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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만 했다”는 MZ 구호대원…지진현장 녹인 ‘박상병’ 정체는? [튀르키예 열흘간의 사투③]
뉴스종합| 2023-03-03 09:41
튀르키예 지진 대응 1진 긴급구호대에 파견됐던 김민지 코이카 다자협력인도지원실 대리와 백주영 코이카 해외봉사모집팀 전임이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튜디오에서 헤럴드경제-코리아헤럴드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박해묵 기자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긴급하게 소집된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KDRT 예비 대원들은 평소에는 소속 부서에서 맡은 업무를 하고 있고 소집 명령이 떨어지면 희망자를 모으는데, 망설임 없이 지원한 두 MZ세대 대원은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헤럴드경제가 지난 2월28일 헤럴드스퀘어에서 만난 김민지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다자협력인도지원실 대리(32)와 백주영 코이카 해외봉사모집팀 전임(27)이 보여준 KDRT 구성 긴급공지 문자는 분초를 다투던 긴박한 당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김 대리는 KDRT를 담당하는 다자협력인도지원실에서 근무하는 만큼 자신이 가야하고, 가게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지진 발생 당일 저녁 선발대로 먼저 향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바뀌어 1진과 함께 출국하게 됐다. 하루의 준비기간을 얻게 된 셈이다. 김 대리는 “매뉴얼을 계속 숙지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며 “이론 교육은 많이 받았지만 현장 출동은 처음이었기에 긴장된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떠올렸다.

백 전임은 오전 근무를 하던 중 파견명단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빛의 속도로 본연의 업무를 인계하고 출동 준비를 했다. 백 전임은 “짐은 집에 계셨던 어머니께서 싸서 회사로 가져다주셨다”고 말했다.

여진이 계속되는 재난 현장으로 딸을 보내야 하는 부모님의 심정이 어땠을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향하는 딸이 그저 안전하기만을 바라며 응원을 해주셨다고 한다.

김 대리는 “부모님께 KDRT 담당자로 당연히 가야 한다고 설득보다는 통보식으로 말씀드렸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죄송하지만, 걱정이 많으셨는데도 공항 가는 길까지 잘 갔다 오라고 격려 전화도 해주시고 응원도 많이 해주셨다”고 밝혔다.

백 전임은 부모님께 다짜고짜 “튀르키예에 가라고 한다, 지금 가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자원했다고 말씀드리면 걱정하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백 전임의 부모님은 후에 뉴스를 통해 118명의 KDRT 대원 중 7명의 코이카팀에 어떻게 딸이 포함된 것인지 걱정하셨다고 한다. 백 전임은 “구호대가 현지에서 성과를 내고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보시고 이제는 ‘우리 가족의 자랑’이라며 뿌듯해하신다”고 말하며 웃었다.

튀르키예 지진 대응 1진 긴급구호대에 파견됐던 김민지 코이카 다자협력인도지원실 대리가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튜디오에서 헤럴드경제-코리아헤럴드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박해묵 기자

이들이 KDRT에 망설임 없이 자원한 것은 ‘사명감’ 때문이었다. 입사 전 동티모르에서 코이카 봉사활동을 했던 백 전임은 “본부에서 일하다 보니 현장과 거리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기회에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곳에 직접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주저하지 않고 지원했고, 지금도 그 결정에는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김 대리는 “UN에서 주최하는 지진 대응 훈련에 참석하면서 KDRT가 출동하면 어떤 방식으로 구조 활동을 해야 하는지, 재난이 발생한 국가의 정부와 어떻게 협의해야 하는지 전반적인 시스템을 배울 수 있었다”며 “이번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내가 나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원할 수 있었다”고 했다.

1진 구호대는 모든 것이 무너진 도시 한 가운데에 숙영지를 꾸렸다. 수도와 전기 등 제반시설이 없어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대원들은 ‘추위’가 가장 힘들었다고 떠올렸다. 신속하게 출발하는 바람에 방한용 텐트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패딩과 침낭을 챙겼지만 체감온도 영하 10도에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한기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혹독한 추위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서 공수해 간 화력 좋은 ‘손난로’ 덕분이다. 침낭 안에도 패딩 안에도 손난로는 필수품이었다. 손난로를 붙이고 잠이 들었다가 저온 화상을 입은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김 대리는 “자다가 입은 화상이라 창피하다”고 손을 내저었지만, 저온 화상을 입은 것도 모른 채 쪽잠을 잘 만큼 현장에서 고생한 흔적이었다.

국내에서 군용 손난로로 유명한 ‘박상병 핫팩’은 현지에서도, 국제구호대에서도 인기였다. 지난해 지진 대응 훈련에서 친해진 인도네시아 긴급구호대는 더욱 혹독한 추위와 맞서고 있었다. 김 대리는 “더운 나라에서 오셔서 추위로 더 고생을 하셔서 저희 핫팩을 나눠드렸는데 인기가 무척 좋았다”며 “다른 현지 이재민분들이 저희에게 핫팩을 요청하셔서 나눠드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KDRT는 활동을 종료하며 현지 주민들에게 손난로를 모두 나눠주었다.

튀르키예 지진 대응 1진 긴급구호대에 파견됐던 백주영 코이카 해외봉사모집팀 전임이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튜디오에서 헤럴드경제-코리아헤럴드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박해묵 기자

그러나 무엇보다 힘든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고 한다. 골든타임이 지날수록 수습되는 시신이 많아지면서 더 빨리, 더 많은 이들을 도와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김 대리는 “예측불허한 상황이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불안감과 싸우는 것이 가장 컸다”며 “처음 생존자를 마주했을 때의 감격은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시신 수습이 많아지는 것을 볼 때 아픔과 스스로 싸우는 것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백 전임은 “72시간 골든타임 이내에 1시간이라도 먼저 도착했으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안함이 있다”며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영상으로 전한 튀르키예 분들의 인사에 눈물을 흘린 이유는,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더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이들을 뒤로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미안함이 섞여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열흘간 함께 사투를 벌인 118명의 대원들은 남다른 우정이 생겼다. 한국에 복귀한 후 서로 만나 회포를 푸느라 약속이 많아졌다고 한다. 토백이를 비롯한 구조견 4마리도 현재 건강하게 회복하고 있다.

다음에도 KDRT 소집이 된다면 자원하겠느냐는 질문에 두 대원은 망설임이 없었다.

백 전임은 “이번 경험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며 “또 불의의 재난이 발생한다면 가장 먼저 현장에 가겠다”고 밝혔다. 김 대리는 “저희는 재난이 발생하면 언제든 나갈 의향이 있는 예비 대원들”이라며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재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평소에도 잘 훈련받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