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취재X파일]일본산 수산물 개방이 고민되는 이유
뉴스종합| 2015-01-17 08:48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 2011년 때 일입니다. 회사의 급한 연락을 받고 가보니 일본 대지진 현지 취재를 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현장으로 간다는 떨림과 혹시 모를 불안감 속에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현지 취재를 마친 뒤 귀국하자마자 방사능 검사를 받았습니다. 의무사항이었죠.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굳이 지난 경험을 다시 꺼내는 건 그 뒤의 일들 때문입니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한동안 주변 지인들로부터 “악수하기가 꺼려진다”는 농담 반의 인사를 들어야 했습니다. 한두 번이면 농담이지만 농담이 쌓이다보면 진담이 돼 버리죠. 그렇다고 제가 지인들을 원망할 수 있을까요? 입장을 바꾼다면 저 역시 똑같았을 겁니다.

공포란 그런 것입니다.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포비아(phobia, 공포증)란 단어를 실감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일본산 수산물이 있습니다. 여기엔 ‘방사능’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그리고 여기에도 ‘포비아’가 있습니다. 최근 일본산 수산물을 두고 “정부가 개방을 검토한다”, “결정된 바 없다”는 정 반대의 기사가 불과 몇 시간만에 연이어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정부 당국자가 기자들과 모인 자리에서 “수입 금지를 푸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논란이 일자 결정된 바 없다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봐야 할까요? 그렇게 치부하기엔 복잡한 이유가 걸려 있습니다.

올해 일본과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난감’합니다. 다른 국가라면 수교 50주년이 즐겁기만 할 터인데, 일본과의 관계를 담당하는 당국자에겐 오히려 짐처럼 느껴질 법합니다. 수교 50주년이니 뭔가 한일 양국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텐데, 워낙 걸림돌이 많죠. 정부 당국자들도 이런 고충을 자주 내비칩니다. 진전은 필요하고, 방법은 마땅치 않습니다.

다시 일본산 수산물로 돌아오면, 일본은 요구 조건에서 가장 먼저 일본산 수산물 개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수산물 금지에 따른 경제적 손실 문제가 아닙니다. 수산물 수출이 금지된 이후 일본 내에서 어민의 반발이 상당히 거센 상황입니다. 정부 입장에선 이 같은 어민의 대규모 반발이 정치적으로도 큰 부담입니다.

일본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거듭 국제사회의 규제 해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주변국들도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입니다. 다만 한국은 2013년 9월부터 지금까지 일본 8개 현의 수산물 수입 금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정부의 깊은 고민은 시작됩니다. 일본산 수산물이 여전히 위험하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면, 일단 금지 조치를 유지할 명분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정부는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파견단을 일본 현지로 보내 수산물 안전 실태를 파악하는 현지 조사활동을 벌이는 중입니다.

성과가 나온다면 우선 다행이겠지만, 설득은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이미 규제를 완화한 국가들도 일본산 수산물이 방사능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결과를 듣게 되면 입장이 난감해지죠. 각 국민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합니다. 일본은 과학적 근거를 다시 따지려 들 것이고, 일본산 수산물을 놓고 일대 혼란이 빚어질 것입니다. 이를 뚫고 가야만 수입 규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일본산 수산물이 위험하다는 과학적 근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젠 설득할 대상이 일본 정부에서 우리 국민으로 바뀌게 됩니다. 개방을 해도 좋을 만큼 안전하니 안심해도 좋다, 아마 또 정부의, 혹은 국회의 누군가가 카메라 앞에서 일본산 수산물을 먹는 장면도 연출될 수 있습니다.

어느 편이 더 쉬울까요? 정부 입장에선 과학적 근거가 나오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안 나오는 게 좋을까요?

국민 정서를 생각하자면 일본산 수산물을 ‘안전하든 안전하지 않든’ 막아놓는 게 답이겠지만, 양국의 외교이익을 생각하자면 평생 금지한 채 지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더욱이 먹거리는 가장 파괴력이 큰 이슈라는 걸 우린 이미 미국산 쇠고기로 큰 교훈을 얻은 바 있습니다. 정부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죠. 그래서 발 빠르게 해명에도 나선 셈입니다. 얼마 전 빚어진 일들엔 이런 속사정이 담겨 있습니다.

정부의 현명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국민의 냉철한 판단도 필요합니다. 포비아는 무시할 수 없는 국민 감정이지만 또 극복해야 할 감정이기도 합니다. 다만 포비아를 극복하는 데에는 왕도가 없다는 게 제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았다는 설명을 쉼없이 반복해서 알리고, 상황에 따라 때론 웃으며, 또 때론 정색하며 얘기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자연히 포비아는 사라졌습니다.

정부가 운영의 묘를 잘 발휘해주길 기대합니다. 물론 일본산 수산물이 안전하다는 과학적 근거가 나오고서 말입니다.

dlc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