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시신 감시 시스템 확립...기증자 예우도 일원화돼야 [논란의 카데바]
2024-10-10 11:40


지난해 6월,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 영안실 관리자인 세드릭 로지(56)는 영안실에서 해부를 마친 시신의 머리, 뇌, 피부, 뼈 등 신체 부위를 몰래 빼돌렸다. 로지는 수년 동안 해부 실습 등 교육 목적으로 하버드대 의대에 기증된 시신을 돈을 받고 팔아, 39차례에 걸쳐 3만7000달러(약 4840만원)를 받았다.

하버드대는 이 사건이 벌어진 이후 외부 전문가들로 이뤄진 패널을 구성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수립했다. 같은 해 11월 발표된 ‘하버드 의과대학의 해부 시신 기증 프로그램에 대한 보고서’는 ‘투명성’을 강조했다. 시신을 기증 받는 우리나라 의대·종합병원에 필요한 것 중 하나도 ‘투명성’이다.

우리나라 의대·종합병원에 기증되는 시신들의 관리 및 활용 내역은 의과대학·종합병원에서 관리가 이뤄진다. 기증자 모집부터 활용처에 대한 적절성·배분, 이후 시신 화장 과정까지 민간이 도맡는다.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정부 부처는 의대·종합병원의 시신 보유 구수와 활용처에 대해 사후 보고를 받는다. 일부 대학이 시신 관리 현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도 교차 검증이 불가능해 이를 파악하지 못하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기증받은 시신이 어디에 사용됐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 것은 유족 역시 마찬가지다. 10일 헤럴드경제가 만난 5명의 시신 기증 유족 중 1명을 제외하면 가족의 시신이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해서 전달받은 적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대학이나 대학병원 측은 “유족이 기증 시신이 어떻게 사용됐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가 다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확인결과 유족들을 중심으로 기증 시신의 용처를 알려달라는 요구는 있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하 정책원)이 시신 기증 경험이 있는 유족 28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유족들은 시신 기증 후 정보 제공을 가장 원했다. 경희대에 아버지의 시신을 기증한 고강섭 서울 중랑구 의원은 “시신 기증 후 연구가 시작된다, 연구가 종료됐다고 연락이 오니 시신이 제대로 된 교육과 연구에 쓰였구나라며 안심 할 수 있었다”며 “언제, 그리고 어떻게 쓰였는지까지 알려주는 것이 기증자에 대한 예우”라고 말했다.

▶시신 감시 체계 확립 필요= ‘투명성’을 강조한 하버드대의 보고서는 하버드대의 시신 기증 프로그램(AGP)에 기증 또는 취득한 시신의 관리·사용과 관련한 정책이 없기 때문에, AGP의 역할과 책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학생 등이 사용하는 카데바의 기증·취득·추적·사용·관리 및 처분에 관한 최소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가령 기증 시신에 각각 태그를 붙여, 기증자의 나이나 병력 등 기초적인 신원을 식별할 수 있게 하고, 시신의 활용처와 활용 시기와 교육이 끝난 이후 장례 절차 등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 시신 사용을 추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보고서는 “태그에 바코드를 삽입해 기증자의 시신을 추적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며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고, 시신의 위치가 어딘지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책원은 지난 4월 발간한 ‘시체 기증에 대한 예우 및 지원 제도 개선방안 연구’에서 기관별 기증 및 기증희망자 등록 현황과 목적별 이용현황 등을 관리할 수 있는 ‘통합 관리시스템’ 구축을 제안한 바 있다.

김인범 가톨릭대 응용해부연구소장이 복지부 용역으로 지난해 2월 공개한 ‘시체 기증 활성화를 위한 연구’ 보고서에서 “시체를 추적·기록·보관하는 시스템은 매우 중요하며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시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전달되었는지 추적 가능하므로, 예기치 못한 문제 발생 시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카데바 쏠림, 지역 거점 제공기관 선정 필요=종교계열 대학 또는 대형병원을 가지고 있는 의과대학에 쏠린 시신 기증을 해결할 방법 중 하나로는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거점 시체 제공기관을 선정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가령 미국 일리노이주의 AGA는 시카고 주변 8개 의애 모임으로, 시카고와 일리노주에 있는 다른 의대에서 의학교육, 연구와 더불어 그 외 지역 보건 당국, 군, 소방 당국 같은 의학교육이 필요한 곳에 기증시신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한국에서도 국립대병원 등이 지역 사립대병원보다 많은 기증을 받는 사례가 다수 있는 만큼, 지역 거점 시체 제공기관을 선정해 기증자가 적은 대학으로 시신을 제공하거나, 기증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 보인다.

▶기증자 예우 지자체별·대학별 큰 차이=의료·연구 목적용으로 기증된 시신에 대한 ‘기증자 예우’도 지방자치단체나 대학별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증자 예우는 각 대학이 시신을 기증 받을 때 지출해야 하는 비용과 직결되는데, 기증자에 대한 예우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맞추기 위해선 정부의 지원이 필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10개 대학의 ‘연 평균 기준 기증 시신 보관비’를 확인한 결과 화장, 시신 보관비 등에 사용되는 비용은 대학별로 달랐다. 충남대의 경우 화장장으로 이동하는 운구비용, 화장비용, 유골함 등 관련 소모품 비용으로 시신 1구당 65만원 가량을 부담하는 반면, 울산대는 화장장 사용료만 120만원에 육박해 1구당 총 180만원을 부담했다.

또 추모제 등 기증자를 기리는 행사나 장례식장 지원 비용, 병원비 지원 비용 등 기증자 예우에 대한 항목도 각 대학마다 달랐다.

▶시신 기증자 화장비 지원 지자체 5곳 뿐=시신 기증자에 대한 중앙 정부의 지원은 전무한 수준이다. ‘시체 기증에 대한 예우 및 지원 제도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연구용으로 기증되는 시체에 대해 지원 근거를 두고 있는 지자체는 전국에서 5곳(대구시·익산시·천안시·제천시·의성군)에 그쳤다. 화장비용을 지원해주고 있는데, 이마저도 예산의 책정, 지자체별 의대 수요나 기증 수요 등에 따라 불안정하게 운영되고 있다.

시신 기증자에 대한 예우나 유족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마련돼 있다. 그러나 현재 뇌은행, 치매뇌은행 등을 운영하는 기관을 제외하고는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예지 의원은 “시신기증자에 대한 예우가 각 대학마다 다른 점은 기증자의 존엄성과 유족의 감정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기증자에 대한 예우가 대학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기증에 대한 대학 결정도 차이가 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며 “기증자의 존엄성이 보장되어 신뢰가 향상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박지영·이용경 기자



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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