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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물 먹어” 강요 극단선택 일병을 ‘애인 변심’으로 왜곡한 軍
뉴스종합| 2023-01-31 14:36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이 3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토사물 먹기를 강요받는 등 병영 내 부조리로 고통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병사의 숨겨졌던 사망 원인이 밝혀졌다.

31일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1988년 숨진 강모 일병 사건의 개요를 공개했다.

위원회는 전날 정기회의를 열고 공개를 결정했다.

애초 강 일병은 '빈곤한 가정환경과 애인 변심 등을 비관하는 한편 휴가 중 행한 위법한 사고에 대한 처벌을 우려하다가 자해 사망'했다고 군 기록에 쓰여 있었다.

하지만 위원회 조사 결과 강 일병은 가정환경이 유복했다. 애인도 없었고, 휴가 중 사고도 저지르지 않았다.

외려 사망 전날 열린 상급자 전역식에서 상급자가 구토를 하자 토사물을 먹으라는 강요를 당했고, 이를 거부하자 구타를 당하는 등 모욕감을 느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위원회는 판단했다.

위원회는 "부대 내 만연한 구타·가혹행위와 비인간적 처우 등이 원인이 됐다. 개인적 사유가 아니었다"고 했다.

1982년 숨진 김모 병장 사건의 개요도 위원회는 공개했다.

김 병장은 연말 재물조사 결과 보고서를 잘못 쓰고 인사계로부터 질책을 받았고, 이를 비관하다가 숨졌다고 군 기록에 쓰였다.

그러나 조사 결과 김 병장은 수년간 누적된 보급품의 손·망실 상황을 발견한 뒤 보고했는데, 이에 대해 부대에선 그에게 손실분을 채우라고 외려 압박해 괴로움에 시달렸다는 게 파악됐다.

김 병장이 숨진 후 군은 부대원들에게 거짓 진술을 종용하고, 유가족이 원인을 알지 못하도록 고인과 고향이 같은 부대원을 전출시키는 등 은폐 시도가 있던 점도 확인됐다.

위원회는 강 일병과 김 병장 사망 구분을 순직으로 재심사해 명예 회복을 위한 조치를 해줄 것을 국방부 장관에게 요청한 상태다.

위원회는 이날까지 이미 접수된 1787건 중 1510건을 종결하고 277건을 처리하고 있다.

위원회는 오는 9월로 잡힌 활동 종료 전에 모든 진정 사건의 조사를 마무리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