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잊을만하면 툭툭 불거지는 한·일갈등… ‘시시포스’ 의 숙명
뉴스종합| 2012-08-10 12:00
日주류정치세력 기득권지키기 혈안
역사정의·동북아평화에는 무관심
핵무장 의도한 원자력법 개정…
점점 우경화하는 일본
한일간 접점찾기는 더욱 요원



“한ㆍ일 관계는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산 위로 밀어올리는 일을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숙명과도 같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 나라이지만 과거사 문제만 불거지면 갈등이 증폭되는 한ㆍ일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한 한 외교관의 말이다. 한ㆍ일 관계의 미묘함은 유수한 유럽 축구 강국들을 제치고 올림픽 축구 4강 동반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지만 서로의 성취를 깎아내리기 바쁜 양국 네티즌의 설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ㆍ일 갈등에 불을 붙이는 일본의 ‘독도 도발’=지난달 31일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담은 일본의 ‘2012년 방위백서’ 발간은 한ㆍ일 양 국민의 감정싸움에 부채질한 꼴이 됐다.

일본은 2012년 방위백서 본문 첫 부분에 해당하는 ‘주변의 안전 보장 환경’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인 북방영토(쿠릴 열도) 및 다케시마(竹島ㆍ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며 독도가 자국 영토라고 강변했다. 1978년 독도에 관한 내용을 처음 게재한 이후 2005년부터 자국 영토라고 기술해온 주장을 8년째 되풀이한 것이다.

문제는 독도를 겨냥한 일본의 공세가 최근 들어 한층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일본 외무상은 지난 1월 의회에서 “독도 문제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국에 확실히 전하겠다”며 이례적으로 독도 영유권을 거론하는가 하면, 지난 4월에는 외무성 차관과 총리 보좌관 등 정부 고위직 관료와 의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도쿄 한복판에서 시네마 현 ‘다케시마의 날’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또 독도에 대해 간략히 기술했던 것과 달리 ‘다케시마’를 부각시킨 지도와 함께 한국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불법 점거를 계속하고 있다는 내용을 자세히 기술한 교과서도 증가 추세다.
한ㆍ일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 열쇠는 바로‘ 외교’다. 그렇다고 외교적 해결만 넋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 곳곳에서 시위를 한다. 시민단체들의 작은 외침은 큰 울림으로 돌아올 수 있다. 완전 청산되기 전까지 그 작은 울림은 계속될 것이다. [헤럴드경제DB사진]

▶日 우경화… 한ㆍ일 관계 점입가경=더욱 심각한 것은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이 독도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과거사 문제와 위안부 등 전통적 문제 외에도 한ㆍ일 간 새로운 외교 마찰 요인이 계속 쌓여만 간다는 점이다.

일본은 지난 6월 원자력 관련법에 ‘원자력 이용의 안전 확보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 및 재산의 보호, 환경 보전’과 함께 ‘국가의 안전 보장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항목을 새롭게 추가했다. 이는 곧 일본이 장기적으로 핵무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같은 달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 설치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평화 목적으로 한정한 규정을 삭제해 군사적 전용의 길도 텄다. 이를 통해 일본은 미사일방어(MD)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한 정찰위성과 조기 경계위성의 연구ㆍ개발, 그리고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까지 가능하게 됐다.

이어 7월에는 총리 산하 위원회가 일본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가 제3국의 무력공격을 당할 경우 일본이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해 논란이 일었다. 국내 여론은 이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 국가인 일본이 본격적으로 ‘집단적 자위권’ 보유의 길로 나서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였다.

이와 함께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 동해ㆍ일본해 병기 문제, 동중국해 대륙붕 경계 문제 등 한ㆍ일 간 접점을 찾기 어려운 현안은 수두룩하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근본적인 역사 인식 전환 없이는 한ㆍ일 관계 진전은 요원하다고 말한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일본의 왜곡된 방위백서가 해마다 반복되는 이유는 일본 주류 정치 세력이 역사 인식을 올바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 처리에 실패한 일본의 주류 정치 세력은 자기들의 기득권 고수에만 관심을 갖고 역사 정의나 동북아 평화, 시대정신에는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무엇보다 일본 주류사회의 역사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일본에서 우경화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양심적인 시민단체와 언론인들과의 교류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반이 약한 일본 민주당 정권이 보수 우익 포퓰리즘 기류에 올라탄 상황에서 근본적인 전환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ㆍ일 관계는 갈등이 불거졌다 하면 다시 밑바닥에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특수성이 있다”며 “국익 차원에서의 실익과 국민 감정법 사이에서 조율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신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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