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한 한 채’ 인식에 백약이 무효 낡아도 괜찮다…재건축 ‘불쏘시개’ 일거리·배울거리·놀거리 모두 풍성 일부선 “뭘해도 ‘3.3㎡당 1억’ 온다”
#.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103㎡는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기 하루 전날 15억6000만 원에 거래됐다. 연초보다 1억 원 이상 오른 값이다. 당시 “상투를 잡았다”는 냉소가 나왔다. 실제 규제 직후 한 달 동안 이 아파트 값은 14억 원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지금은 “그때 샀어야 했다”는 한탄이 나온다. 지난달 28일 거래된 가격은 17억1000만 원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7개월 동안 7차례에 걸쳐 부동산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강남 집값 잡기는 그 핵심 목표 중 하나였다. 정부는 ‘핀셋 규제’라며 성공을 자신했다.
결과는 핀셋으로 누른 부위만 더 부어올랐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1.28~12.25) 강남구 아파트 값은 1.7% 뛰었다. 8.2 대책 직전 한 달(7.4~7.31) 상승률 0.8%의 두 배다. 서초구와 송파구도 각각 1.4%와 1.7% 씩 오르며 대책 전의 상승률을 훌적 넘었다.
거래량도 점차 회복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강남3구 아파트 거래량은 1824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1312건)보다 40% 가량 늘었다.
▶‘똘똘한 한채’ 안전한 강남에…=규제도 호재로 만들어버린 힘은 ‘똘똘한 한 채’의 논리다. 정부는 다주택자들에게 ‘집 한 채만 가지라’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수요자들은 지방 곳곳에 분산해 투자했던 것을 거둬들이고 ‘똘똘한 한 채’가 있는 강남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강남은 활황, 지방은 불황.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규제 폭풍이 강남은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을 더욱 탄탄하게 했다. 강남 집값은 각종 부동산 규제가 십자포화를 이뤘던 참여정부 당시 어느 때보다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2008년 금융위기 사태 당시 잠시 주춤했지만 당시 강남 집값의 하락폭은 다른 지역이나 다른 자산보다 현저히 작았다. ‘강남 불패’의 신화는 이렇게 이어졌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는 “2016년엔 ‘불수능’이라고 대치동 등 명문 학군 수요가 생기더니, 작년에는 ‘물수능’이기 때문에 명문 학군을 찾는다고 말한다”며 “뭐가 됐건 집값 올릴 핑곗거리가 된다”고 풀이했다.
▶낡아도, 새로 지어도…강남엔 호재=강남은 1970~80년대 개발기에 지어졌던 아파트들이 줄지어 재건축에 들어가고 있다. 올해에도 강남4구에서 1만7000여 가구가 재건축이 가능한 연한(30년)을 채우게 됐다. 재건축 사업은 특정 사업진행단계를 거칠 때마다 시장에서 호재로 인식돼 집값이 상승한다. 잠실주공5단지처럼 50층 재건축 허가가 나도, 은마아파트처럼 50층 허가가 안나 35층으로 짓기로 해도 집값은 오른다. 사업 추진 단계 하나하나가 수년 동안 불쏘시개로 작용한다.
지방에도 낡은 아파트들이 많지만 강남과는 사정이 다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지방은 도심이 노후화되면 인근에 새 택지를 개발하는 것이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도심이 버려진다”며 “강남은 대체할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에 노후화 자체가 개발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고 설명했다.
제2롯데월드에 이어 국내 최고 높이의 건물인 현대차그룹의 통합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 영동대로 지하화 및 대규모 복합환승센터 조성, 잠실주경기장 리모델링 등의 사업 등 개발 호재들도 강남 집값의 또다른 상승 동력이다.
▶불패니까 필승…“3.3㎡에 1억 곧 온다”=시장에서는 강남 집값이 꾸준히 상승할 것이라는 점에 대체로 동의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도심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가격 하락이 오히려 경제 이상 현상이라는 인식이다. 현재의 경제 상황이나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현 집값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일거리, 배울거리, 놀거리, 먹을거리 등 어느 측면에서건 강남을 대체할 만한 공간이 없다”며 “조만간 3.3㎡ 당 1억 원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짓누르기’ 식의 정책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가격은 장기적으로 수요ㆍ공급 원리에 의해서 형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격 수준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된다”며 “다만 가격 변동폭이 커지면 투기 심리가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속도를 제어하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