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박진희 기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나영이 사건’은 지난 2008년 당시 57세였던 조두순이 8세 여아 나영이(가명)을 처참하게 성폭행한 사건이다. 당시 조두순은 자신의 범행이 들통날까봐 나영이의 장기를 꺼내 세척을 시도하는 등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았다. 검찰은 범행의 잔혹성 등을 고려해 전과 18범인 조두순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심신미약을 이유로 징역 12년 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8년이 흘렀다.
여론은 벌써부터 술렁인다. 오는 2020년 12월이면 조두순이 형을 마치고 출소한다. 나영이 가족들도 두려움을 호소한다. 실제 나영이 가족들은 “조두순이 실제로 보복해 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상당하다. 우리는 조두순을 찾기 어렵지만 조두순은 우리를 금방 찾아낼 거다. 공포스럽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두순이 사회로 돌아온다. 평범하게 일상을 영유하고 있는 우리들 사이에 평범한 얼굴로 스며든다는 의미다.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집행되고 있지 않는 57명의 사형수는 여전히 살아있다. 1992년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에 불을 질러 15명을 숨지게 한 원모씨, 4차례에 걸쳐 사람을 납치하고 토막 살해한 지존파, 부녀자 13명을 연쇄 살해한 정남규, 연쇄살인으로 사형이 확정된 유영철(2004년)과 강호순(2009년) 등이다.
(사진=영화 '세번째 살인' 스틸컷)
이들이 교도소 안에서 교화 또는 교화를 가장한 채 다시 세상에 나온다면 당신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도서 ‘공허한 십자가’는 독자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는 작가에 의해 ‘사형은 집행돼야 한다’고 설득 당한다. 설득과 동시에 작가는 또 다른 에피소드를 전개하며 다시 ‘사형은 집행되어야 하나?’라는 질문을 한다. 그 순간 멈칫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사회는 교과서처럼 ‘전과자들에 대한 차별 없는 성숙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율배반적으로 가르치는 사회조차도 전과자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도서 ‘공허한 십자가’는 사형 집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묻고 또 묻는 책이다.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강도에게 어린 딸을 잃는다. 단지 자신의 얼굴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여아를 살해한 강도는 불과 40여 일 전 출소한 전과자였다.
딸을 잃은 부부는 고통의 한 가운데서 결국 이혼을 선택한다. 이후 오랫동안 각자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나카하라는 전처인 사요코 사망 소식을 듣는다. 길거리에서 강도에게 피습돼 사망한 사요코. 사요코를 칼로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한 범인 역시 교도소에서 출소 한 전과자다. 사요코의 부모는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끌어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다.
범인이 사형선고를 받는다 한들 죽은 딸이 살아오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족은 왜 범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려고 하는 것일까. 유가족들에게는 “사형”이라는 선고 한 마디가 필요하다. 그것은 위로이고 분풀이일지 모른다.
(사진=자음과 모음)
자신과 같이 딸을 잃은 부모 그리고 이혼 전까지는 장인과 장모였던 노부부를 위해 나카하라는 전처의 죽음을 따라가다가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 진실은 독자에게 ‘사행이 집행되어야 하는 걸까?’라는 갈등을 심어준다.
결국 사형을 선고 받은 범인은 항고를 포기한다. 귀찮다는 게 이유다. 이전 범죄를 통해 혹은 이번 범죄를 통해 그가 짊어져야 했던 형벌의 무게는 보통 사람들이 바라보는 무게와 같았을까? 그가 지고 있던 십자가는 그저 공허했을지 모를 일이다.
도서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국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번 책에서도 쉴 틈 없이 독자를 몰아 부친다.
추리소설 속에 담겨진 묵직한 메시지, 그리고 질문…도서 ‘공허한 십자가’를 통해 당신이 갖고 있던 사형에 대한 생각을 재고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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