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포럼] 제네바, 빈, 나이로비 그리고 서울?

제네바, 빈, 나이로비 그리고 서울 중 서울을 뺀 나머지 3개 도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얼핏 봐서는 ‘글쎄?’다. 두 곳은 유럽의 도시이고, 하나는 아프리카에 있는 도시다. 정답은 ‘유엔 도시(UN City)’다.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를 제외하고 스위스 제네바에 제2본부가, 오스트리아 빈에 제3본부가, 케냐 나이로비에 제4본부가 있다. 그런데 유럽 대륙에만 두 곳이 있으며 아프리카에도 있는 유엔본부가 왜 아시아에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든다. 제네바는 세계 2차대전 이전부터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본부가 자리 잡은 곳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빈은 어떻게 해서 다시 유엔본부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유엔본부 유치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최근 오는 6월 1일에 있을 서울시장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의제로 부상하는 유엔 제5본부 유치 논쟁을 두고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갖추고 있고, 6위의 군사력, 6~7번째 통상대국 등의 위상을 갖추고 있지만 여전히 분단 상태에서 상시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멍에를 짊어지고 있는 한국. ‘K-팝’ ‘K-드라마’ 등 막강한 문화 콘텐츠로 무시못할 소프트파워를 장착하고 있지만 아직도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ODA) 등에서는 인색하고, 난민 문제 등에서도 보수적인 나라, 전반적으로 덩치는 커졌는데 아직 그에 맞는 국제적 역할을 못하고 있는 나라 등등 여러 상념이 이어진다.

그러다 생각을 반대로 해보게 된다. 분단 상태 때문에 갖고 있는 역량과 힘을 제대로 발휘 못하고 있는 나라, 전쟁 위협 아래 상시적으로 노출돼 상대적으로 움츠려 있던 나라에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세계를 향한 적극적인 평화와 협력의 메시지가 발신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푸틴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 세계가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 곳이 되었느지를 일깨워준다. 평화는 섬세하게 다루고 대처하지 않으면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유리그릇 같이 되었다.

빈이 유치한 제3 유엔본부에는 현재 5000여명의 인력이 상주하고, 해마다 5000여회 이상의 국제회의가 열린다. 그것이 창출하는 경제 효과도 만만치 않지만 무엇보다 중립국인 오스트리아의 평화중재자로서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그런데 빈 유엔본부는 빈시와 오스트리아 정부의 적극적 유치노력으로 가능하였다. 1967년부터 이미 유엔 도시설립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유엔을 설득한 결과다. 오늘날 IAEA(국제원자력기구) 등 주요 국제기구가 자리한 빈 국제센터(VIC)는 토지를 빈시가 제공하고, 건물 소유 지분은 오스트리아 정부가 65%, 빈시가 35%씩 나눠갖고 있다. 빈시가 이 건물을 연간 7유로센트(약 100원)에 99년간 유엔에 임대하기로 했다는 것은 이제는 비밀이 아니다.

세계 인구의 40%가 살고, 국제 통상교역량의 절반 가까이가 오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도 이제는 유엔 제5본부가 들어서야 한다. 그리고 유엔본부가 들어선다면 전쟁과 분단의 위협을 극복하고 전 세계로 평화와 협력의 메시지를 발신하게 될 한국, 그리고 그 중심 서울에 들어와야 맞는 것 아니겠는가.

정범구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