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김수한의 리썰웨펀] 어느 헬기 조종사의 안타까운 죽음…해상 1m서도 포기 안했다
뉴스종합| 2016-10-27 18:33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지난 9월 말 우리 해군 링스 해상작전헬기 1대가 동해상에 추락한 사고는 조종사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일시적으로 공간지각 능력을 상실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 헬기 조종사는 헬기가 해상 400피트(121m)를 날던 도중 헬기 고도가 떨어진다고 느끼고, 수동으로 전환해 1000피트(304m)까지 상승했다. 그러다 다시 하강하면서 바다와 불과 4피트(1.21m) 위에서 다시 상승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조종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을 놓치지 않은 채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군은 27일 “이번 링스 헬기 추락사고를 조사해온 해군 중앙사고조사위원회는 조종사가 해상 무월광(달빛이 없는 상태) 야간비행에서 일시적인 ‘공간정위 상실’ 상태에 진입했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헬기가 추락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공간정위 상실이란 조종사가 비행 상태를 확인할 기준점으로 삼을 외부 표식을 볼 수 없어 순간적으로 기체의 자세, 속도, 비행 방향, 하강 여부 등을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다. 달이 뜨지 않은 밤이나 짙은 구름 속에서 어떤 외부 물체도 볼 수 없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해군 관계자는 “이날 비행은 주간이 아닌 야간, 월광이 아닌 무월광, 육상이 아닌 해상, 고고도가 아닌 저고도 등 비행하기에 가장 안좋은 요건 4가지가 모두 해당될 정도로 비행에 최악의 상황이었다”며 “이런 환경에서 조종사는 마지막 순간 공간정위 상실에서 벗어났지만 미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해군은 지난 2일 국군수도병원에서 지난달 26일 북한 도발대응 한미연합 해상 무력시위작전 중 순직한 고 김경민 소령(사후 109기, 33세), 고 박유신 소령(사후 111기, 33세), 고 황성철 상사(부사관 217기, 29세)의 영결식을 엄현성 해군참모총장이 주관하는 해군장으로 엄수했다. 엄현성 해군참모총장이 순직자 영정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해군]

해군 조사 결과, 사고 헬기는 지난달 26일 밤 8시 57분께 이지스함인 서애류성룡함에서 이함해 수분 동안 400피트(121m) 상공에서 비행했다. 그러다 갑자기 상승을 시작해 약 30초 만에 1000피트(304m) 높이까지 올라갔다.

해군은 조종사가 이때 공간정위 상실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상고도를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해수면에 다다랐다고 판단한 탓에 급상승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종사는 너무 높이 상승했다고 판단했는지, 다시 하강을 시작했는데 해수면에서 4피트(약 1.2m) 높이까지 내려갔다. 바다에 침몰하기 직전 상태였다.

이 때 조종사는 비로소 공간정위 상실 상태에서 벗어난 듯 헬기를 다시 상승시키고자 엔진을 최대한 가동했다. 구조를 요청하는 ‘메이데이’ 신호도 타전했다.

당시 조종사가 조종간을 밀고 당기며 헬기를 급상승시키는 과정에서 불안정해진 기체가 뒤집혀 해상에 추락한 것으로 해군은 추정하고 있다. 사고 헬기는 추락 과정에서 메이데이 신호를 3차례 더 보냈다. 3명의 탑승자 중 첫 번째 메이데이는 정조종사가, 나머지 3번의 메이데이는 부조종사가 발신했다.

해상에서는 조종사가 비행 상태를 확인하는 기준점으로 삼을 물체가 거의 없어 공간정위 상실 상태에 빠지기 쉽다. 이 때문에 해상작전헬기 베테랑 조종사들도 야간비행을 할 때는 한겨울에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긴장한다고 한다.

2010년 4월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링스 헬기 추락사고도 조종사가 공간정위 상실 상태에 들어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조종사가 공간정위 상실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채 바로 바다 속으로 침몰한 것으로 파악됐다.

외국에서는 해상작전헬기의 야간비행을 피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군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항상 노출돼 있어 위험을 무릅쓰고 야간비행 훈련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해군은 설명한다.

사고 헬기 정조종사인 고 김경민 소령은 사고 발생 하루 만에 수심 약 1000m 해저에서 발견됐다. 발견 당시 그는 안전벨트를 그대로 맨 채 조종석에 앉아 있었다.

헬기가 추락하는 도중에도 조종간을 끝까지 놓지 않은 탓이다.

해군 관계자는 “김 소령은 끝까지 헬기와 전우를 지키기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악전고투했다”고 전했다.

해군은 “추락한 헬기 기체에 관한 조사 결과, 엔진을 비롯한 장비는 추락 직전까지 정상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기체 결함이나 정비 불량으로 인한 사고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군은 이번 사고 이후 전면 중단했던 링스 헬기 비행을 다음 주부터 재개할 방침이다.

해군은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막고자 링스 헬기의 함정 탑재와 관련된 안전 규정을 보완하고 헬기 여러 대가 참가하는 작전에는 경험 많은 항공연락장교를 현장에 파견하기로 했다. 헬기를 탑재하는 함정에는 정밀 기상관측 장비도 탑재할 계획이다.

우리 해군의 링스 헬기 1대는 지난달 26일 밤 북방한계선(NLL)과 가까운 동해상에서 미 해군과 함께 북한의 잠수함 침투 상황을 가정한 대잠훈련을 하던 중 추락했다. 이 사고로 김 소령을 비롯해 헬기에 타고 있던 승무원 3명이 순직했다. soo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