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2억씩 곶감 빼먹다 아예 100억 통째로 횡령…파렴치한 은행[약탈자가 된 은행]
2024-11-14 13:00


BNK경남은행 투자금융부장 이모씨가 횡령자금으로 환전한 골드바와 현금.[서울중앙지검 제공]

[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 전 국민은행 직원 A씨는 지난 2012년 허위상품을 고객에게 권유해 수표를 교부받고, 이를 개인용도로 임의 사용했다. A씨가 횡령한 금액은 10억2000만원이었다. 해당 금융사고는 7년 뒤인 2019년 금융감독원에 보고됐다.

#. 전 우리은행 직원 B씨는 지난해 선물 투자금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다수의 기업고객 명의로 여신서류를 대필했다. 위조된 서류로 대출금을 부당 취급한 후 제3자 명의 타행계좌로 이체하는 방법을 사용해 총 105억2000만원을 편취했다. 그의 범행은 1년 뒤인 올해 금감원에 보고됐다.

은행에서 발생하는 금융사고가 더 대범해지고 있다. 고객의 돈을 편취하는 수법은 비슷하지만, 그 금액은 훨씬 커지고 있다. 같은 유형의 금융사고가 잇따르면서 내부통제 체계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일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엄정 발굴·처벌할 수 있는 은행 내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8월까지 금융사고 금액만 1137억원…횡령이 가장 많아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내 금융업권 금융사고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 2018년~2024년 8월까지 은행권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총 264건, 발생금액은 4097억500만원이다. 이는 같은 기간 금융권 전체에서 발생한 금융사고 발생금액의 6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은행에서만 금융권 절반 이상의 사고가 터지고 있다는 얘기다.

주목할 점은 금융사고 건수는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되, 그 금액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이다. 은행권 금융사고 건수는 지난 2018년 49건, 2029년 39건, 2020년 39건, 2021년 33건, 2022년 33건, 2023년 33건을 기록했고 올해는 8월까지 총 38건이 보고돼 연 30~40건수를 유지했다.

다만, 사고금액을 보면 2018년 626억4300만원, 2019년 103억7300만원, 2020년 88억2700만원, 2021년 316억8000만원, 2022년 1129억1000만원, 2023년 696억600만원을 기록하다 올해 8개월간 발견된 금융사고 금액만 1137억원으로 튀었다. 한 건수당 평균 사고금액이 더욱 커진 셈이다.


[연합]

범죄 유형은 ‘횡령’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4년 8월까지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에서 발생한 금융사고 건수는 135건중 횡령이 72건으로 가장 많았고, 사기(34건), 업무상 배임(16건), 도난·피탈(8건), 유용(4건) 순이었다.

은행 직원이 직접 고객의 대출금과 예금에 손댄 사고는 27건이다. 국민은행에서는 가장 많은 8건의 사고가 발생했고,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서도 각각 6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하나은행은 4건, 농협은행은 3건이 발생했다.

전문가들 “소소한 횡령 모여 대범한 범죄” 지적…10년 지나서 적발되기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금융사고 금액은 왜 더 커질까. 전문가들은 이미 대형 사고가 터지기 전에 소액 횡령이 사전적으로 다수 발생했을 거라고 예측한다. 내부통제 시스템이 걸러내지 못한 소소한 금융사고가 향후 더 대범한 금액의 횡령·배임을 불러왔을 거라는 얘기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직 은행권에는 발견되지 않은 소액 횡령도 많을 것으로 본다”며 “1억을 빼고, 2억을 뺐을 때 발견되지 않으니 100억원까지 빼돌리는 과감한 사고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금융사고를 눈치채지 못해 장기간 방치된 사례도 있었다. 천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가장 오래 방치된 사례는 우리은행에서 2012년 발생한 기업자금개선부 직원의 626억원 횡령사고가 10년이 지난 2022년이 돼서야 적발된 것이었다. 신한은행에서는 2015년 강남중앙지점 등에서 고객 예금 7억원을 가로챈 사고가 8년 후인 2023년 5월에 적발됐다.

금융당국이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운영 개선과제를 내놨지만, 은행원 개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금감원은 지난 2022년 10월 내부통제 운영 강화를 위해 4개 부문에서 20개 추진과제를 마련했다. 순환근무·명령휴가 실효성 제고, 고위험 업무에 대한 직무분리, 결재단계별 문서 등 검증체계 강화 등이 포함된 인사관리, 그리고 채권단 공동자금 검증 절차를 마련하는 등 취약부문을 통제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고객의 도장 등을 갖고 있는 은행원이 작심하고 돈을 빼돌리면 막을 길이 없다”며 “더욱이 두 명 이상이 조직적으로 자행하는 횡령·배임은 은폐하기가 더욱 쉽다”고 말했다.

결국엔 내부통제…“범행 패턴 연구해 잡아내야”


김병칠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11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에서 개정 지배구조법 시행 관련 책무구조도 시범운영 계획 및 제재 운영지침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승연 기자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결국 더 철저한 내부통제를 통해 적극적으로 금융사고를 감시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더 자주 발견되도록 해, 일부 직원이 함부로 범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복 선임연구위원은 “피상적인 내부통제보다는 실질적인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며 “단순 ‘체크리스트’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범행 패턴을 연구해 잡아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달부터 시범운영되는 책무구조도도 은행의 내부통제 기능을 제고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5대 은행 등은 최근 임원 직책별 책무와 구체적인 내용을 기술한 책무기술서와 직책별 책무를 도식화한 책무체계도를 금융당국에 제출 완료했다.

책무구조도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금융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운영위험 요인에 대한 세부적 인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오태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감독당국은 책무구조도를 통해 금융기관이 운영위험 요인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책무 기술 및 배분의 적절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며 “또한 최고경영책임자(CEO)의 총괄 관리 의무를 더욱 명확히 제시하고 책무기술의 구체성에 대한 적정 수준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h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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