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문제
30분 늦은 평양시간…새터민들 고통
뉴스종합| 2015-08-20 11:22
北가족과 통화 불발 일쑤
5분 차이도 헷갈리는 어르신들
우리시간-너네시간 혼동 빈번



#1. 2013년 탈북한 L씨는 한달에 한번 꼴로 북한에 남아 있는 여동생과 통화를 해왔다. L씨는 최근 여동생과 통화에서 “이제부턴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너네 시간으로 저녁 일곱시 반에 전화통화를 하자. 꼭 그 시간에 전화를 켜둬라”고 말해야 했다.

#2. 2009년 탈북해 대한민국에 정착한 Y씨는 최근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어렵사리 가진 통화에서 “다음부터는 너네 시간에 맞춰야겠구나. 너네 시간으로 저녁 8시30분 약속한 날짜에 전화하기로 하자꾸나”라는 말을 들었다.

북한이 지난 15일부터 일제 잔재 청산을 명분으로 기존보다 30분 늦은 ‘평양시간’을 새로운 표준시로 시행하면서 탈북민들의 아픔이 한층 더 커지고 있다.

북한의 평양시간 시행으로 개성공단 출입경을 비롯해 남북교류와 남북 이질성 심화 등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탈북민들은 ‘너네 시간’과 ‘우리 시간’의 차이를 가장 먼저 피부로 느끼고 있다.

북한 군부대에서 예술선전대 작가로 복무했던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20일 “시간약속을 하고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서 미리 준비해도 어렵게 통화가 될까 말까인데 북한의 평양시간 시행으로 두고 온 가족들의 목소리 듣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북한 당국은 ‘장군님의 시간에 심장의 고동을 맞춰 간다’고 선전하고 있다”며 “김정은이 얼마나 더 위대한 존재가 될지 두고 볼 일이지만 가족과 민족을 ‘우리’와 ‘너네’로 나누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탈북민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중국 휴대전화기를 이용해 특정시간, 특정장소에서만 제한적으로 통화를 할 수 있다”며 “5분 차이로 안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30분이나 시간이 차이 나면 어르신들은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북한의 권위주의체제 성격 탓에 평양시간은 비교적 빠르게 자리잡고 있지만 노년층에서는 적잖은 혼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중앙에서 평양시간 제정을 설명하는 과정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일제의 사상 잔재를 방치한 ‘주범’이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며 “중년층과 노년층들은 몹시 황당해 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신대원 기자/shind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