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커버스토리] 韓·中 새정부 ‘밀월’ 첫단추…수면 아래선 ‘북핵문제’ 시각차
뉴스종합| 2013-02-28 11:54
한국 특사에 중국은 취임축하사절 화답
수교 21년 한·중 관계 ‘훈풍’예고
대북 핵억제력 긴밀한 관계발전 불가피
G2 北핵도발 충돌 가능성은 변수로




한 살 터울의 한ㆍ중 정상 사이가 ‘화기치상(和氣致祥)’이다. 당선인 시절 미국보다 앞서 중국에 특사를 보낸 박근혜 대통령의 배려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핵심실세를 당선 및 취임축하 사절로 잇따라 보내며 화답했다. 3월 시진핑 총서기의 국가주석 취임에도 박 대통령의 특사파견이 유력해 수교 21년을 맞는 한ㆍ중 관계는 그 어느때보다 정겹다.

▶밀월 첫 단추는 박 대통령이=첫 말문은 박 대통령이 뗐다. 후보시절 대선공약으로 “미국과 더불어 중국과도 조화롭고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면서 “한ㆍ중 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에 걸맞게 업그레이드하겠다”고 밝힌 게 출발이다. 박 대통령은 이어 당선인 시절 첫 특사이자 유일한 특사 파견지로 중국을 선택했다.

이에 중국도 시 총서기가 직접 당선인 특사인 김무성 전 의원을 만나고 차기 외교사령탑 후보로 거론되는 장즈쥔(張志軍) 외교부 부부장을 특사로 파견했다. 박 대통령 취임식 때도 3월 부총리 승격이 유력시되는 류옌둥(劉延東) 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교육·문화·과학 담당 국무위원을 보내 깊은 마음을 전했다. 류 위원은 중국에서 여성으로서는 최고위 인사로, 시 총서기가 첫 여성 대통령인 박 대통령을 각별히 배려했다는 평을 받았다.

한ㆍ중 훈풍은 한ㆍ미 관계와 비교하면 보다 도드라진다. ‘특사’가 아닌 까닭에 박 대통령이 보낸 정책협의대표단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 취임식 때 국무장관을 파견했던 관례도 이번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격’을 낮췄다. 게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0년대 말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둘러싸고 불편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때 박 대통령은 영부인 대행이었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미국이 급기류를 타고 있는 한ㆍ중 관계에 불편함을 내비친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올 정도다.

▶MB정부 한ㆍ미 동맹 강화의 반작용=사실 박-시 두 정상 간의 따듯한 관계는 양국 간 이익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하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 위기지수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과의 관계 심화·발전은 외교안보정책에 있어서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전임 이명박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핵확산방지구상(PSI) 전면 가입과 주한미군의 이동 배치가 가능한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는 등 적극적인 한ㆍ미 가치동맹을 추구해 중국의 심기가 편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때 중국이 노골적으로 북한 편을 든 데서도 확인된다.

사실 중국 입장에서 미국의 아시아 회귀에 맞서기 위해서는 이 지역 핵심 국가인 한국과의 관계는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할 만큼 절실하다. 특히 경제 부문에서 양국의 협력 강화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1992년 수교를 맺은 이래 20년이 지나는 동안 중국은 한국의 제1위 교역대상국이 됐다. 중국에도 한국은 미국, 일본에 이은 제3위 교역대상국이다.

▶박근혜 ‘관시’도 한몫=박 대통령의 중국 특유의 ‘관시(關係·인맥)’도 한ㆍ중 관계에 군불을 때는 원인이다. 중국은 박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엮어 긍정적이면서도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중국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부주도, 수출주도 경제를 통한 한강의 기적에 충격을 받고 이후 개혁개방 과정에서 롤모델로 삼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중국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신농총운동도 사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국은 박 대통령에게 극진한 대우를 해왔다. 지난 2006년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사로 방중했을 때 중국 측은 국빈급에게나 내주던 12m 길이의 링컨콘티넨털 리무진을 제공해 화제가 됐다.

박 대통령과 시 총서기의 개인적 인연도 남다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05년 저장(浙江)성 당서기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시 총서기의 요청을 받아들여 2시간 넘게 회동을 가졌다. 시 총서기가 이 자리에서 새마을운동 관련 자료를 부탁해 박 대통령이 라면박스 2개 분량의 자료를 보냈다고 한다.

‘중국통’인 구상찬 전 의원은 “외교도 결국 정이고 중국은 특히 관시가 중요한데, 박 대통령은 중국 최고지도층과 개인적 친분이 돈독하다”며 “박 대통령의 이런 인연이 지금의 한ㆍ중 관계에 반영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래도 늘 조심스러운=지금은 비록 훈훈하지만 양국이 북한을 사이에 두고, 서해 좌우로 인접해 있다 보니 쉽사리 접점을 찾기 어려운 현안도 잔뜩 쌓여 있다.

당장 한·중 수교 20주년이었던 지난해만 해도 탈북자 처리문제, 만리장성 연장 등 동북공정, 이어도 관할권, 중국어선의 불법조업, 김영환 씨 고문 의혹을 비롯한 인권문제 등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마찰을 빚었다. 언제든 양국 국민 간 감정 충돌로 비화될 수 있는 휘발성 강한 이슈들은 지금도 수면 아래에 존재한다.

무엇보다 연이은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국제사회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여전히 차이가 크다. 중국은 북한의 3차 핵실험 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논의과정에서도 줄곧 미온적이다. 연장하면 주요 2개국(G2)의 양대축인 미국과 중국의 충돌 가능성도 한ㆍ중 간 돌발변수다.

외교안보부서의 한 당국자는 “G2 지위에 올라선 중국과의 관계발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면서도 “(박 대통령이)미국과 중국의 역학관계 발전 상황을 고려해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할 텐데,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대원 기자/shind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