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통상 전문가들 “트럼프 2기, 반도체 보조금 축소 가능…정부 신속협상에 달려”
2024-11-11 10:00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웨스트팜 비치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트럼프 행정부 2기가 반도체 보조금 축소 및 수입품 관세 부과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신속하게 협상에 임한다면 관세 면제 등 국내 산업계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중 갈등 심화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대타협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11일 역대 통상교섭본부장을 초청해 트럼프 신정부 통상정책 전망과 한국 경제계의 전략적 대응책 모색을 위한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좌담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부터 트럼프 1기 대응까지 우리의 통상 정책을 총 지휘했던 국내 통상 전문가들이 연사로 직접 나섰다.

주제발표를 맡은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2021~2022년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현지에서 화상연결을 통해 대선 결과에 대한 현지 반응을 생생히 전했다.

여 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예상과 달리 낙승하면서 2기 행정부의 경제통상 아젠다가 취임 100일 이내에 강력하고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이라며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비전 실현을 위한 드라이브를 걸 전망”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2기 정부의 핵심 정책에 대해선 “무역적자 축소, 미국 제조업 부흥, 미·중 패권경쟁 우위 확보라는 3대 목표 하에 관세 등 통상정책을 핵심 수단으로 사용할 것”이라며 “이에 대비한 민관의 위기 대응 시스템을 기민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미국 상무관으로서 한미 FTA 개정 협상과 철강 232조 등에 직접 대응했던 여 연구위원은 “1기에 비해 한국 기업의 투자 등 위상이 높아진 만큼 충분히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패널토론에선 ▷한미 FTA 활용방안과 미래 ▷보편관세 가능성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 등 통상정책 이슈 ▷미·중 관계를 비롯한 대외정책 등 미국 신정부의 정책방향과 한국 기업들에게 주는 시사점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2006년 한미 FTA 협상의 수석대표로 활약했던 김종훈 19대 국회의원(2007~2011년 통상교섭본부장)은 트럼프 2기의 보편관세 도입 및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에 대해 “미국은 한국은 물론 여러 나라들과 FTA를 체결한 상태이므로 보편관세 도입 등을 통해 기존의 FTA를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하는 것은 대외관계 전반과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쉬운 선택이 아닐 것”이라며 “그럼에도 개정 협상을 하게 된다면 양측 이익이 균형 있게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창범(가운데)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을 비롯한 역대 통상교섭본부장들이 11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미국 新정부 출범, 한국경제 준비되었는가’ 좌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철(왼쪽부터)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창범 한경협 부회장, 김종훈 전 국회의원,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 원장. [한국경제인협회 제공]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2011~2013년 통상교섭본부장)은 “보편관세가 실제 한국에도 적용된다면 한미 FTA 협정의 상호관세 철폐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며 “IRA 관련 혜택을 받는 공화당 지역이 많으므로 보조금 삭감 등 갑작스러운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며 반도체법 역시 큰 변화는 없겠으나 보조금 지원 축소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1기에서 심화됐던 미·중 갈등에 대해선 “트럼프 2기 정부는 바이든 정부가 취했던 중국 견제조치는 그대로 두면서 중국 수입품에 최대 60% 관세를 부과하는 등 추가 압박을 가할 것”이라며 “다만 트럼프 1기 후반에 했던 것처럼 중국과 대타협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2019~2021년 통상교섭본부장)는 “트럼프 정부가 양자관계를 판단하는 척도가 무역적자”라고 꼽았다.

유 교수는 “무역적자국 8위인 우리는 트럼프 정부의 1순위 고려대상은 아니겠지만 중국, 멕시코 등 일부 국가에 이어 타깃 국가가 될 수 있다”며 “차분하면서도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트럼프 1기 통상정책의 키맨이었던 라이트 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의 협상을 떠올리며 “당시 미국 정부는 동맹 여부와 상관없이 무역수지 적자를 주요 기준으로 삼았으며 세계무역기구(WTO)·한미 FTA 위반 여부에 개의치 않고 무역수지 적자 축소를 위한 어떤 조치도 도입하려고 했다”며 “협상 요구 시 한두달 내 진전이 없으면 바로 조치를 부과할 만큼 속도도 빨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역수지 적자 해소 수단인 동시에 협상을 위한 레버리지”라며 “미국의 일방 조치에도 우리가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협상에 나선다면 관세 면제나 우리의 요구사항이 반영될 수 있다. 정부 협상팀에게 도전이자 기회”라고 언급했다.

유 교수는 또, “WTO 출범 30년 중 가장 큰 위기”라며 “이미 8년 전 트럼프의 등장으로 WTO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지난 4년 간 바이든 체제에서도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에서 다시 돌아온 트럼프 정부는 더욱 확신을 갖고 WTO 체제를 벗어난 통상정책을 구사할 것”이라 전망했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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