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원호연 기자]일본의 우경화를 이끌어 온 아베 신조 (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제3차 핵안보 정상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안네‘ 의 집을 찾은 것으로 확인 돼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수차례 지속적으로 진정성 어린 사과를 해 온 독일로부터 역사적 교훈을 얻을지 주목된다. 헤이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희생된 안네 프랑크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는 23일(현지시간) 오후 나치 점령 시기 안네 프랑크와 가족이 숨어 살았던 암스테르담 집에 세워진 박물관을 찾아 “20세기를 되돌아볼 때 기본권을 침해한 세기였다”며 “과거사를 겸허한 자세로 대하고 다음 세대에 역사의 교훈과 사실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21세기를 내다보면서 우리가 결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며, 나도 이 목표를 실현하는 책임을 나눠질 것이라고 다짐한다”고 말해 ‘적극적 평화주의’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아베 총리가 안네의 집 방문을 공식 일정에 포함시킨 것은 최근 일본에서 ‘안네의 일기’ 수십권이 훼손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일본 내 우익의 왜곡된 역사 인식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은 그러한 범죄행위에 반대한다는 메세지를 대외적으로 던져 국수주의자 이미지를 벗겠다는 것으로 읽혀진다.
최근 아베 총리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 다소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재검토 논란을 불러왔던 고노담화에 대해 “수정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국회에서 발언했다. 또 우리 정부가 꾸준히 요구해 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국장급 협의도 4월 중순에 열고 성실히 임하겠다는 뜻도 전해왔다.
이같은 변화는 그동안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으로 봐 왔던 박근혜 대통령이 핵안보정상회의 기간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초대 형식으로 아베 총리와 만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됐다.
아베 총리의 변화는 그의 우경화 드라이브가 일본의 국익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일본 국내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각부가 22일 발표한 ‘사회의식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서 나쁜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분야로 ‘외교’를 꼽은 사람이 38.4% 에 달해 1위를 차지했다. 199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같은 아베 총리의 변신이 향후 과거사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를 의미한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아베 총리의 측근으로 자민당 총재 특별보좌를 맡은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중의원은 “재검증 결과 고노담화와 다른 내용이 나오면 새로운 담화를 내면 된다”고 말하는 등 여전히 과거사를 수정하려는 일본 정치권 내 우익의 흐름은 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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