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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에 출가한 군인스님의 사찰, 대구 공군기지 성무일승사 [정용식의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라이프| 2024-06-05 18:40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성무일승사. 2층에 법당(대웅전)이 들어선 구조로 지어졌다.

지난 4월 서울 강남에 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2024 서울국제불교박람회’가 열렸다. 행사장에 입장하려는 줄이 학여울역 안까지 길게 늘어질 정도로 흥행했는데, 유독 20~30대 젊은 방문객들이 몰려 눈길을 끌었다. 고리타분할 것만 같은 불교 행사에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들이 몰린 것이다.

이른바 ‘힙하다’(개성 있다는 의미의 신조어)는 표현이 수천년 전통의 불교에도 스며들고 있다.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으로 불교 교리를 설파하는 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의 부캐)이 느닷없이 인기 절정의 셀럽으로 떠올랐고, 준한스님이 서울 도심 한복판인 홍익대 인근에서 문을 연 저스트비(JustBe) 홍대선원은 MZ세대 내외국인이 주목하는 ‘핫플’이 됐다. 함께 공양(식사)을 하고 명상 프로그램과 태극권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이곳은 피끓는 청춘들이 불교의 매력을 만끽하는 공간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불교는 재미있다’는 인식이 퍼져나가는 것 같다.

개그맨 윤성호 씨의 부캐인 뉴진스님의 공연모습. 마치 대형 록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연합]

국제불교박람회에선 ‘스님의 빵앗간’이라는 타이틀의 카페 부스도 방문자들의 애정을 받았다. 공군 군종법사 여거(如炬)스님을 비롯해 군복무 중인 스님들이 의기투합해 밀크티와 마카롱 등을 만들어 냈다. ‘스님의 밀크티, 스밀스밀 마음에 붓다’라는 발랄한 표현과 어우러지는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여거스님은 회색 승복이 잘 어울리는 미남 청년이었다.

군대 내 절과 스님들에 호기심이 생겼다. 현충일이 든 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서 군대 내 법당을 찾아보기로 했다. 박람회에서 만난 여거스님이 군종 법사로 근무하는 대구의 제11전투비행단(11전비) 성무일승사를 목적지로 정했다.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연재 30회를 맞은 군부대 특집편이다. 최근 MZ세대들이 불교에 폭 빠진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젊은 세대 포교의 첨병이 군부대 법당이겠단 생각도 들었다.

11전투비행단 군부대 사찰인 성무일승사 입구 표지석

군장병들의 위안의 공간, 성무일승사

군부대는 제한된 공간이라 부대 사찰도 출입 절차가 까다롭다. 다행히 11전비 정훈실장의 배려 덕분에 불편함 없이 방문할 수 있었다.

11전비는 공군 비행장을 포함해 여러 사령부급 부대들로 구성돼 있는 대규모 복합 공군기지다. K-2부대라고도 하고, 별칭인 광성대로도 통한다. 기지와 배후의 군 주거지 등을 합치면 1만명 이상이 생활하는 하나의 작은 도시다. 덕분에 종교·생활편의 시설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성무일승사는 부대 내 산자락에 생각보다 큰 규모로 들어섰다. 2007년 연건평 1157㎡(약 350평) 규모로 현재의 건물을 준공했다. 이곳은 대한조계종 군종특별교구 소속이다.

1층에 어린이 전용 법당과 공양간, 종무실 등이 있고 2층엔 130여 평 규모의 대웅전이 있다. 100여 명이 족히 들어갈 만하다. 정면의 삼존불 뒤엔 너비가 10m 남짓한 대형 후불탱화가 있고 법당 좌우측에 걸린 신중탱화도 비슷한 규모다. 대웅전에서 열리는 법회에는 장교와 부사관 50여 가족과 30여 명의 장병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사찰에 자녀들이 함께 와서 뛰고 떠들 수 있는 어린이 법당을 따로 둔 건 참신한 발상 같았다.

1층 어린이 전용 법당 벽면에 있는 어린이 오계(신도가 지켜야 할 5가지 계율)

목사나 신부는 6·25전쟁 중에 이미 군종 장교로 제도화되었는데 군종 승려(군승) 제도는 1968년에서야 5명의 군승이 파송되면서 시작됐다. 현재는 전국 300여 곳 부대에 사찰이 있고 이 중에 120여 곳에 군종법사가 있다. 신병교육대나 자생력을 갖지 못한 군법당에는 재가자 조직인 포교사 1000여 명이 봉사하고 있다. 불교의 여러 종단 중에서 조계종만이 군종특별교구를 만들어 군법당을 운영하고 있다. 덕분에 통일되고 체계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11전비에는 교회, 성당, 법당이 포교 활동을 하고 있지만 종교 간의 유치 경쟁은 없다. 오직 장병들에 대한 위문, 위로, 상담 활동을 통해서 군 생활에 연착륙하도록 돕는 게 이들의 목표다. 다양한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여 군 내부 통합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종교의 긍정적 기능이 확산되기를 바래본다.

성무일승사 앞마당 연못. 평화롭고 고즈넉한 공간이다.

2층 대웅전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앞마당 숲연못에는 연꽃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힘차게 솟아오르는 분수 줄기는 ‘대프리카’ 대구의 뜨거운 봄기운을 식혀주는 듯했다. 잘 정돈된 숲길, 푸른 하늘 아래 그늘진 벤치에는 한가롭게 쉬는 사람도 있어서 이곳이 군부대라는 사실을 순간 잊을 정도였다.

