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모, 자유로 채운 음악 서사…“우주 너무 많으면 깊이의 한계 찾아와” [인터뷰]
2024-09-19 14:05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음악에서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이 있다면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거예요.”

자유를 향한 갈망은 그의 음악 여정에 여러 개의 점들로 찍혔다. 위대한 작곡가들이 남긴 세계를 뛰어넘는 자유, 연주자의 영역과 한계를 깨부수는 자유, 예측불가능한 연주를 꿈꾸는 자유…. 완벽하게 직조된, 가장 엄격하고 보수적인 세계에서 그는 매 순간 ‘자유’를 찾았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9)는 “내겐 형식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열망, 주어진 해석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망, 더 참신한 우리 시대, 우리 세대의 음악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말했다.

요즘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키워드는 바로 ‘자유’다. 그것은 건강한 가치관과 갈망으로 자라나 양인모의 삶을 한 장 한 장 채웠다. 그의 팔에 새겨진 타투도 음악 안에서의 자유와 한계 없는 도전에서 비롯됐다.

타투를 새긴 것은 2021년 1월 1일. 그의 ‘절친’인 래퍼 릴러말즈(본명 김민겸)와 패션 디자이너인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셋이서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 위해 의기투합하며 ‘리벤젤러’라는 레터링을 남겼다. 리벤젤러는 바이올린 송진 브랜드다.

“릴러말즈는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굉장히 잘 하는 친구였어요. 콩쿠르에도 나갔고요. 어느 날 그 친구 집에 가니 방바닥에 다 쓴 송진이 굴러다니더라고요. 송진 한 통을 다 쓰려면 5~10년이 걸려요. 저도 다 써본 적이 없어요.”

이들의 타투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헌사였다. 손이 여물기도 전 바이올린을 잡았던 시간, 자신을 견뎌내며 쌓아온 날들에 대한 기억이었다. 양인모는 “(타투의 의미는) 그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라며 “우리만의 공부를 하면서 보내온 힘든 시간이 녹아있다”고 돌아봤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협연하는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양인모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적 자유’를 찾아 나서고 있기도 하다. 바로 ‘지휘자 없는 현악 앙상블’ 프로젝트다. 그가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의 스승인 바이타스의 권유로 시작했다. 지난해 파리 챔버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루체른페스티벌스트링스와의 만남에서 양인모는 앙상블의 리더가 돼 단원들을 이끌며 주도적으로 음악을 만들어왔다. 곧 한국에서 만나게 될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 베를린필의 고음악 단체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9월 25일, 롯데콘서트홀)과의 협연 역시 마찬가지다.

양인모는 “앙상블 리드를 하다 보니 연주자들과의 소통 방법과 문제 해결 능력, 악보 공부의 중요성을 많이 느꼈다”며 “지휘자의 위치에 있을 땐 머리가 하얘질 만큼 좌절도 했지만 스스로 음악적 결정을 내리며 해석의 다양성을 실험해보니 음악적 자유로움을 만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공연에선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2번과 비발디 ‘사계’를 들려준다. 양인모가 국내에서 이 곡들을 연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한 면모까지 만날 수 있는 2악장, 활기찬 삶의 기쁨을 누리는 1, 3악장 등 정서적으로 큰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음악”이라고 했다. 비발디의 ‘사계’는 “형식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했던 비발디의 열망이 담긴 곡”이라고 귀띔했다.

양인모는 한계 없이 자신을 확장하는 음악가다. 시대의 한계를 두지 않고 레퍼토리를 확장하고, 악기에 제한을 두지 않고 주법을 넘나든다. 내년 한 해 동안 연주할 바이올린 협주곡만 해도 15개나 된다. 그는 “지금의 난 한 시대나 레퍼토리에 정착해야 하는 단계가 아니다”며 “지금 우리 세대 아티스트는 어느 한 시대의 작품만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협연은 물론 실내악도 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은 깊고 끝 모를 음악의 바다를 유영하며 더 많은 곡을 마주할 때라는 것이 양인모의 생각이다. 그는 이 시기를 거치고 나서야 스스로도 “하고 싶은 곡의 범위가 확실해 질 것 같다”고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인앛츠프로덕션 제공]

다만 그가 지금 가장 집중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연주자’로서의 삶이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악기를 만지기 위해 그는 “번아웃이 오지 않도록 각 시대마다 연주할 곡의 비중을 맞추고, 연주 사이에 연습할 기간을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20세기 동시대 곡을 좋아하지만, 최근 연주에선 비중이 낮아진 이유다.

양인모에겐 별칭이 많다. 제54회 프레미오 파가니니 국제콩쿠르(2015)에서 9년 만의 우승자로 이름을 올린 이후 ‘인모니니’(양인모+파가니니)로 불리기 시작했고, 2022년 핀란드 장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엔 ‘인벨리우스’(양인모+시벨리우스)라는 별명이 하나 더 생겼다. 그는 당시 “유럽 기반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동안 연주 기회가 원하는 만큼 많지 않았다”며 시벨리우스 콩쿠르에 나가게 된 배경을 귀띔했다. 자신의 길을 향한 건강한 갈망은 양인모를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추동 엔진이었다.

두 번의 콩쿠르 이후 세계 무대에서도 눈에 띄게 ’바쁜 연주자‘가 됐다. 그는 “전에 비해 무척 바빠졌지만, 그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양인모가 원하는 행보는 “하고 싶은 연주를 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단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고 싶은 레퍼토리와 하고 싶은 악단을 정할 수 있는 ‘사치의 단계’가 오면 제 음악도 더 풍성해질 것 같아요. 하나의 곡을 할 때는 오직 그 세계, 그 우주 안으로 들어가야 하기에, 우주가 너무 많으면 깊이의 한계를 불러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연주의 양으로 저를 정의하지도, 누군가처럼 연주하기를 바라지도 않아요.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연주와 소리를 찾는 것이 지금의 제겐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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