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성추행 외국인연수생, 출국하면 끝이라니
뉴스종합| 2013-10-02 14:52
[헤럴드경제 =원호연기자]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초청으로 방한한 외국인들이 한국 여성을 성추행하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남긴 채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KOICA의 초청으로 한국의 IT 발전상을 공부하고자 지난 7월 14일 방한한 르완다 공무원들은 호텔 여직원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며 어깨를 만지고 “오늘 내 방에서 자고 가면 안되겠냐”는 등 언어 성폭력을 가했다.

‘르완다 판 윤창중 사건‘을 연상시키는 이 사건에서 더 충격적인 것은 KOICA의 대처 과정이다. 책임자인 동아프리카 팀장과 르완다 담당 과장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계약직 여직원과 국제교류증진협회 직원만 피해자를 만나 상황을 파악했다. 이들은 ‘일부다처제 문화 운운’하며 사건을 무마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였다.

KOICA는 열흘 뒤 피해자의 아버지가 격분해 경찰에 고소할 때까지 외교부 본부에는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가해자들은 연수기간이 끝나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렸고 구속 수사 요건이 안된다는 이유로 출국 금지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KOICA는 높아진 한국의 위상에 맞춰 국제적 기여를 한다는 명분으로 연간 사업 규모 4000억원대의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감사에서 산하 기관의 사업의 성과 평가에만 매달렸을 뿐, 외국인 연수생의 관리나 해외에 파견 나간 봉사단원들의 안전 확보 방안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이번 사건은 이미 예견돼던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반복될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는 것. 연수생의 자격 검증을 상대국 정부에만 맡겨두고 있는데다 한국에서 성추행 등 일탈행위를 저지를 경우 제재할 자체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 외교부는 ”유사한 사건이 2회 연속 발생할 경우 해당 국가의 연수생 규모를 줄인다“고 하지만 피해 여성의 다친 마음을 직접적으로 보상할 길은 없는 형편이다.

한 나라의 윤리적, 정신적 경쟁력인 ‘소프트파워’는 단순히 사람들을 불러모아 초고층 건물을 보여주고 최신 국산 스마트폰을 써보게 하는 것으로 쌓을 수 없다. 조직의 체면을 이유로 피해자의 억울한 마음을 나몰라라 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권리를 단호하게 지켜주는 모습을 보이는 것, 그러한 조직 문화가 가능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 성공한 민주국가로서 보여야 할 모범이다.

why3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