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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더위 먹었나…해군 2함대 거수자 늑장보고·허위자수 종용까지
뉴스종합| 2019-07-12 18:40
북한 목선 삼척항 입항 사건으로 정경두 국방부장관이 고개를 숙인지 불과 열흘만에 이번에는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발생한 거동수상자 사건과 관련해 부대 영관급 장교가 무고한 병사에게 허위자수를 종용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12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 정문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군의 몰락이다. 불과 열흘 전 정경두 국방부장관이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 사건과 관련해 고개를 숙였지만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거동수상자(거수자)를 둘러싼 군의 대처는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냈다. 군의 잇단 헛발질은 국민들의 안보 불안감을 키울 뿐 아니라 현 정부에 큰 부담을 지우고 있는 형국이다.

12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과 해군에 따르면, 2함대사령부 내에서 거수자가 발견된지 일주일이 넘도록 검거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확한 사건 경위가 정 장관과 박한기 합참의장에게 보고되지도 않았다. 심지어 2함대사령부 영관급 장교는 조사과정에서 무고한 병사에게 자신이 거수자라고 허위자수할 것을 종용하기까지 했다.

지난 4일 오후 10시2분께 해군 2함대사령부 탄약창고 인근에서 불명의 거수자가 근무중이던 초병에 의해 발견됐다. 거수자는 초병 2명이 3회에 걸쳐 수하를 했으나 응하지 않은 채 도로를 따라 도주했다.

해군은 부대방호태세 1급을 발령하고 기동타격대와 5분대기조 등을 투입해 수색에 나섰지만 검거에는 실패했다. 부대에 설치된 CCTV에서도 확인되지 않았고 부대 주변 육상과 해상에서도 별다른 침투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해군은 이에 따라 대공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결론내리고 부대원 소행으로 추정해 상황을 종결한 뒤 수사로 전환했다. 더 큰 문제는 수사과정에서 2함대사령부 영관급 장교가 자신의 지휘 아래 있는 병사들에게 거수자라고 허위자수할 것을 종용했다는 점이다. 해군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많은 인원이 고생할 것을 염려한 직속 상급자가 부대원들에게 허위자수를 제의했고, 그 제의에 응한 A병장이 허위자백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누가 자수해주면 상황이 종료되고 편하게 될 것 아니냐고 했고 그 과정에서 한명이 손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영관급 장교는 약 10여명의 병사들을 대상으로 허위자수를 종용했고 이 가운데 한명이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A병장은 이후 헌병 조사과정에서 영관급 장교가 제의해서 동의했다고 진술했고 해당 장교도 이 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정부와 군 내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탄식이 이어졌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해당 사건을 아침에 보고받았다며 “영관급 장교가 부하 직원이 고생할까봐 가짜 자수를 시키는 엉터리 같은 짓을 하다가 발각됐다”면서 “아주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엄중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해군 고위관계자는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였고, 다른 국방부 관계자 역시 “굉장히 부적절한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해군은 허위자수 관련 내용을 정 장관과 박 의장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합참의장에게 상황보고가 안됐고 해군참모총장도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며 “만약 나에게 제보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김 의원이 공개한 전화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박 의장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2함대 말입니까”라고 되물으며 “(보고를) 못 받았습니다. 예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아 예 저는 처음 듣는 말씀입니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합참은 이에 대해 “의장은 지난 5일 오전 작전본부장으로부터 ‘전날 야간에 2함대에서 거수자 상황이 있었고, 대공혐의점 없는 것으로 종료된 상황을 지금 보고드린다’고 보고받았으나 전화통화 당시 기억나지 않아서 보고를 못받았다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군 고위관계자는 정 장관과 박 의장에게 허위자수 등을 보고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대공혐의점이 종료된 상황에서 사건이 종결된 것이었고 2함대사령부에서는 내부자 소행 가능성이 높아 종료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수사를 정확하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대공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거수자 검거 등 전체 수사가 마무리된 뒤 종합적으로 보고하려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김 의원은 “동해와 서해에서 연이어 발생한 경계실패 뿐 아니라 사건을 은폐하려는 정황 등으로 볼 때 군의 자정능력은 한계를 넘어선 것 같다”고 비판했다. 정 장관은 이날 오전에야 뒤늦게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단장 등 8명을 현장에 급파했다가 다시 25명으로 확대했다.

해군이 허위자수 종용 사실을 지난 9일 파악하고도 사건이 표면 위로 드러난 12일 오후에서야 문제의 영관급 장교를 직무배제한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해군 고위관계자는 “사전모의가 없었기 때문에 임무를 수행하면서 조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허위자수 종용 사실이 알려지고 나흘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영관급 장교가 A병장을 회유하거나 은폐를 시도했을 수 있다는 의혹만 키운 셈이 되고 말았다.

군 기강 해이를 우려케 하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군 당국의 육군 23사단 소속 B일병 투신 사망사건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군인권센터는 공교롭게도 같은 날 발표한 성명에서 국방부가 변사사건 수사도 제대로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 원인을 단정 짓고 심지어 배려병사(옛 관심병사)였다는 내용까지 공개하는 등 경솔했다고 지적했다. 군인권센터는 “사건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사망 원인이 피해자의 개인사유에 닿아있다는 식의 그림을 만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국방부가 장병 사망사건에 대해 온 전형적 구태”라고 비판했다.

또 B일병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근무했던 소초의 부소초장으로부터 “꼽냐? 야 XX 빨리 꺼져”라는 등의 욕설을 듣는 등 가혹행위를 받아온 정황마저 드러나면서 우리 군의 부끄러운 민낯이 다시 한번 드러나고 말았다.

shind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