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문제
김정은의 북한, 봄은 오는가
뉴스종합| 2012-07-26 10:11
군부 경제이권 박탈 위해 리영호 숙청설
협동농장에 시장 요소 도입 6·28방침
기업 자율권 확대 등 공업 개혁안도 준비

외화 획득·경제발전상 체험 위해
中 동북지방에 근로자 4만명 파견도

군부 강경파·권력기관 저항이 걸림돌
세계 경제위기·북미관계 등 난제 산적
외부 도움없이 자구노력만으론 성공 어려워


인류 역사가 근대로 접어든 이후 전무후무한 3대 세습체제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북한이 격동의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군 후견인으로 낙점한 리영호 전 인민군 총참모장이 숙청되는가 하면, 무명에 가까웠던 현영철 전 8군단장이 차수로 승진하면서 새로운 총참모장으로 등장했다. 곧이어 김정은은 불과 서른의 나이에 공화국 원수 칭호를 받았다. 일요일인 15일 전격 단행된 리영호 해임은 이튿날 새벽 대내외에 발표됐으며, 17일 현영철 차수 승진 및 총참모장 임명, 18일 정오 중대 보도 형식을 빌린 김정은 원수 추대 등 변화속도도 뭔가에 쫓기듯 가파르다. 이런저런 해석들이 쏟아지지만 북한의 일련의 움직임들은 김정은 시대 개혁·개방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리영호 숙청 역시 군부가 장악하고 있던 경제이권을 박탈하려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관심의 초점은 김정은식 개혁·개방 조치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에 모아지고 있다.


▶김정은식 개혁·개방 움직임=김정은 시대 북한의 개혁·개방 조짐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당의 역할이 커졌으며 경제적으로는 조만간 새로운 경제정책이 시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정은이 이미 지난달 28일 ‘우리 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제 확립에 대하여’라는 이른바 ‘6·28 방침’을 신경제정책으로 제시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6·28 방침에는 만성적인 식량난과 직결된 농업개혁과 관련해 협동농장의 기본 단위인 분조 규모를 현재 10~25명에서 4~6명으로 줄이고, 분조가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농산물 비율을 대폭 늘리는 방안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중반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표현할 만큼 극심한 식량난을 거치면서 붕괴되다시피 한 협동농장 체제에 시장경제 요소를 일부 도입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공업 분야에서도 생산물 처분권을 각 공장이나 기업소에 주고 국가는 시장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북ㆍ중 간에는 보다 구체적인 개혁·개방이 현실화하고 있다. 북한은 외화획득과 함께 중국의 발전상과 시장경제 체험을 목표로 중국 동북지방에 4만명의 근로자를 파견키로 했다. 또 빈촌에서 부촌으로 탈바꿈한 장쑤(江蘇)성 룽시(龍希)의 화시(華西)촌에 자리한 5성급 호텔에 여성 종업원들을 파견하기도 했다.

“소중한 인민의 허리띠를 다시는 졸라매지 않겠다” “내겐 총알보다 쌀알이 더 소중하다”고 말한 김정은이 중국을 모델로 한 개혁·개방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는 셈이다.

▶김정일 실패한 경제개혁, 김정은은 성공?=
북한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된 것은 분명하지만 김정은식 개혁·개방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건국 영웅’인 김일성의 뒤를 이은 김정일 역시 자신만의 업적을 쌓기 위해 수차례 개혁·개방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김정일의 첫 번째 시도는 공식 후계자가 된 이후 1984년 합영법 제정과 외자유치를 통한 해외자본 수혈이었다. 하지만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의 공산주의 압박정책과 이로 인한 신냉전 국면이 이어지면서 해외자본 유치는 일장춘몽에 그치고 말았다. 김정일은 1991년 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 등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도모하면서 나진ㆍ선봉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선포하는 등 두 번째 개혁·개방을 시도했다. 그러나 1차 북핵위기가 불거지고 북ㆍ미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이 역시 좌절되고 말았다.

김정일이 세 번째 시도한 개혁·개방은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로 대변된다. 남북정상회담, 조명록 차수와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교차 방문으로 대외적인 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호전된 시점이었다. 7·1 조치는 인센티브제를 포함해 배급제가 무너지면서 이미 주민들 사이에 자리 잡은 장마당을 수용하고 기업 자율권을 확대하는 등의 시장경제 제도를 일부나마 도입하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이어 9월에는 신의주특구를 선포하고 행정과 치안까지 외국인에게 개방하기도 했다.

하지만 7·1 조치가 단시간 내에 성과를 내지 못하고 고농축우라늄(HEU)이 문제가 된 2차 북핵위기가 불거지면서 김정일의 마지막 시도 역시 무산되고 말았다. 김정일이 신의주특구 행정장관으로 발탁했던 양빈(楊斌)을 취임 열흘 만에 전격 구속하는 등 중국의 보이지 않는 견제도 있었다.


▶김정은식 개혁·개방 첩첩산중=김정은은 아버지의 실패 경험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시스템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만큼 개혁·개방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내부적으로 나름대로 치열한 논의와 검토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결론적으로 개혁·개방으로 나설 것”이라며 “용어도 경제 현대화나 경제관리 개선 등의 우회적 표현이 아니라 개혁·개방이라는 표현으로 정면돌파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북한의 개혁·개방은 최고지도자만의 의지로 성공하기 어렵다. 당장 리영호 숙청 과정이 보여주듯 군부 내 강경파의 반발이나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정찰총국 등 권력기관의 저항이 예상된다.

이와 함께 김정일의 좌절은 김정은의 개혁·개방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김정은식 개혁·개방이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유럽발 재정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위기가 호전돼야 하고 남북 관계, 북ㆍ미 관계, 북ㆍ중 관계 등 선결조건이 많다”며 “북한의 자구적인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리영호 숙청 등 최근 일련의 사태와 관련, 류우익 통일부 장관도 “선군(先軍)정치가 선민(先民)정치로 넘어가는 징후인지, 개혁·개방을 의미하는지 속단할 일은 아니다”면서 “제비 한 마리가 봄을 가져오지 않듯이 그것이 북한의 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김정은이 당·정·군의 최고 자리에 등극, 권력승계를 형식상으로는 마무리했지만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 것은 이제부터인 셈이다.

신대원 기자/shind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