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제2 촛불’될라…靑, 이란원유 감축 조심조심
뉴스종합| 2012-01-17 09:57
아인혼 美 국무부 조정관 이란원유 수입감축 요청

16일 방한한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대북·대이란 제재 조정관은 17일 외교부ㆍ지식경제부ㆍ기획재정부 등 한국정부 관계자를 잇따라 만나 이란원유 수입감축을 요청했다. 아인혼 조정관의 이번 방한은 두번째. 지난해 12월에는 미 국무부의 이란 추가제제에 동참을 요청, 한국은 이란의 핵 개발과 관련된 금융제제 대상자를 추가 지정했다. 두번째인 이번 방한은 미국 의회가 만장일치로 제출한 국방수권법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뒤 이뤄지는 첫 방문이다.

아인혼 조정관은 이같은 점을 의식한 듯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유용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 왔다”며 “(지난해 12월 방한 이후 지금까지) 그동안 논의가 필요한 다른 이슈들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다른 이슈’란 이란산 원유수입 감축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 “일본 지난 5년간 40% 감축” = 아인혼 조정관은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대한 폭으로 줄여야(significant reduction)’ 국방수권법 적용에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핵개발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과 북핵문제, 그리고 주변국들이 미국의 원유 수입 제재 조치에 강하게 동조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한국 정부를 강하게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ㆍ스페인 등 EU 회원국들은 이란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밝혀둔 상태다.

이웃 일본의 사례도 거론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최근 5년간 이란산 원유 수입을 40%나 감축했다. 지난해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보유 원전 53기 가운데 90% 이상이 가동 중단된 상황에서도 일본은 최근 “중대한 폭으로 이란 원유 수입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지정학적으로, 전통적 미국의 우방이라는 공통점에서 일본을 언급, 한국 정부의 선택을 압박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에대해 한국은 국내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이 우려되고 이란산 원유 결제가 원화 또는 물물교환형식으로 이뤄져 이란의 핵개발 자금으로 유용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들어 미국을 적극 설득했다. 또 고공행진중인 물가상승률과 서민생활 안정이라는 정부의 정책기조, 총선·대선을 앞두고 있는 국내 정치 상황 등을 거론하며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 기조에는 동의하되 그 폭을 늘리기는 어렵다는 점을 적극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 숫자 보단 로드맵 그릴 듯 = 이번 회의 테이블에서 구체적인 숫자가 오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아직 국방수권법의 적용 유예기간이 160여일이나 남아 있고, 국방수권법 발효 이후 한·미 간 첫번째 회의이기 때문이다.

대신 이란산 원유 수입감축에 대한 큰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우선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아인혼 조정관은 16일 한국 도착하자마자 예정에 없던 청와대를 방문,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과 만나 저녁을 함께 먹었다. 이 자리에서 미국측은 청와대와 정부의 의중을 파악하고 향후 발생가능한 변수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했을 것이란 전망이다.

▶ 감축 숫자 공개 안될수도 = 양국간 감축규모에 대해 합의를 했더라도 구체적인 숫자가 공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임기를 1년여 밖에 남기지 않고 있는 현 정부 입장에선 가능하면 국내 여론이 악화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선 조심스럽게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또 최근 한ㆍ미FTA와 지난 2008년 ‘촛불집회’ 등으로 인해 현 정부의 외교가 지나치게 ‘친미적’이라는 여론도 현 정부로선 부담이다.

아울러 대부분 이란산 원유 수입 계약은 20년짜리 장기계약이 많아 당장 1년안에 몇 퍼센트를 줄이겠다고 밝히기도 쉽지 않은 상태다. 대신 대외적으로는 일본과 같은 수준인 ‘중대한 감축에 합의했다’고만 밝히고 테이블 밑에선 감축 목표치를 숫자로 주고받을 가능성이 있다. 아인혼 조정관이 18일 미국으로 떠나면서 공항에서 어떤 말을 남기고 갈지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홍석희 기자 @zizek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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