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전 수방사 헌병단장인 이 모(예비역 준장) 씨의 횡령의혹을 담은 투서를 작성한 영관장교를 징계의뢰할 계획인 가운데 다른 정부기관에서는 내부 고발자 보호가 관례화되고 있는데 유독 국방부만이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일 군 검찰에 따르면 H모 중령은 작년 3월 이씨의 장군 진급이 유력시되자 이를 막으려고 ‘비위사실’을 적시한 투서를 작성해 그해 11월 중순 우편으로 헌병 병과장에 보냈다. 그러나 이씨는 준장으로 진급했고 김관진 국방장관이 투서 내용을 확인하기보다는 투서자 색출을 지시하자 김 장관에게 비위 내용과 병과장의 미온적인 처리를 알리기 위해 지난 1월 다시 투서를 발송했다.
투서는 작년 12월 인사 때 준장으로 진급한 이씨가 2007∼2008년 수방사 헌병단장(대령) 시절 1억2000여만원의 부대운영비를 횡령해 백화점 상품권 등을 구입, 진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위 장성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는 내용 등으로 작성됐다.
국방부와 군 검찰이 언론의 잇단 의혹제기로 뒤늦게 이 투서 내용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씨는 헌병단장으로 부임한 직후 부하 실무자들에게 헌병단 예산 중 현금화할 수 있는 병사 부식용 빵 구매비, 사무기기 유지비, 주방용품비, 철모 도색비, 상급부대 격려금 등에 손을 대 총 4700여만원을 횡령했다는 것이 군 검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씨는 횡령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으로 작성된 투서이긴 하지만 군 검찰이 그 내용을 상당부분 확인했고, 수사 책임자인 현역 소장이 이 씨에 대한 수사는커녕 사건을 조기에 종결토록 김 장관에게 건의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때문에 어느 기관보다 투명해야 하고 엄정한 상명하복 문화가 자리를 잡아야할 군의 비리의혹을 제보한 투서자를 징계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군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현행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제62조는 “누구든지 이 법에 따른 신고나 이와 관련한 진술 그 밖에 자료 제출 등을 한 이유로 소속기관·단체·기업 등으로부터 징계조치 등 어떠한 신분상 불이익이나 근무조건상의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내부 비리의혹을 고발하는 사람에 대해 신분상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국방부 감사관실 관계자는 “지휘계통과 절차를 거치지 않는 투서행위는 군기강 문란 행위”라면서 “투서도 기명으로 해야 보호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의 한 관계자는 “투서자의 직속상관이 비리를 규명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상관에게 기명으로 투서를 낼 수 있겠느냐”면서 “이번 투서사건은 앞으로 군내에서 내부 고발자가 보호될지 말지를 가리는 척도가 될 것이며, 고발자를 처벌한다면 그것 자체도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우 기자@dewkim2>dew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