 조직위원회에 선제적으로 후원금을 냈다.

최근 FIFA 파리사무소에서 FIFA 수석 축구 고문 유리 조르카에프, 홈리스 월드컵 설립자 멜 영, FIFA 회장 지아니 인판티노, FIFA 글로벌 축구 개발 책임자 아르센 벵거가 홈리스월드컵재단과 MOU를 맺었다.


홈리스 월드컵은 어렵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축제이다.

이번 서울 대회에는 세계 49개국에서 5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한다. 4대4 변형 풋살인 ‘스트리트 사커’ 룰로 진행되며, 전후반은 7분으로 구성된다. 각 국에서 인정하는 범위의 ‘홈리스’ 선수들로 최대 8명까지 선수를 구성할 수 있다.

▶지아니 인판티노 회장이 치켜세운 서울 대회= 해외 선수들의 다양한 배경을 살펴보면, 거리 노숙을 경험한 사람부터 각 종 시설과 보호소에서 생활하거나 이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 주거 불안정은 겪는 난민과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 등 차별과 불평등을 겪는 대부분의 소외계층이 참여한다.

15년째 홈리스월드컵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운영하고 있는 사단법인 빅이슈코리아는 대한축구협회, 한양대 등과의 협력을 통해 지난해 말 서울 유치에 성공한 바 있다.

FIFA와 홈리스월드컵재단은 FIFA의 스트리밍 플랫폼인 ‘FIFA+’에 이번 대회를 공동으로 방송하기로 합의했다. 더불어 FIFA는 메달과 트로피, 공인구, 유니폼 등을 포함하여 물품과 장비를 제공한다.


이제 홈리스월드컵 대회 한국 응원단

FIFA 회장 지아니 인판티노(Gianni Infantino)는 “홈리스월드컵은 축구가 어떻게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인식에 도전하고, 불우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충분한 사례”라며 “서울에서 열리는 다가올 대회를 시작으로 FIFA는 이 대회가 전 세계의 홈리스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계속 기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밝혔다.

현재 서울 홈리스월드컵 대회엔 후원금이 턱없이 부족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기업과 국민, 축구애호가들의 많은 후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이 주최하는 월드컵 국제대회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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