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와 달러화를 정리하는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엔화 가치가 최근 한달 사이 폭락하며 또다시 엔저 터널에 갇혔다. 1년 이상 이어진 약세 현상이 좀처럼 끝나지 않고 다시 재연됐다.
다만, 이번엔 그 끝이 보인다. 일본 중앙은행(BOJ)가 기준금리 인상을 미룰 이유가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기침체 우려로 불안했던 시장은 최근 ‘노랜딩(경기침체 없음)’이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안정됐다. ‘블랙먼데이’가 있었던 8월과는 상황이 다르다. 고환율을 더 이상 감내할 필요가 그다지 크지 않다.
2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일본 엔 교차환율(Cross Rate, 달러·엔)은 153.3엔을 기록했다. 9월 30일(142.7엔)과 비교하면 한달 사이 11엔 가량(약 7%) 급등했다. 달러당 엔화 가치가 또 급락한 것이다. 이정도로 급격한 움직임은 ‘버블’이 터졌던 1989년에나 찾아볼 수 있다.
환율이 움직이는 폭도 컸지만, 방향 전환도 급진적이었다. 9월까지만 해도 시장은 대부분 엔화 강세를 점쳤다. 미국이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으로 통화 정책을 전환했고|, 일본은 장기간 이어졌던 ‘제로금리’를 끝냈다. 그런데 한달도 채 안돼 다시 엔저 시대로 돌아왔다.
이유론 정치적 불확실성이 꼽힌다. 추가 금리 인상에 긍정적이라고 평가 받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막상 취임하자 “개인적으로는 현재 추가 금리 인상 환경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집권 여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도 커졌다.
상대편인 달러 가치가 다시 뛴 영향도 있다. 미국 경제가 탄탄하단 증거가 계속 나오면서 추가 금리 인하 속도가 조정될 것이란 인식이 강해졌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단 관측까지 더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관세 인상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금리 인하를 이어가기 어려운 경제적 환경이 펼쳐질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엔화가 약세를 이어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미국이 탄탄하단 얘기는 8월과 같은 세계 경기침체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같다.
당장 일본 중앙은행 총재가 이를 직접 언급했다. 일본이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않고,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당장 금리를 올릴 수 있다. 엔화 가치도 다시 오르게 된다.
한국은행 동경사무소 현지정보에 따르면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10월 31일 금융정책결정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환율이) 과거보다 물가에 영향을 미치기 쉬워졌고, 현재의 실질 금리는 지극히 낮은 수준”이라며 “경제·물가 전망이 실현되면 추가로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8월 이후 언급한 ‘시간적 여유’란 표현은 당시 미국 경기침체 우려로 시장이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를 다른 리스크보다 주의깊게 보겠다는 의미로 사용해왔지만, 최근 이러한 리스크가 줄어들면서 이번엔 사용하지 않았다. 미국 경제의 ‘다운사이드리스크’가 사라졌단 판단이다.
환율에 대해선 구체적 평가는 하지 않았으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가격설정 행동 적극화로 환율이 물가에 영향을 미치기 쉬워진 점은 계속 유의하겠단 점도 강조했다.
10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 동결 결정이 나왔지만, 총재의 입은 매우 ‘매파적’이었던 셈이다. 시장에서는 이에 ‘매파적 동결’로 이번 결정을 판단하고, 이르면 12월 회의에서 기준금리가 올라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엔화 약세 카드, 두 번은 안 돼요’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일본은행의 금리인상 여력이 확보될 것”이라며 “우에다 총재가 미국 경기를 주시하고 있다고 발언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 경제의 연착륙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어 연말연초 일본은행의 추가 인상 전망을 유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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