법당 마당 한편에 있는 범종각은 군부대 특성상 일년 내내 사용할 일은 없지만, 사찰 분위기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 70~80여명이 들어가는 널따란 공양간에서 여거스님과 차담을 나누면서 약식 인터뷰를 했다.

여거(如炬)스님과의 차담

여거스님을 인터넷에서 검색했더니 ‘사찰음식 전문 스님’이라는 결과물이 나온다. 혹시나 했는데, 한글 법명이 같은 또 다른 비구니 스님이란다. 본인의 법명은 은사 스님이 제자들이 모두 쓰는 돌림자인 ‘같을 여(如)’에 밝은 이미지를 뜻하는 ‘횃불 거(炬)’를 붙여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스님의 말하는 모습을 듣다보니 여러 스님들에게서 공통적으로 피어나는 담백함에 더해, 밝은 에너지가 느껴져서 좋았다. 여거스님은 23세에 출가해서 법랍(승려가 된 해부터 세는 나이) 15년이라고 한다. 12년째 군종법사를 지내고 있다.

스님이 직접 구운 맛있는 빵을 대접받았다. 불교박람회에서 봤던 밀크티, 마카롱 등이 생각나서 혹시 전직이 제빵사, 혹은 ‘부캐’가 셰프냐는 농담을 던졌더니 “병사들 위문 갈 때 나눠주려고 인터넷을 보고 배우고 창의력을 발휘해서 만든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성무일승사의 군종승려 여거스님(왼쪽)과 ㈜헤럴드 정용식 상무

군종법사는 통상 한 부대 사찰에서 2~3년 정도 근무한다. 그간 광주비행장, 수원비행장 등 여러 공군부대를 거쳤다고 한다. 한창 세상 즐길 나이에 출가한 동기가 몹시 궁금했지만 필자의 욕심이었다.

젊은 병사들에게 불교는 낯선 종교가 아닐까, 하는 필자의 말에 스님은 동의했다. 승복 입은 스님, 불교적 언어, 법문과 불교의식 등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면에선 아무래도 타 종교에 비해 더 거리감과 괴리감이 있는 듯해 보인다.

오래 전 군 생활을 했던 사람의 기억 속에 군부대 종교 시설은 고된 군생활의 주말 도피처, 휴식처, 간식거리 제공처 등의 의미가 있었다. 요즘 군대는 많이 달라져서 대구 공군기지는 병사식당도 외부 외식업체가 위탁 운영한다. 덕분에 민간 식당만큼 밥맛이 좋다고 한다. 더불어 다방면에서 병사들의 휴식, 사생활 등도 철저히 보장한다.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지금의 MZ세대 장병들에겐 종교시설을 찾을 이유가 많이 사라진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여거스님의 설명을 들으면 훈련이나 군사(조직)생활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내적 안정을 유지하는데 군대 종교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성무일승사 2층 대웅전 내부

특히 포용성을 갖는 불교는 타인과의 관계를 더 깊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원활한 종교활동을 지원하며 군인과 불교의 가교 역할을 하는 군법사들은 청년 장병과 초심 불자가 어렵지 않게 불교에 스며들도록 돕는 방식을 고민한다.

종교 간 갈등과 경쟁을 없애기 위해 법회 참석 등 종교 활동 강요보다는 위문활동 중심의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하니 군장교로서, 정신적 지도를 하는 종교인으로서, 특수한 공간의 병사들과 친밀한 친구로서 다양한 역할을 해내는 군법사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빵 굽는 스님’도 그런 고민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요즘 세간의 화제인 뉴진스님 얘기를 꺼냈다. “불교에 대한 무관심이 가장 안 좋은 것입니다. 뉴진스님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좋든 싫든 불교가 젊은층을 관심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죠.” 불교가 무관심의 영역에 있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젊은 스님들의 혁신적 포교

매년 초파일을 앞두고 열리는 연등회 축제는 과거 신라 진흥왕이 국가를 위해 목숨 잃은 병사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펼친 팔관회가 그 시작으로 본다. 그렇게 보면 무려 1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행시다. 지난 2020년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장대비가 내렸던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 종각 앞에서 열린 ‘2024 연등회 연등놀이마당’에는 뉴진스님이 ‘극락도 락이다’ 며 불교 교리를 EDM으로 편곡해 춤을 추고 디제잉을 펼쳤다. 고막을 찢는 음악소리와 연등회에 참가한 수만명의 시민들의 환호가 어우러져 거대한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승복을 입은 채 하늘을 찌르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모습은 올해 연등회의 최대의 화젯거리가 되었고 1700년 불교 전통을 깨는 일대 혁신이었다.

서울 홍대 인근에 있는 저스트비(JustBe) 홍대선원 내부. 서울 도심에서 불교를 알리는 공간이다. [저스트비홍대선원 홈페이지 캡처]

한국의 불교는 이런 활동들이 젊은세대들에게 새로운 불교, 젊은 불교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에서는 승복 입고 공연을 하는 건 신성모독이고 불경하다며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혁신적 움직임을 통해 종교와 대중 사이의 거리가 좁아지고 불교의 핵심가치도 대중에게 유연하게 알려지지 않을까.

‘무관심이 가장 나쁜 것이다’는 여거스님의 말이 머리에 맴돈다. 사람도 그렇고 종교도 그렇다. 젊은 세대가 불교에 관심을 갖도록 틀을 깨고 시대의 변화에 조응하고자 하는 불교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까. 국방의 중책을 책임지고 있는 젊은 병사들과 부사관 장병들에게 종교가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줄 수 있길 바란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전국의 군승법사, 군종병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박준규 기자

ny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