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미 참전용사들이 매년 한국 가평고 찾는 이유는? “전쟁터서 공부하는 한국인 근성에 큰 감명”
뉴스종합| 2013-02-05 09:55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3월 가평.

이곳에 주둔 중이던 미40사단의 사단장 조셉 클레란드 장군은 포성이 울리는 전쟁터에서 천막을 치고 공부하는 150여명의 아이들을 보고 가슴 깊은 곳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장군은 부대로 돌아가 부대 장병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했고, 1만5000여명의 40사단 장병들은 각자 2달러씩 희사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공병부대가 학교 건물을 짓기 시작했고, 여기에 주민과 학생들이 가세해 금새 교실 10개와 강당 1개의 위용을 자랑하는 학교가 생겨났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미국 본토에서 장병 가족들이 열차 세 칸 분량의 책과 학용품도 보내왔다.

이제 학교 이름만 지으면 되었다. 사단장 이름을 학교 이름으로 하자는 제안을 사단장은 거절하고, “40사단에서 처음 전사한 내 부하의 이름을 학교 이름으로 하자”고 역제안했다.

당시 40사단 장병 중 첫 전사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5형제 중 막내이며, 19세의 나이로 산화한 케네스 카이저(Kenneth Kaiser Jr.) 하사였다.

당시 한국 사람들에게 카이저는 ‘가이사’로 불렸기에 학교 이름은 가이사중학원으로 명명됐다. 이 학교는 나중에 가이사중, 가이사고를 거쳐 현재 가평고가 됐다. 지금도 교정에는 ‘이 학교는 미40보병사단 장병들이 대한민국의 장래 지도자들에게 봉헌한 것입니다. 1952년 8월15일’이라고 새긴 표석이 있다.

클리랜드 장군은 1987년 은퇴 후 연금의 일부를 기부하러 다시 이 학교를 찾아 장학금을 지급했고, 1997년 그의 타계 후에는 그의 부인이, 부인이 작고한 후에는 40사단 후배 장병들이 그 뜻을 잇고 있다. 2010년부터는 6.25 참전용사들도 같이 방문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미 참전용사 5명이 6일 방한해 7일 열리는 가평고 졸업식 참석 후 9일 출국한다고 5일 밝혔다.

soo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