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1편. 한ㆍ중ㆍ일의 동상이몽
뉴스종합| 2014-01-07 07:52
[헤럴드경제 =원호연 기자]2001년 9.11 테러 이후 전 세계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한계를 보았다. 미국의 강력한 지도 하에 전세계가 평화와 번영을 누릴 만큼 미국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2014년 한국과 중국, 일본은 동북아 지역의 주도권을 두고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또 그 꿈은 어느 한 국가에서도 현실화 되지 않는다. 그 만큼 동북아시아는 불안의 시대를 맞고 있다.

▶中, 중화 세계의 부활을 꿈꾼다=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해 5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 제안했던 ‘신형대국관계’는 연안지역과 내륙지역, 자본가부터 농민공까지, 56개 민족이 중국이라는 이름 아래 조화롭게 번영을 누리자는 중국몽(中國夢)의 대외관계 버전이었다.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며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는 G2로 성장한 중국의 저력을 정치 영역, 특히 안보 분야에서 인정하라는 부드럽지만 강력한 메시지였다.

▷상호이해와 전략적 신뢰 증진 ▷미중 양국의 핵심이익과 중대 관심사 존중 ▷윈-윈 협력의 심화 ▷아태 지역에서 ‘건강한 관계’ 유지를 위한 상호협력과 협조를 내용으로 하는 신형대국관계는 겉으로는 협력과 호혜를 내세우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분히 현실주의적인 중국의 의도가 담겨있다. 미국과 1대 1로 경쟁하기에는 아직 버겁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안정화하면서 패권국가로서 힘을 기를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다.

이런 의도는 ‘핵심이익’이라는 한 단어에 함축돼 있다. 핵심이익이란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영토와 영역, 영해를 지키고 대내적으로는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국가주권을 확고히 하겠다는 의미다. 미국에게 핵심이익을 존중하라는 것은 중국이 겪는 동중국해,ㆍ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 문제와 소수민족ㆍ인권문제에 대해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의 요구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잘 알았다”며 전략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을 뿐이다. 자국의 세계 패권에 도전장을 내민 중국의 요구에 분명한 거부의 뜻을 확실히 하지 못한 것 자체가 미국의 쇠락을 반증한다는 평가다.

▶日, 경제력에 걸맞는 정치 리더십을 꿈꾸다=중국의 도전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정규군대를 갖고 아태지역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일본의 ’보통국가화‘ 꿈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나왔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천명한 ’아시아 재균형(Asia Rebalancing)‘의 한 축을 일본의 군사력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일본 외교가는 중국의 ’신형대국관계’가 실제로는 군사적 확장을 통해 동북아 지역의 현 권력 상태(status quo)를 변화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우려하며 미국의 요청에 적극 부응하는 것이 일본의 안보를 확보하는 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일본이 그동안 쌓아온 경제력에 비해 정치적 능력은 충분치 못하다는 불만에서 나왔다. 특히 전쟁과 군사력을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 평화헌법이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 1991년 걸프전 당시 막대한 재정 지원에도 불구하고 자위대의 대외 파병을 금지한 헌법 때문에 ”미일 동맹의 과실만 따먹는다“는 미국의 비난을 받아야 했던 일본은 그 뒤 주변사태법 등 유사법제와 미일 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해 그 족쇄를 하나씩 풀어왔다.

아베 총리가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공식 주창한 ‘적극적 평화주의’는 “일본은 중국과 달리 세계 평화를 위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겠다“고 설득하기 위해 만든 대외적 캐치프레이즈다. 일본 자위대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 활발히 참여하거나 북한의 도발에 맞서 미국을 지원해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실제 정책은 미군과 손잡고 중국의 군사력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닦고 군사적 능력을 배양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韓, 동북아 평화의 중재자가 되겠다=역사적으로 해양 세력과 대륙세력의 각축장이 되면서 국권까지 잃어야 했던 한국으로선 지역 패권을 갖겠다는 중국과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의 주도권 다툼은 또다른 ’악몽‘이다. 중국을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두고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중재자로 신세를 지고 있는 한국으로선 일본처럼 미국의 전략에 편승해 대중봉쇄의 한쪽 날개를 자처할 수 없다. 식민지 침략을 겪은 입장에서 일본의 재군비를 마냥 반길 수도 없다.

노무현 전 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우며 동북아 정세를 주도적으로 바꾸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상황에 따라 미ㆍ중 사이를 오가며 국익을 챙기겠다는 ’고전적 현실주의‘ 정책이었지만 중국의 적극적 지지도 얻지 못한 것은 물론 미국으로부터 ’동맹의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이같은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에 가깝다. 환경, 해상안전, 사이버 공간과 같은 합의하기 쉬운 문제부터 관련국이 모여 해결하다보면 신뢰가 쌓이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군사 안보와 같은 어려운 문제도 논의할 동북아 협력 공동체를 만들수 있다는 것. 냉전 시기 서유럽과 소련 간 인권과 평화 문제 해결을 위한 신뢰 구축과 사후 검증을 위한 사후 검토 체제(CSCE)를 만들어 냈던 ‘헬싱키 프로세스’의 동북아 버전이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와 달리 역내 어느 국가도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로 상정하지 않는다. 대신 타협과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윈-윈 관계’를 추구한다. 강대국 간 담판을 통해 국익을 확보하기 보다 다자 간 협력 체제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중국의 ’신형대국관계‘보다 다양한 국가의 이해관계를 만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협력 의제가 제시되지 않으면서 한국 정부가 동북아 협력 구상을 실천할 의지가 있냐는 비판이 나온다. 북한의 핵실험이나 급변 사태, 일본의 역사도발 등 당면한 현안 대응에만 급급할 뿐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실천하기 위한 의제와 타임 테이블 제시에는 소홀하다는 평가다.

▶국내 정치에 휘둘리는 대외정책이 문제=동북아 3국의 정치 지도자는 동북아 지역에서의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 국민들로부터 점수를 따는데 활용하고 있다. 우익을 지지기반으로 한 아베 총리는 지속적으로 역사 왜곡 발언과 중국을 겨냥한 강경 발언을 계속해왔다. ’특정기밀보호법‘ 통과 이후 지지율이 50% 이하로 떨어지자 급기야 7년 만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동북아 과거사 문제의 가장 큰 뇌관을 건드리고 말았다.

반면 일본 내 외교 전문가들은 “1당 지배가 60여년 이어지면서 최근 중국에서 수십건의 소요 사태가 벌어지는 등 국민들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지만 민주주의 선거로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중국 공산당은 일방적 방공식별구역 선포 등 군사 모험주의를 통해 중국의 힘을 과시하며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신뢰 외교를 앞세운 박 대통령도 대외 정책을 국내 정치의 볼모로 삼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외교 전문가는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선 당장의 현안에 일희일비 하기보다는 전략적 인내심을 갖고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는데 양자 대화든 다자 외교 무대든 아베 총리와의 대화를 무조건 거부하는 태도는 들끓는 국민감정을 다분히 의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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