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한일 관계,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
뉴스종합| 2014-10-13 08:30
[헤럴드경제 =원호연 기자]한일 관계가 갈수록 꼬여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는 갈수록 후퇴하는 가운데 산케이 지국장 기소 건 까지 겹치면서 ‘강(强)대 강’의 대결구도가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최근 홈페이지에 게재됐던 아시아여성기금 관련 글을 삭제했다. “10대 소녀까지도 포함시켜 강제로 많은 여성을 ‘위안부’로 만들고 종군시켰다”는 표현이 위안부의 강제연행을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위안부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편승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을 통해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고노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일본정부의 자세에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은 유엔 등 국제사회가 권위있게 인정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최근 열린 한일 차관급 전략대화와 위안부 국장급 협의 등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을 일본측에서 제시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1965년 청구권 협정을 통해 모두 해소됐다는 입장을 되풀이 할 뿐이다. 피해자를 위한 기금 설립과 총리의 사죄 편지 등의 해법이 논의됐지만, 일본 총리관저 측에서 타개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베 총리의 이같은 태도는 아사히 신문의 위안부 관련 기사 보도 취소 이후 비등한 우익 여론 덕에 자국 내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면서 한일 관계 개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사고 직후 행적을 지적한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전 산케이 서울 지국장이 명예 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것 역시 한일 관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산케이 뿐 아니라 일본 대다수 언론들이 ‘언론과 보도의 자유 침해’라고 지적하며 연일 비판 기사와 사설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 검찰은 “가토 지국장이 반성의 기미가 없어 기소했다”고 밝혔으나 일본 측은 “공인의 행적에 의문을 제시하는 것이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제 여론은 우리 정부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부 당국의 언론 규제에 대한 감시 활동을 진행하는 비정부기구(NGO) ‘국경없는 기자회’가 이미 검찰 기소 가능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데다 미 국무부 마저 “지켜보고 있다”며 비판의 뜻을 밝혔기 때문. 미국의 소리 보도에 따르면 주한 미 대사관은 언론 및 표현의 자유라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보고 우리 정부에 미국의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외교 전문가는 “그동안 일본이 전시 여성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훼손한 위안부 문제를 외면하면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지만 이번 산케이 지국장 기소로 일본이 반전의 기회를 잡은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위적 주장이 서로 부딪히면서 한일 관계는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의 형국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why3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